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관객들과 멀어진 한국 무용극에 희망은 있는 것일까. 국립무용단의 신작 ‘리진’은 실망만을 안겨줬다. ‘무용극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주겠다는 구호가 민망하게 다가왔을 정도다.
지난 28일 개막해 7월 1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되는 ‘리진’은 국립무용단이 5년만에 내놓은 무용극이다. 창단 이후 정체성의 근간이 됐던 무용극이 현대 관객의 외면을 받는 상황에서 국립무용단은 최근 동시대 창작춤으로의 변화를 추구해 호평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뿌리인 무용극의 부활에 대한 요구도 컸던 만큼 ‘리진’에 대한 기대는 높았다. 게다가 세 차례 공모에도 적격자를 찾지 못해 1년 넘게 공석이었던 예술감독에 부임한 김상덕 감독이 취임 이후 처음 안무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더더욱 관심이 집중됐다.
그러나 뚜껑을 열었을 때 ‘리진’은 총체적 난국이란 표현에 적합한 작품이었다. 엉성한 스토리와 설득력 없는 캐릭터, 맥락없는 춤과 엉성한 미장센 등 완성도가 심각하게 떨어졌다. 공연을 앞두고 김상덕 감독이 표방했던 드라마틱하면서도 섬세한 무용극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리진’은 조선시대 말 프랑스 외교관 플랑시과 결혼한 궁중무희의 이야기다. 김탁환의 ‘리심’이나 신경숙의 ‘리진’ 같은 소설의 소재로도 이미 알려져 있지만 김상덕 감독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이야기는 리진과 플랑시, 리진의 친구이자 라이벌인 도화 그리고 리진을 사랑하는 궁중 권력자 원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공연 프로그램을 읽지 않는다면 줄거리를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다. 꿈 속 설정으로 나오는 장면들이 대표적이다. 또한 리진이 원래 속했던 고전 세계와 플랑시를 따라간 신세계의 충돌이나 박물관의 전시물로 형상화되는 장면 등은 복잡한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리진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추측되지만 드라마의 설득력이 매우 떨어진다. 무엇보다 리진에게 집착하는 도화와 원우라는 캐릭터가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아무런 공감대가 없는 캐릭터이다보니 섬세한 감정 묘사가 드러나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동화나 설화를 소재로 한 고전발레와 달리 20세기 중반 완성된 드라마발레는 소설이나 희곡 등 문학작품을 토대로 하는 경우가 많다. 연극 못지 않은 몰입도가 있어야만 현대 관객의 시선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발레가 테크닉을 바탕으로 단순히 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의 성격과 심경변화를 절절하게 표현하는 것은 당연하다. 드라마발레 같은 한국 무용극을 만들겠다던 김상덕 예술감독은 드라마와 캐릭터라는 출발점에서부터 이미 어긋났다. 차라리 이런 어설픈 창작을 할바엔 김탁환의 ‘리심’이나 신경숙의 ‘리진’을 각색해서 무대로 옮기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문제는 드라마와 캐릭터만이 아니다. 이들 캐릭터들 사이의 애증을 강렬하게 보여줘야 할 춤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춤이 없는 것은 아니어서 다양한 군무가 나오긴 한다. 하지만 오히려 뜬금없고 긴 군무가 드라마의 흐름을 방해할 지경이다. 이런 춤의 설득력을 높여줄 음악 역시 작품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걸작으로 꼽히는 드라마발레의 경우 춤에 앞서 음악적 완성도가 매우 높은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일부 안무가들은 창작음악에 자신이 없을 경우 기존의 완성도 높은 음악을 편집 및 편곡해서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
김상덕 감독은 ‘리진’이 앞선 선배들의 작품과 차별되는 3세대 무용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의상과 무대 등에서 현대성을 담으려고 한 흔적이 역력하다. 하지만 전통적이지도 않고 현대적이지도 않은 애매함 그 자체였다. 특히 무대를 끈처럼 가로지르는 거대한 LED 패널은 황당할 정도였다. 끊임없이 바뀌고 번쩍거리는 LED 패널 때문에 무용수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 눈이 따가울 지경이었다.
이 작품이 수정을 거쳐 국립무용단의 새로운 레퍼토리가 될 수 있을까. 아예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게 더 수월할 것 같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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