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하하하하하.” 아직도 귓가에 선한 웃음소리. 배우 정우(본명 김정국·36)는 인터뷰 내내 특유의 쾌활함으로 분위기를 이끌었다. 스스로 놀랄 만큼 솔직한 대답과 폭소를 유발하는 농담 퍼레이드. 이토록 소탈하고 인간적인 그의 성품은 작품 속에서도 그대로 묻어나곤 한다.
그래서인지 정우는 실화 바탕의 영화와 인연이 깊다. 스스로도 “휴머니티가 느껴지는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고, 사실적인 이야기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인정한다. 자연스러운 연기로 인물의 진솔함을 빚어내는 그의 장점은 실화를 만나 극대화된다.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재심’에서 역시 그랬다.
‘재심’은 살인사건을 목격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10년간 수감생활을 한 청년 현우(강하늘)가 자신의 무고를 믿어준 변호사 준영(정우)의 도움으로 진실을 밝히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다. 개봉 24일째에도 굳건히 박스오피스 중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누적 관객수는 233만명(영화진흥위원회·11일 발표). 손익분기점(165만명)은 일찌감치 넘어섰다.
“뻔한 대답일 수도 있지만 시나리오 자체가 흥미로웠어요. 읽으면서 계속 다음 페이지가 궁금했거든요. 되게 아껴가면서 봤던 것 같아요(웃음). 스토리가 탄탄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죠. 그 이후에 실화라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이야기에 힘이 있더라고요.”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우는 “시나리오를 볼 때 준영 캐릭터에 연민이 느껴졌다”면서 “속물근성이 있는 인물이라 조금 얄미워 보일 수 있으나 인간적이고 빈틈이 있어 정이 느껴지더라. 점점 정의롭고 바른 길로 나아가는 모습이 감동적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초반 준영은 유쾌하지만 마지막에는 굉장히 진중해지잖아요. 그런 변화를 곡선으로 그려내고 싶었어요. 변곡점이 어디인지 모르도록. 그만큼 자연스럽게 흘러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죠. 처음과 끝을 비교했을 때 눈빛이 완전히 다르지만 그게 어색하지는 않게요. ‘어? 다른 사람이네. 근데 낯설지 않네.’ 그런 느낌을 표현하고자 했어요.”
정우는 촬영 당시 유리가 깨져 이마와 손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비리 경찰 철기(한재영) 일당과 실랑이를 벌인 뒤 유리문을 박차고 나가는 장면을 찍을 때였다. 격렬한 액션신 경험도 많은 그인데 이처럼 크게 다친 건 처음이었다. 무려 70~80바늘을 꿰매는 대수술을 받았다. 사고 이후 유리문을 열 때마다 멈칫하게 되는 트라우마가 생겼을 정도다.
“배우가 얼굴 다치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아요? 근데 전 이마를 엄청 꿰맸어요(웃음). 부분 마취만 한 상태에서 한 시간 반 정도를 꿰맨 것 같아요. 실을 하도 많이 박아서 나는 무슨 재봉틀로 옷이라도 만드는 줄 알았다니까요. 아하하하.”
걱정하는 취재진을 안심시키려는 듯 정우는 연신 농담을 곁들였다. ‘그렇게 웃을 일이 아닌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저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편”이라며 다시 호방하게 웃어 보였다. “지금은 괜찮아요. 그때는 많이 안타깝고 속상하긴 했는데…, 지금은 이렇게 잘 움직이는데요 뭐.”
현장에서 정우는 ‘한번 더’를 입에 달고 살았다. 감독이 ‘오케이(OK)’했어도 그는 여지없이 ‘한번 더’를 외쳤다. “이번 작품에선 제가 이끌어가는 역할을 해야 했어요. 그래서 ‘한번 더’ 하겠다며 의욕을 보였죠. 컷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현장 열기에 힘을 보태고 싶은 생각 때문이었어요. 제가 그렇게 하니까 하늘이도 편하게 ‘한번 더 한번 더’ 하더라고요.”

어느덧 경력 17년차. 2001년 데뷔해 영화 ‘바람’(2009)으로 뒤늦게 주목받은 정우는 무던히 한 길을 걸어왔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tvN·2013)로 기어코 빛을 보더니, ‘히말라야’(2015)로 스크린에서도 성공을 이뤄냈다. 그럼에도 정우에게는 들뜬 기색이 없다. “‘히말라야’는 뭐 (황)정민이 형한테 업혀간 거였죠(웃음). 너무 솔직했나요? 하하.”
“작품을 해나가면서 스스로 조금씩 변화한다는 느낌이 든다”는 정우는 “첫 주연작 ‘스페어’(2008)를 찍을 땐 중압감 때문에 예민함이 생겼었다. ‘바람’이라는 작품을 하면서 연기의 재미와 희열을 느끼게 됐다. 이후 여러 작품들을 통해서도 제가 몰랐던 걸 알아가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내 작품들이 인생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난해 1월 배우 김유미(38)와 결혼해 그해 12월 첫 딸을 얻은 그는 요즘 행복에 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따금씩 아내 김유미에게 작품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다만 선택만큼은 자신의 몫. 그만큼 배우로서 서로를 존중하기 때문이란다.
가족 얘기에 정우는 짐짓 조심스러워했다. 연기와 일 외에 최근의 관심사가 무엇이냐고 에둘러 물으니 그제야 어렵사리 속마음을 꺼냈다. “사랑이죠 사랑. 에이, 아시잖아요.” 쑥스러웠던 모양이다. “아하하하.” 너털웃음으로 그는 긴 답을 대신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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