
술자리에서 같은 과 여학생들을 언급하며 "걔는 얼굴은 별로니깐 봉지 씌워놓고 (성관계를) 하면 되겠네" "걔는 지금 불러도 (성관계를) 할 수 있어" 등의 성희롱 발언을 일삼아 무기·유기 정학 처벌을 받은 모 대학 의예과 남학생 11명 중 7명의 징계 효력이 일시적으로 중단됐다.
이 때문에 이 달 말부터 가해 남학생들과 피해 여학생들이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듣게 됐다. 학교 측은 남·녀 좌석 분리 방침으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접촉을 줄이고자 했으나 자리 배치도에 피해 여학생 7명의 자리가 붉은 색으로 표시돼 피해자 신상 노출까지 우려되고 있다.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3월부터 상벌위원회를 연 학교 측은 지난달 5명의 가해 남학생들에게 무기정학을, 6명에게는 90일의 유기정학 처벌을 내렸다. 하지만 징계에 반발한 남학생 중 일부가 "부당하다"며 지난달 21일 인천지방법원에 징계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징계처분 무효확인 소송을 동시에 제기했다.
이들은 소장에서 "분위기에 휩쓸려 발언의 수위를 조절하지 못한 것일 뿐 여학생들을 성적인 대상으로 삼은 것은 아니고 단순히 농담조로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남학생만 모인 자리에서 이성에 관한 이야기를 충분히 할 수 있다"며 "20대 초반의 혈기왕성한 남학생들이 술기운에 다들 아는 의예과 여학생들에 한정해 설문하듯 대화를 나눴다"는 취지로 가처분 신청을 냈다.
같은 날 이 대학 의과대 건물에는 가해 남학생들을 고발하는 "의대 남학우 9인의 성폭력을 규탄합니다"라는 대자보가 붙었다. 대자보에는 "가해자들은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았다"며 "이들이 인천지법 판사 출신 대형 로펌 전관 변호사를 선임해 수억원대 소송을 걸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대자보로 의대생들의 성희롱 문제가 세간에 알려졌고 지난 11일 가해자 7명에 대한 가처분 신청 결과가 나왔다. 인천지법 민사21부(유영현 부장판사)는 A(22)씨 등 인하대 의예과 학생 7명이 학교법인을 상대로 낸 징계처분 효력정지 가처분을 인용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7명 남학생들이 징계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해 소송 결론이 날 때까지 일시적으로 징계처분 효력을 정지하고, 이들에 대해 올해 2학기 수강신청과 교과목 수강을 금지해서는 안 된다고 학교에 통보했다.
가처분 인용에 대해 재판부는 "90일의 유기정학이나 무기정학으로 A씨 등이 받게 될 불이익이 심히 중대해 보이고, 일부는 1년 단위인 의과대학 커리큘럼으로 올해 2학기 수업을 듣지 못하면 내년 1학기까지 수업을 들을 수 없어 90일 유기정학보다 훨씬 더 가혹한 결과를 받게 된다"고 밝혔다. 2학기 수강을 하지 못하면 학생들이 학기 중에 본안 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사실상 정학 처분을 받은 것과 다름 없어진다는 이유다.
또 "A씨 등이 본안소송에서 '징계처분이 사회 통념상 현저하게 타당성을 잃어 재량권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해 다퉈 볼 여지가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법원 관계자는 "가처분은 본안소송 판단 전에 징계처분의 효력을 잠시 정지하는 정도의 효력만 가진다"며 "징계 처분이 합당한지 아닌지는 판단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법원의 결정으로 가해 학생들과 피해 학생들은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듣게 됐다. 인하대 의과대 본과 1학년 학생들은 실험 등의 일부 수업을 제외한 모든 수업을 같은 강의실에서 들어 가해자와 피해자가 마주치는 일은 불가피해졌다.
나아가 학교 측이 남학생과 여학생의 좌석을 분리하고 피해 여학생들을 강의실 같은 분단에 모여 앉도록 배치해 피해자들의 신상이 노출됐다. 의과대 전원이 모인 단체 채팅방에 올라온 공지에 따르면 학교 측의 남·녀 좌석 분리 방침으로 피해 학생들은 모두 창가 쪽 마지막 분단에 앉게 됐다. 피해 여학생 7명의 자리는 다른 자리와 구별되도록 붉은 색으로 번호가 매겨졌다.
의과대생 A씨는 KBS 인터뷰에서 "당시 공지를 전달한 1학년 과대표 학생이 피해 여학생들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를 언급하며 해당 학생들만 특정 분단에 앉으라고 공지해 1학년 학생 전원에게 피해자 신상이 노출됐다"고 말했다. 또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강의실에서 수업을 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피해 학생들만 한 분단에 몰아 앉히는 어이없는 지시가 내려져 오히려 피해자들이 낙인 찍히는 효과가 났다"고 주장했다.
대학 측은 "피해자 신원은 학교 본부 상벌위원회에서 비공개 처리해 단과대에서도 알 수 없는 사항"이라며 피해자를 특정해 격리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박세원 기자 sewon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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