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규슈 ‘온천마을’이 色을 입기까지

Է:2016-09-19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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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열도 최남단 규슈는 한국인들이 자주 찾는 온천관광의 요지다. 구마모토현의 구로카와 온천을 비롯, 오이타현의 유후인, 벳푸 등 명소를 찾은 한국인 관광객의 비중은 지난해 규슈 전체 외국인 관광객 가운데 38%에 이르렀다. 지난 4월 구마모토 지진 약 5개월 뒤인 지난 2일, 이 지역 유명 온천마을인 구로카와와 유후인을 찾았다.

◆ 함께 만들어낸 동화 속 온천마을, 구로카와

출처: 구로카와 온천마을 홈페이지

구로카와 온천 마을로 들어서는 길은 이채롭다. 군데군데 서 있는 자판기를 비롯해 료칸(온천 여관)과 음식점이 모두 단아한 검정옷을 입었다. 굽이진 언덕길에는 녹음(綠陰)이 짙게 깔려 마을의 검은빛과 조화를 이룬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 등장할 법한, 동화 마을 같은 풍경이다.

우리말로 ‘검은 시내’를 뜻하는 구로카와(黑川)는 마을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힘을 합쳐 손꼽히는 관광지를 만들어낸 모범 사례다. 이곳 사람들은 스스로 여러 언덕길과 다리를 정비하고 쉼터를 만든다. 마을 전체를 같은 색으로 통일한 것 역시 스스로가 내린 결정이다. 이 마을에서는 제 아무리 트레이드 마크가 빨간색인 코카콜라 자판기라도 검정색을 칠해야 한다.

구로카와에도 1970년대 전까지는 손님이 그리 많지 않았다. 워낙 산골 깊숙이 위치한 탓이다. 1980년대 들어서야 마을 젊은이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면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이른바 ‘온천 마패’를 만들고 풍경을 가꾸기 위해 마을 곳곳에 나무를 심었다. 유력지인 일간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이 마을을 ‘가보고 싶은 온천’ 1위로 꼽으면서 유명세가 올랐다.
출처: 구로카와 온천마을 홈페이지

구로카와 온천마을에서 발행하는 '온천 마패'. ⓒ일본외신센터 요시타케 토모미

마을 발전에는 청년 노인 할 것이 없다. 마을의 간판 상품인 마패는 경로회에서 손수 제작한다. 노인들로서는 돈벌이도 하고 보람도 있으니 일석이조다. 돈벌이를 노린 외부업자가 경관을 훼손하는 걸 막기 위해 조례도 따로 제정했다. 마을 사람들끼리 상시 회의를 하고 순찰도 돈다. 비록 당국이 최근 위생문제를 제기해 중지됐지만 마을 젊은이들이 물을 타고 흐르는 국수 건저먹기 등 이색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구로카와 온천마을의 한 족욕온천의 모습 ⓒ국민일보

마을 관계자는 “모두가 가난하고 못 살았는데 함께 노력해 잘 살게 됐다”면서 “구로카와는 하나의 온천’이라는 구호 아래 서로 협력하는 분위기가 정착됐다”고 설명했다.

◆ 변화를 내다본 선구자, 유후인의 겐타로

오이타현 중심부에 위치한 유후인은 구로카와에서 한 시간이 좀 안되는 거리다. 마을에 들어서자 동네를 둘러싼 산줄기 아래로 소들이 풀을 뜯고 있는 넓은 초원이, 다시 그 아래로 오히타 강을 따라 모인 료칸과 호텔, 기념품점 등이 모습을 드러낸다. 곳곳의 온천은 물론 잘 가꿔진 산책로, 아기자기한 마을 경관을 찾아 매년 수백만 명이 이곳을 들른다. 수십년간 거르지 않고 매달 열려온 영화제, 음식축제, 음악회 등도 유명하다.

유후인 마을 전경 ⓒ국민일보


유후인은 대형 숙박시설이나 오락시설 없이 수십 년간 지역만의 독특한 색깔을 만들어낸, 지역 관광지 개발의 세계적 모범 사례로 꼽힌다. 지금은 마을의 어르신이 된 나카야 겐타로(82)씨가 주도한 변화다. 구로카와가 ‘협력형’으로 발전한 곳이라면 유후인은 ‘선구자’가 이를 이끈 셈이다. 유후인을 찾은 지난 2일 겐타로씨는 단정한 신사복 차림으로 기자단을 맞았다.

