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작가 함세덕(1915∼1950)은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한국 근대연극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는 ‘한국 연극의 개척자’ 유치진의 문하에서 배우긴 했지만 당시 연극계의 주류였던 일본 유학파와는 달리 독서와 공연 관람을 통해 극작술을 터득했다. 21세이던 1936년 첫 작품 ‘산허구리’로 등단한 뒤 이후 10여년간 ‘동승’ ‘감자와 쪽제비와 여교원’ 등 20여편의 희곡을 남겼다. 유치진의 영향을 받은 그의 작품은 낭만주의적 정서에 기반을 둔 사실주의가 특징이다. 다만 농촌문제를 주로 쓴 유치진과 달리 강화도에서 자란 그의 작품은 어촌을 무대로 한 것이 많다.
일제 말기 친일희곡을 썼던 그는 광복과 함께 좌익 계열의 대표적 극작가로 활동하다가 47년 월북했다. 그리고 한국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서울에서 폭탄을 맞고 수술 도중 죽었다.
88년 월북작가 해금조치 후 그의 작품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뤄졌지만 영화화 됐던 ‘동승’ 외에는 거의 무대화 되지 않았다. 올해 국립극단이 지난해부터 이어온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시리즈 가운데 하나로 그의 처녀작 ‘산허구리’를 무대에 올린다.
7∼31일 백성희장민호극장에 공연되는 이번 작품은 서해안 어촌 마을에 사는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비참했던 현실과 사회적 모순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아일랜드 작가 존 밀링턴 싱의 ‘바다로 가는 기사들’이 이 작품의 모델이다. 자식을 바다에서 잃은 어머니의 비극이라는 상황은 비슷하지만 배경과 인물을 한국적으로 풀어내 원작과는 다른 독창적인 작품이 됐다.
그런데 사실주의 연극인 이 작품의 연출을 비사실주의 연출가로 유명한 고선웅이 맡아 관심이 크다. 고선웅은 경쾌하고 과장된 독특한 무대어법으로 최근 국내 공연계에서 대중과 평단의 사랑을 두루 받고 있다. ‘각색의 귀재’로도 불리는 그는 늘 작품을 고쳤지만 이번엔 원작을 고스란히 무대에 구현할 예정이다.
처음으로 사실주의 연극에 도전하는 그는 “‘산허구리’ 희곡을 읽으면서 등장인물이 ‘허구’가 아닌 ‘실존인물’로서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데 감동을 느꼈다”며 “이 뜨거운 감동을 함께 나누고 싶어 사실주의 연극을 해 보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주의가 이 시대 연극으로서 설득력이 있는가 하는 부분에 대한 고민이 있지만 원형을 회복함으로써 연극의 정신을 찾아보는 데에 큰 의의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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