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5월 벌어진 '강남역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토일렛'이 이달 개봉을 앞두고 포스터와 줄거리를 공개하자 논란이 일고 있다. 이상훈 감독의 영화 '토일렛' 제작사는 10일 "모든 것은 우발적이고 즉흥적인 분노 때문이었다. 완전범죄를 꿈 꾼 그 곳, 토일렛"이라는 문구의 포스터를 공개했다.

영화 속 두 남성은 술집에서 옆 테이블의 마음에 드는 두 여성에게 접근하다 거부당하고 술집 골목에서 자신들을 험담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두 남성은 술집을 나서는 여성들을 미행해 건물 안 여자화장실로 따라 들어가 칼로 위협하며 성폭행하고 살인한다.

영화는 서울 강남역 여자화장실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됐다. 강남역 살인사건은 지난해 5월 17일 강남역 인근 노래방의 남녀공용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남성에게 살해당한 사건이다. 당시 남성이 1시간가량 화장실 앞에서 여성이 들어가기를 기다렸다는 점에서 '여성혐오 범죄'로 지목됐다.
하지만 포스터에는 범죄 의도를 "우발적이고 즉흥적인 분노"라고 명시해 모티브가 된 강남역 살인사건을 왜곡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1년3개월도 지나지 않은 살인사건을 영화화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시각도 있다.

'토일렛'의 포스터와 줄거리가 공개되자 손희정 연세대 젠더문제연구소 연구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왜 '공통 감각(상식)'은 갱신되지 않는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변한 것은 우리의 인식뿐"이라던 베티 프리단의 말이 '절규'로 들리는 정오를 지나고 있다"며 영화가 사건을 왜곡한다고 꼬집었다.
손 연구원은 "어떻게 '토일렛' 같은 작품이 가능해지는 것인지"라며 "가장 선정적인 주제를 빠르게 선점해 가장 문제가 될만한 문구로 치장하는 네거티브 마케팅 전략을 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페미니스트 영화·영상인 모임 '찍는페미'는 10일 "영화 '토일렛'의 상영을 반대합니다"라며 목소리를 냈다. 찍는페미는 "강남역 살인사건은 가해자의 여성혐오로 발생한 사건입니다"라며 "'토일렛'의 제작진은 이 영화의 홍보문구가 강남역 살인사건의 여성혐오적 맥락을 부정하고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줄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합니다"라고 지적했다.
"어떤 경로로든 '토일렛'이 상영되는 것을 반대한다"라는 찍는페미는 "'#토일렛_상영_반대' 해시태그 운동에 동참해 달라"고 전했다. 이 해시태그를 달아 영화 상영 반대를 촉구하는 운동은 현재 SNS를 통해 확산되고 있다.

만화평론가 성상민씨는 "'토일렛' 영화가 하고 싶은 얘기는 도대체 뭐냐"며 "강남역 살인사건은 계획 살인이지 우발 범죄라고 볼 수도 없을 뿐더러 애초에 우발범죄의 정의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사전에 예방할 수 없는 범죄"라고 했다. 이어 "영화 줄거리도 술집 인근 화장실에서 남성이 초면인 여성을 살해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단 하나의 공통점도 없다"며 "여전히 여성혐오 범죄를 소재로 하고 여성혐오 그 자체인 영화"라고 지적했다.
영화감독 이송희일씨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시대"라면서 "혐오와 억압에 편승하는 이 영화를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성혐오를 온몸으로 표현해야만 겨우 남성성을 증명할 수밖에 없다는 건 얼마나 보잘 것 없고 시시한 일인가. 얼마나 귀를 막고 살면, 수많은 여성들이 공포와 분노로 쥐어짜는 비명을 듣지 못하게 되는 걸까"라고 제작진들을 비판했다.

논란이 커지자 이상훈 감독은 바로 SNS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 "영화 '토일렛'은 강남역 사건과는 전혀 무관하고 가해자를 두둔하거나 감싸는 영화는 더더욱 아닙니다"라면서 "그런 범죄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자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작품"이라고 제작 배경을 설명했다. 이 감독은 "완벽한 범죄는 없고 범죄자는 결국 그 벌을 받는다는 것이 영화의 메시지이자 주 내용이다. 영화의 의도가 훼손되는 확실치 않은 비방과 오해는 더 이상 없으시길 간곡히 부탁한다"고 말했다.
박세원 기자 sewon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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