겐타로 씨는 이십대 청년이던 56년 전, 영화촬영소에서 일하다 마을로 돌아왔다. 가업인 여관을 이어받기 위해서였다. 당시만 해도 유후인의 풍경은 지금과 달랐다. 이전부터 온천이 유명하긴 했지만 사실 평범한 촌에 가까웠다. 당시만 해도 기업인들이나 공무원들이 버스로 소위 ‘기생관광’을 왔다. 밤새 술 마시고 로비에서 춤추고 놀다 자고 가는, 우리나라로 치면 산장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농가 곳곳에서 울어대는 닭과 개구리 탓에 온천을 찾아온 손님들이 불평하곤 했다.
젊은 겐타로 씨는 마을에 손님을 더 모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는 관광업이 일찌감치 발달한 유럽에서 해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뜻이 맞는 일행과 함께 독일에서 약 40일 간 현지인의 집에 머무르며 유럽을 둘러봤다. 관광마차, 목장운동, 마을마다 작게 열리는 음악회와 전시회, 굽이굽이 펼쳐진 산책로가 눈에 들어왔다. 수세기간 발달해 온 근대 유럽의 여가 문화였다.

하지만 ‘산책’의 개념은 시골마을 유후인에 낯설었다. 유럽에서 돌아온 겐타로씨 일행이 산책용 도로를 만들자고, 그늘진 자리를 만들자고 이야기 해도 마을 주민들은 농사를 이유로 반대했다. 구불구불한 산책로를 만들면 트랙터 몰고 가는 길이 불편해지고, 쉬어갈 그늘을 만들면 볕이 들지 않아 농사에 해가 된다는 식이었다.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4~5년이 흘렀다.

전환점이 된 건 1975년 4월 일어난 지진이었다. 손님이 뚝 끊기자 마을에는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여론이 생겼다. 힘을 얻은 겐타로씨 등은 산책로를 만들고 대마도에 가서 마차를 가져왔다. 매달 영화제와 연주회를 비롯해 행사를 열었다. 으레 한 장소에서 한꺼번에 제공하던 숙박과 식사, 유흥 등을 각각 분리시켰다. 유럽의 전원적인 관광지를 본딴 변화였다. 마을 사람들은 마뜩찮아 하면서도 모두 따랐다.
유후인 마을 냇가를 거니는 오리들 ⓒ일본외신센터 요시타케 토모미

마을의 변화는 시대의 흐름과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급속한 산업화에 지친 사람들이 보다 전원적인 여가를 찾기 시작했다. 마침 지자체에서 지역특색화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도 힘이 됐다. 수십년이 흐르면서 유후인은 일본 전역에서도 손꼽히는 관광지가 됐다.


◆ 지진이 지나간 온천마을

지난해 4월 규슈를 덮친 지진에서 유후인이 입은 피해는 경미했다. 1명 정도가 중상을 입은 수준이다. 하지만 손님들의 발길이 끊겼다. 지진이 난 다음달인 5월 관광객 수는 지난해 같은 달 대비 45%, 6월 35%로 급감했다. 수습에 나선 아베 신조 정부는 이른바 ‘부흥할인제’를 실시해 규슈 지역 숙박비 등을 약 70%까지 할인할 수 있도록 해줬다. 이에 힘입어 유후인의 7월 관광객 수는 지난해 같은 달 대비 60~70%, 8월에는 70~80% 선까지 회복됐다.
구로카와 온천마을로 들어서는 다리 위 전경 ⓒ국민일보

구로카와 마을 역시 지진 뒤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물리적인 피해는 일부에 불과했지만 마을로 통하는 도로가 훼손된 게 문제였다. 예약 취소가 이어진 탓에 금액상으로 9억2000만엔(약 100억원)에 이르는 손해를 봤다. 5월 들어 전년 대비 27%까지 떨어진 예약률은 6월 초까지도 34%에 머물렀다. 일본 정부가 부흥할인제를 실시한 뒤 7월 매출은 전년 대비 75%까지 회복했다. 지금의 할인제가 9월에 끝난 뒤 정부는 10월부터 부흥할인제 2기를 실시, 할인율 50%를 적용할 계획이다. 여행객들로서는 온천관광이 절정기에 이르는 가을과 겨울에 규슈온천을 저렴하게 경험할 호기다.

규슈 지방자치단체들은 부흥할인 이후에도 구로카와와 유후인을 비롯한 이 지역 온천 관광지에 손님이 끊이지 않도록 할 방안을 고심 중이다. 가바시마 이쿠오(69) 구마모토현 지사는 한국 기자단과의 인터뷰에서 “부흥할인제가 지역에 활력소 역할을 해줬다”면서도 “앞으로는 스스로의 힘으로 회복해야 한다”며 앞일을 걱정했다. 이어 “외국인 관광객 중 한국인들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지만 지진 뒤 급감했다”면서 이 지역을 방문해 줄 것을 한국에 부탁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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