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학생을 위해 이 선생님이 택한 '방법'… 먹먹한 사연

Է:2017-07-03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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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페이지 '성균관대학교 대나무숲'

학창시절 '왕따'를 당해 마음고생을 겪은 학생과 그 학생을 위해 묵묵히 옆을 지켜준 선생님의 사연이 성균관대 학생들의 마음을 울렸다.

지난달 27일 페이스북 페이지 '성균관대학교 대나무숲'에는 "나는 왕따였다"는 한마디로 시작하는 장문의 글이 올라왔다. 그는 "대학생이 된 지금이야 '난 그냥 혼자가 편해' 하며 웃을 수 있지만 학창시절의 왕따는 단지 혼자라서 힘든 것이 아님을 당신들은 알 것이다"라면서 글을 써내려갔다.

그는 학창시절 이유없이 왕따를 당하며 몇 주 동안을 밤새 울었고, 동이 트는 게 두려웠던 어느날 부모님께 말씀드렸다고 했다. "엄마, 나 급식 취소해줘. 도시락 먹을래요" 하고 말문을 연 뒤 "아니, 우리 학교 급식 먹으려면 지문인식 해야 하잖아요. 내 손에 땀이 많아 그런지 인식이 잘 안돼서…"라고 머뭇거렸다. 뒤이어 "친구들이 쟨 사람 새X도 아니라서 그런가보다고… 비웃어 나를…"이라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를 본 아버지는 선생님께 전화해야겠다며 화를 냈고 어머니는 그를 끌어안고 울었다.

"학교에 말하지 말고, 그냥 조용히 전학 보내주면 안되겠느냐"는 그의 말에 다음날 엄마는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며 늦은 점심까지 그를 깨우지 않았다. 참지 못한 아빠는 학교에 전화했고 담임 선생님께선 쉬는 시간마다 그를 교무실로 불렀다.

정년을 앞둔 할아버지뻘 수학교사였던 담임선생님은 처음 그를 불러낸 쉬는 시간에 손을 꼭 잡고는 "내가 나이가 많다는 핑계로 너희를 너무 방치한 것 같다"며 미안해했다. 두 번째 쉬는 시간에는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는지 물었고, 글쓴이는 "이 학교를 떠나고 싶으니 아무 것도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말에 선생님은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으셨다. 단지 "그 지옥 같던 쉬는 시간"에 글쓴이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선생님은 그에게 교무실 청소를 시키고, 화분에 물을 주러 오라 하시고, 수학 성적이 이래서야 되겠느냐며 옆에 앉아 수능 문제를 풀게 했다.

왕따를 당하던 글쓴이 자리에는 아침마다 우유가 터져 있거나 걸레가 올라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침 일찍 등교해 치우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책상이 항상 깨끗했다. 친구들의 장난이 끝난 줄만 알았다던 그는 어느날 아침 뭉클한 장면을 목격했다. 평소보다 10분 정도 일찍 등교한 날 교실 창문으로 들여다보니 선생님이 물티슈를 들고 그의 책상에 적혀 있던 낙서를 지우고 있었다. 그 모습에 글쓴이는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첫 교시도 들어가지 않고 펑펑 울었다"고 했다.

이후 그는 전학하는 대신 그 학교에 남게 됐다. 졸업식은 가지 않았다. 담임선생님과 사진 한 장 찍지 않은 것이 후회돼 나중에 친구에게 졸업앨범 속 선생님 사진을 찍어 보내 달라고 했다던 그는 얼마전 그 선생님의 장례식이 있었다고 밝혔다.

장례식에 가려고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는 "선생님께서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님을 너무 잘 안다고, 감사하고 죄송하다고, 그 한마디를 해드리지 못한게 가슴에 맺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고 담담히 써내려갔다. 이어 "대놓고 나를 위해 왕따 주동자들과 싸워주지 않은 것이, 나 아닌 모든 사람들의 기준에도 옳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직도 눈만 감으면 물티슈를 쥐고 있는 그 주름진 손등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지곤 한다"며 글을 마무리했다.


