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일 법무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는 2013년 정년퇴임 당시 “현 체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지식인의 역할”이라며 “그게 좌(左)라면 나는 당연히 좌”라고 말했다. 그는 “사회에 다수와 소수, 강자와 약자가 있다면 소수와 약자의 편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습관을 키운다”며 “정부가 잘한다는 얘기는 보통 안 한다. 모든 정부에 대해 공통되게 지니고 있는 원칙”이라고 말했다. 이는 ‘청운 안경환 교수 정년기념 대담’이라는 제목으로 2013년 9월 서울대학교 ‘법학’지 제54권에 실린 내용이다.
서울대에서 오래도록 교수 생활을 한 그는 “선생과 학생은 일종의 부모자식, 형제지간”이라며 “학생이 경찰에 잡혀가면 무조건 빼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당시 대담에서 밝혔다. 학생 시위가 많았던 80년대에는 서울대에서 대규모 학생 징계가 있었는데, 안 후보자는 자신이 학장 역할을 수행하던 법과대학에서는 징계를 보류했다. 그는 제적된 다른 단과대 학생들이 찾아오면 학교를 상대로 소송하라고 권하기도 했다.
안 후보자는 국민학생(초등학생) 시절 이승만 전 대통령의 생일에 백일장에 나가 ‘우리 대통령’이라고 제시된 주제로 글을 써 상을 받았다고 대담에서 밝혔다. 그는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같은 백일장에 있었지만, 원고지를 찢어버리고 나와 버렸다는 얘길 듣곤 열등감을 느꼈다고 한다. 자신의 아버지 역시 이승만 단독정부를 거부했던 이였기 때문에 백일장 수상 소식에 기막혀 하며 매를 들었다고 안 후보자는 회고했다.
안 후보자는 수십년 뒤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임명장을 받을 때 노 전 대통령을 직접 만난다. 이때 그는 30분간 같이 차를 마실 시간을 활용해 “정치적 입장에 관계 없이 제 일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고 그는 대담에서 기억했다.
안 후보자는 자신이 이데올로기에 함몰되지 않고 균형을 잘 잡았다는 평도 받았지만, 이슈에 따라 좌우를 오가는 기회주의자로 평가되기도 했다고 스스로 말했다. 특히 그가 2013년 펴낸 ‘황용주: 그와 박정희의 시대’라는 책에 대해서는 ‘전향한 것이냐’는 평가까지 받았다고 밝혔다. 안 후보자는 “우리 세대는 일제 말기는 개인적으로 어떤 삶을 살았든 간에 전부 ‘일제의 역사’라 치부하고 오로지 청산 대상으로만 삼았는데, 과연 그런 걸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고 당시 말했다.
“다운계약서·음주운전… 나라면 인사청문 통과했을까”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출신인 안경환 법무장관 후보자는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진보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그는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죄 혐의와 정부의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에 대해 “자유민주주의의 근본을 이해하지 못한 것” “사상과 언론의 자유를 부정하는 시대착오적 편견의 소산”이라고 평가했던 것으로 12일 확인됐다. 우리나라의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에서 악법으로 정평이 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2014년 11월 17일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등이 주최하고 참여연대 등이 후원한 ‘국가안보와 표현의 자유의 위기’ 학술대회에서 인사말을 통해 이같은 의견을 보였다. 그는 “이제라도 우리는 전향적인 발상의 전환이 절실하게 요구된다”며 “국민과 국제사회가 최고법원의 판결을 주목한다”고 했다. 이 전 의원의 형사재판, 통진당 해산심판 결과가 나오기에 앞선 상황에서 그는 “과연 대한민국 국민은 선진 세계인처럼 사상과 언론의 자유를 제대로 누릴 수 있는지, 대한민국은 진정한 선진국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는 나라인지를 국제사회가 평가할 것”라고 밝혔다.
정작 다음 달인 2014년 12월 헌재는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법무부의 통진당 해산청구를 인용했다. 이 전 의원 일파의 내란관련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점에 대해서는 재판관 9인의 의견이 전원일치했다. 그 다음 달인 2015년 1월 대법원은 이 전 의원에 대해 징역 9년형을 선고했다. 내란음모 혐의와 RO의 실체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내란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본 원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한 것이었다.
