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이 지점에서 구스타프 황태자가 금관을 수습했겠지요. 한데 당시 유물 수습에만 급급해….”
지난 4일 오후 경북 경주시 노서동 서봉총 재발굴 성과 설명회 현장. 비지땀이 줄줄 흐르는 뙤약볕 아래서 발굴 책임자인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학부 윤온식 학예연구사가 돌무더기가 쌓인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 조선총독부는 한국을 찾은 스웨덴 황태자 구스타프 6세 아돌프에게 금관을 꺼내게 하는 ‘이벤트’를 연출했다. 정작 고고학의 기본인 발굴 보고서는 제대로 남아 있지 않다. 스웨덴의 한자 표기인 ‘서전(瑞典)’과 출토된 금관의 봉황 장식에서 한 글자씩을 딴 서봉총이 해방 이후 처음으로 정식 발굴돼 91년 만에 땅 속 비밀을 드러냈다. 일제의 부실 발굴 상흔도 또렷이 드러난 현장이기도 했다.
서봉총은 신라 4∼5세기 마립간(내물왕∼지증왕) 시대의 전형적인 적석목관분(돌무지덧널무덤)이다. 구덩이를 판 뒤 큰 돌을 채우고 그 위에 작은 돌(시상돌)을 평평하게 깔아 시신이 담긴 목관(내곽)을 얹는데, 바깥에 널을 하나 덧댄(외곽) 뒤 내곽과 외곽 사이에 부장품을 묻는 구조다.
윤 연구사는 “(목관의) 내곽과 외곽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없고, 남은 외곽의 흔적을 가지고 내곽 크기를 추정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유물 수습 후 마구 묻은 탓에 흙이 있어야 할 자리에 돌이 있는 등 고고학의 ABC도 지켜지지 않았다.
서봉총은 크기가 비슷하거나 약간 다른 두 개의 무덤이 남북 방향으로 붙은 쌍분이다. 이는 마립간 시대 무덤의 또 다른 특징이다. 북분(서봉총)의 금관 출토에 신이 난 일제는 3년 뒤 남분(후원자 이름을 따 ‘데이비드 총’으로 불림)을 발굴했지만 별재미를 보지 못했다.
이번 재발굴 조사로 북분 크기가 구전됐던 크기(지름 36.3m)보다 10m 이상 큰 46.7m로 확인됐다. 이는 남분(25m)의 배에 가까운 크기다. 남분이 북분에 기생하듯 이렇게 작은 크기로 수십 년 후 조성된 경우는 처음이어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또 목관의 내외곽 규모, 적석을 쌓기 위한 목가(木架) 구조, 호석 주변의 제단과 토기 등이 확인되는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가장 큰 관심사인 무덤 주인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여전히 풀리지 못했다. 그나마 북분은 대규모로 출토된 유물 정보를 통해 금관의 주인공이 여성이며 왕비일 것으로 고고학계의 입장이 모아지고 있다. 귀고리를 걸었고 장식용 대도(大刀)를 착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분의 경우는 무덤 크기로 미뤄 북분의 주인공인 왕비의 자식인 왕자나 공주일 가능성 등이 점쳐지고 있다. 하지만 다시 발굴을 했음에도 땅 속 정보는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고 있다.
박광렬 경주성림문화재연구원장은 “남분에선 유물도 몇 점 나오지 않았으니 도무지 신분을 알길 없다. 지금 발굴했다면 인골 분석을 통해 알 수 있는데 그 땐 유물에만 정신이 팔려서”라며 혀를 찼다. 경주=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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