이 글에는 9000개 가까이 '좋아요'가 달렸다. 성균관대 학생들은 "만약 내가 열심히 노력해 선생님이 된다면 이처럼 학생의 아픔까지 감싸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등의 댓글을 적었다.

◇ 다음은 성균관 대나무숲에 게시된 글 전문

<사는 얘기>
나는 왕따였다.
대학생이 된 지금이야 난 그냥 혼자가 편해, 라며 웃을 수 있지만
학창시절의 왕따는 단지 혼자라서 힘든 것이 아님을 당신들은 알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 내게 이유는 없었다.
'치과에 간다고 체육대회 연습을 빠져서'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연습일정을 잡기 시작한 순간부터 미리 말해두었던 것이니 그런 단순한 이유 때문은 아닐 것이라고 애써 생각했다.
몇 주 동안을 방안에서 밤새 울며, 동이 트는 것을 두려워하다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다.
엄마, 나 급식 취소해줘. 도시락 먹을래요.
왜? 밥이 별로야?
아니, 우리 학교 급식 먹으려면 지문인식 해야하잖아요.
응.
내 손에 땀이 많아서 그런지 인식이 잘 안돼서...
그래서...
친구들이 쟨 사람 새X도 아니라서 그런가보다고...
비웃어 나를..
얼마나 정적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겨우 꺼낸 말에,
아빠는 선생님께 전화를 해야겠다며 화를 내셨고 엄마는 나를 끌어안고 우셨다.
나는 학교에 말하지 말아달라고 나 그냥 조용히 전학 보내주면 안되겠느냐며 울었고,
다음 날 엄마는 오늘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며 늦은 점심까지 나를 깨우지 않으셨다.
이튿날 학교에 갔을 때 나는 여전히 왕따였고,
다만 아빠가 참지 못하고 학교에 전화를 했는지 담임 선생님께서 쉬는 시간마다 교무실로 부르셨다.
정년을 앞둔 할아버지 뻘의 수학선생님이셨는데
첫 쉬는 시간엔, 내 손을 꼭 잡으시고는
내가 나이가 많다는 핑계로 너희를 너무 방치한 거 같다며 미안해하셨다.
두번째 쉬는 시간엔,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는지 물으셨고
난 이 학교를 떠나고 싶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그랬다.
선생님께선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으셨다.
단지 그 지옥 같던 쉬는 시간에 나를 가만히 두지 않으셨다.
교무실 청소를 시키시고,
당신의 자리에 있는 화분에 물을 주러 오라하시고,
수학성적이 이래서야 되겠냐며 옆에 앉아 수능 4점짜리 주관식 문제를 풀게 하셨다.
등교 후 내 자리엔 우유가 터져있거나, 걸레가 올라가 있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아침일찍 와 치우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턴 항상 깨끗했다.
친구들의 장난이 끝난 줄로만 알았는데
평소보다 10분 정도 일찍 등교를 한 날 교실 창문으로 보니,
선생님께서 내 책상 낙서를 지우시고 물티슈로 닦고 계셨다.
그 모습에 나는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첫교시도 들어가지 않고 펑펑 울었다.
이후로 나는 전학을 포기하고 학교에 남았고, 졸업식은 가지 않았다.
단지 선생님 사진 한 장 없는 것이 후회가 되어,
후에 친구에게 졸업앨범 속 선생님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고 했다.
얼마 전 선생님의 장례식이 있었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쉴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
선생님께서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님을 너무 잘 안다고, 감사하고 죄송하다고
그 한마디를 못 한게 가슴에 메어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선생님의 방식이, 대놓고 나를 위해 왕따 주동자들과 싸워주지 않은 것이
나 아닌 모든 사람들의 기준에도 옳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직도 눈만 감으면 물티슈를 쥐고 있는 그 주름진 손등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지곤 한다.

박세원 인턴기자 sewon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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