당시 헌재에서 유일하게 통진당 해산의 반대의견을 밝힌 김이수 재판관은 현재 헌재소장 후보자로 지명돼 있다. 김 후보자는 최근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이석기 일파의 행위가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는 점은 반대의견에서도 명확히 지적했다”고 최근 밝혔다. 이 전 의원의 확정판결에 대해서는 “형사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의 방어권이 보장되고, 증거조사를 사실인정을 거쳐, 법원이 그 권한의 범위 내에서 적절히 선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평했다. 당시 통진당 해산을 청구한 법무부에서 위헌정당 태스크포스(TF) 팀장으로 일한 정점식 대검찰청 공안부장은 좌천 인사발령을 받고 지난 9일 검찰을 떠났다.
안 후보자의 정치색은 뚜렷한 편이다. 그는 정년퇴임 대담에서 “누구라도 박근혜씨를 이겨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안철수씨나 문재인씨 아무나, 그래서 단일화에 기여하고 싶었다”고 2012년 대선 과정을 돌아봤다. 그는 “(국가인권위원장으로서)이명박정부를 경험하고 나면서 이 정부가 연장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도 당시 말했다. 다만 “박근혜씨 개인에 대한 편견은 없었다”며 “‘박정희의 딸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식의 이야기는 정치적인 연좌제”라고 비판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는 고위공직자들의 엄격한 인사검증을 강조하면서 스스로는 문턱을 통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돌아본 적도 있다. 2014년 7월 지방 신문에 쓴 ‘인사청문회의 허와 실’이라는 제목의 기고에서다. 그는 “그때 내가 정식 인사청문회를 거쳤더라면 어땠을까? (결과는)알 수 없는 일이다. 병역 기피, 위장 전입, 그런 거야 없지만 ‘다운계약서’를 통해 부동산 취득세를 덜 냈을 것이다”라고 했다. 논문 자기표절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일”이라며 “언론과 대중이 만든 말”이라고 했다.
그는 성희롱에 대해서는 “문제된 적은 없지만 행여 모를 일”이라 했고, 음주운전에 대해서는 “운 좋게 적발되지는 않았지만 여러 차례 있었다”고 했다. 안 후보자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2채의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 각각 공동주택가격 기준 4억1700만원, 9억2800만원이다.
安후보자 지명 소감 회견 “檢 중심 아닌 다양한 인적자원의 법무부”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검사만이 중심이 되는 법무부가 아닌 다양한 인적자원의 법무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에 대해선 “법무부가 아닌 국회와 국민이 결정할 일”이라면서도 기본적으로 찬성 입장을 전했다.
안 후보자는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방배동 자택 앞에서 지명 소감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법무부에는 검찰 업무 외에도 다른 업무가 많다. 굳이 우수한 검사가 담당하지 않아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며 법무부의 ‘탈(脫) 검찰화’를 강조했다.
공수처 설치와 관련해서는 “법무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국회와 국민이 결정할 일”이라고 말을 아끼면서도 “성의를 갖고 개방적으로 논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엔 공수처 설치가 검찰의 위상과 관련 돼 있었다”고 전제하며 “요즘 들어서 사회적 분위기나 논의가 공수처 설치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비중이 많이 옮아 간 듯 하다”고 전했다.
기자회견에 앞서 안 후보자는 권익환 기획조정실장 등 법무부 간부들과 자택에서 만나 법무부 주요 업무 현황과 인사청문회 준비 계획 등을 보고받았다. 안 후보자는 13일부터 서울 종로구에 마련된 사무실로 출근하며 인사청문회 준비를 할 계획이다.
그는 “새정부에 대한 기대가 높은 시점에 법무부 장관 후보로 임명돼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법과 원칙을 지켜내고 개혁과 통합을 이루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인권 친화적 법무행정 실현에 힘쓰겠다”고도 했다.
이경원 황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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