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맨브러더스 밴드' 그레그 올맨 타계…미 대표적 록스타

Է:2017-05-28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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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부의 서던 락을 대표하는 그래미상 수상 악단 올맨 브러더스 밴드(Allman Brothers Band)의 그레그 올맨이 27일(현지시간) 조지아주 서배너의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향년 69세로 숨을 거두었다.

올맨의 매니저인 마이클 레먼은 그의 사인이 간암이라고 언론에 밝혔다. 올맨은 최후까지 연주활동을 하기 위해서 암에 걸린 사실을 비밀로 하고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올맨은 지난해 10월 공연을 마지막으로 그 이후에 예약되어있던 연주회는 건강 때문에 모두 취소해야했다. 그는 지난 8월 "중대한 건강상의 이유로 마요 병원에서 의사의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후 목수술을 받는다며 사람들과의 면담을 모두 취소했고 올해 3월에는 2017년 중에 예정되어 있던 공연들도 모두 취소했다.

아직 장례일정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올맨의 유언대로 거의 반세기 전(1969년) 밴드를 출범시켰던 조지아주 메이컨 시의 로즈 힐 묘지에 있는 기타리스트였던 형 듀에인 올맨의 곁에 나란히 묻히게 된다.

같은 서던 락과 컨트리 뮤직의 찰리 대니얼스는 트위터에 "그레그 올맨은 블루스에 탁월한 감성을 가진 희귀한 존재였다. 그의 훌륭한 목소리가 멈췄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올렸다.

테네시주 내쉬빌에서 태어난 올맨은 금빛 장발로 유명했으며 아버지가 총격으로 사망한 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형 듀에인을 우상처럼 여겨 그를 따라서 여러 밴드에 참가했고 함께 올맨 브러더스 밴드를 결성해 큰 인기를 누렸다.

이 밴드는 1969년 1집 데뷔 앨범 (The Allman Brothers Band) 을 냈고 1995년 그래미상 최우수 락 연주상을 받았다. 1995에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정도로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그는 2012년 회고록 " 내가 진 십자가"( My Cross to Bear )에서 아버지가 술집에서 만난 어떤 남자에게 살해된 후 그의 평생의 삶의 중심인물은 형 듀에인이었다고 밝혔다.

이들을 최고 스타로 만든 건 데뷔앨범이 아니라 1971년에 낸 "필모어 이스트에서"(At Fillmore East)였다. 이후 밴드는 인기의 정점에 올랐고 듀에인은 자신의 악단 뿐 아니라 아레사 프랭클린, 윌슨 피켓, 에릭 클랩턴과 함께 세션작업을 하면서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떠올라 팬들의 열광적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형 듀에인은 필모어 공연의 녹음 음반을 낸지 불과 몇달 후인 1971년 10월에 오토바이 사고로 숨졌다. 다음해에는 악단 멤버중 오클리도 같은 사고로 사망해 그레그는 평생 불운과 상심에 시달렸다.

2012년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그레그 올맨은 "자신은 평생 형을 매일처럼 마음에 간직하고 살아왔으며 가끔씩은 실제로 그의 존재를 확실히 느끼기까지 한다"고 말했다.

1980년대에 해산한 올맨 브러더스 밴드는 그 이후 오랜 세월에 걸쳐서 여러 차례 재구성과 재활동을 전개해왔으며 창립 20년이 넘은 1990년대 부터는 다시 새로운 멤버, 새로운 음악으로 새 팬들을 만나고 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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