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폭염특보가 내려진 11일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은 이글거리는 햇살을 고스란히 맞고 있었다. 폭염은 빈곤층에 더 가혹하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은 숨통을 틀어막을 듯이 열기를 뿜어냈다.
처절한 여름나기
쪽방촌 입구에 있는 ‘무더위 쉼터’는 주민들로 붐볐다. 이곳은 경로당, 주민센터와 함께 동네에 얼마 없는 ‘에어컨 구역’이다. 쪽방살이 3년째라는 김모(59·여)씨는 요즘 매일같이 무더위 쉼터에 ‘출근 도장’을 찍는다. 김씨는 “집이 좁아서 더 덥다”며 “그나마 우리 집은 선풍기가 있어 좀 나은 편”이라고 했다. 지난달 김씨가 낸 전기요금은 2만5000원이었다. 전기요금이 무서워 선풍기도 거의 틀지 않았다고 한다.
쪽방촌 주민 신현조(72)씨는 밤마다 종묘공원으로 향한다. 열대야가 심해 방에서는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다. 낮에는 무더위 쉼터나 탑골공원을 찾아 더위를 피한다. 신씨가 지내는 방은 전기요금을 포함해 월세 24만원짜리다. 그는 “밤에는 탑골공원이 문을 닫아서 종묘공원이나 인사동 광장에서 잔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벌집촌’의 풍경도 비슷했다. 더위에 지친 노인들은 그늘로 모여 들었다. 간병인 일을 하는 최모(61)씨는 낮에 에어컨이 나오는 병원에서 일을 하느라 사정이 좀 낫다고 했다. 다만 밤에 집으로 오면 선풍기를 ‘강’으로 트는 것 말곤 더위를 피할 방법이 없다. 그는 “최근 한 달 동안 일을 못했다. 꼼짝없이 집에서 선풍기만 돌렸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쪽방촌의 여름나기는 처절하다. 서울시가 지난달에 5개 쪽방촌의 주민 3507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선풍기조차 없는 주민이 474명이나 됐다. 환기창이 없는 방에서 생활하는 주민도 720명이었다. 서울시는 쪽방촌에 무더위 쉼터 7곳을 운영하고 있지만 주민들 모두를 수용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무더위 쉼터의 한 관계자는 “그나마 겨울에는 에너지취약계층에 대한 기업 후원이 많은 편인데 여름에는 그마저도 줄어드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서민들은 더 덥다
폭염은 노숙인과 일용직 노동자에게 치명적이다. 올 들어 온열질환으로 숨진 10명 중 3명이 40대 남성이었다. 이들은 뙤약볕 아래에서 일을 하거나, 갈 곳이 없어 노숙을 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지난달 28일 전남의 한 농원에서는 외국인 일용직 노동자 송모(43)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다음 날 부산에서는 김모(40)씨가 열사병으로 쓰러져 사망했다. 김씨는 일정한 직업이 없었다. 지난 1일 충북의 한 공원에서 사망한 추모(40)씨도 중국국적의 노숙인이었다.
대형마트나 쇼핑몰과 달리 냉방이 잘되지 않는 재래시장도 타격을 입고 있다. 10일 오후 2시 서울 관악구 삼성동시장은 적막했다. 생선가게의 삼치 밑에 깔아둔 얼음은 다 녹아 줄줄 흘렀다. 상인들은 연신 부채만 흔들었다. 그나마 장을 보러 나온 손님들도 양산을 든 채 “덥다”는 말만 반복했다.
장사를 한 지가 30년이 넘었다는 윤원님(79·여)씨는 찐 옥수수를 봉지에 나눠 담고 있었다. 노점이라 마땅히 더위를 피할 곳도 없었다. 소쿠리에 쌓인 옥수수에선 뜨거운 김이 펄펄 올라왔다. 윤씨는 “그래도 미리 집에서 옥수수를 쪄왔다. 날이 너무 더워 여기선 불을 피울 수가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폭염이 심해진 이달 초부터는 시장을 찾는 발길은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그래도 윤씨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노점을 지킨다.
한 점포의 차양막 그늘에 앉은 양모(83·여)씨는 팔려고 가지고 나온 호박잎을 다듬는데 열중했다. 두 손을 합친 것보다도 큰 부채가 양씨의 유일한 ‘더위 쫓기’ 수단이었다. 한 봉지에 2000원하는 호박잎은 30분 동안 한 번 팔렸다.
아들과 산다는 양씨의 집에 에어컨은 없다. 선풍기도 전기요금 걱정에 잘 틀지 않는다고 했다. 양씨는 “아들은 집이 덥다며 밤에도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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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해서 더 덥다’ 쪽방촌의 처절한 여름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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