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명의 사상자를 낸 해운대 교통사고 가해자가 뇌전증 환자인 것과 관련해, 대한뇌전증학회가 5일 “당뇨와 고혈압이 동반된 뇌전증(간질) 환자의 큰 교통사고를 마치 뇌전증이 원인인 듯 몰아가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18세기 마녀 사냥과 같다. 뇌전증의 사회적 낙인을 오히려 악화시키는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형태”라고 지적했다.
대한뇌전증학회(회장 홍승봉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긴급 보도자료를 내고 “해운대 사고를 낸 환자는 당뇨와 고혈압 등 여러 가지 지병을 갖고 있어 사고 원인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불분명하다”면서 “당뇨약에 의한 저혈당 증상도 의식 소실과 이상 행동, 뇌파 이상을 보여 사실 뇌전증 발작과 구별하기 어렵다. 또 순간적으로 혈압이 올라가는 고혈압성뇌증도 기억장애, 전신혼란, 졸음증에 빠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환자의 경우 어떤 문제가 운전 중에 정신을 잃게 했는지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우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뇌전증학회에 따르면 뇌전증 환자의 70%는 약물로 잘 조절돼 자동차 운전 등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나머지 30%는 약물 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으나, 수술을 통해 85%에서 치료될 수 있다. 뇌전증은 약을 먹고 약 3년간 증상이 없으면 그후 서서히 약을 줄여 중단할 수 있다.
홍승봉 회장은 “이번 사고가 뇌전증 증상에 의한 것으로 가정했다 하더라도 뇌전증 자체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 환자가 약을 몇일간 먹지 않아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유럽, 미국 등 선진국들의 연구에 의하면 ‘뇌전증 환자의 교통사고 상대적 위험도’는 70세 이상 고령군 또는 20대 젊은 연령층 운전자들에 비해 훨씬 낮다. 또 1년간 발작이 없는 뇌전증 환자의 교통사고 상대적 위험도는 60세 이상 정상인들보다도 낮다.

실제 벨기에 교통국 웹사이트를 보면 뇌전증으로 인한 교통사고의 최대 상대 위험도는 1.8이다. 이는 25세 미만 젊은 나이의 상대적 위험도(7.0)와 비교했을 때 4분의 1 수준이다. 또 25세 미만 젊은 여성(3.2), 76세 이상 노인(3.1) 보다도 훨씬 낮다. 생리기간의 여자 상대 위험도(1.6)와 비슷하다.
홍 회장은 “따라서 이번 사고에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뇌전증 및 운전 중 의식소실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질환들의 교통사고의 상대적 위험도를 과학적으로 평가해 합리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른 질환의 교통사고 유발 연관 연구는 매우 드물다. 1996년 및 2004년 영국 통계를 보면 인슐린 의존형 당뇨병 환자의 5.2%에서 교통사고를 경험했다. 31.7%의 환자들은 운전 중 저혈당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근경색, 치매 및 뇌졸중 등 만성질환에서의 교통사고 유발 관련 국내 연구도 매우 빈약하다.
뇌전증학회는 "국토교통부와 경찰은 보건복지부와 협력해 각 질환별 교통사고의 상대적 위험도를 연구해 교통사고를 줄이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학회는 또 기존에 면허를 취득한 뇌전증 환자들의 적성검사시 별도로 자동차 운전을 포함한 안전교육을 철저히 받도록 자료개발 및 교육 강화 방안을 관련 기관과 협의해 추진키로 했다.
뇌전증 환자들의 기본권 보장도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운전면허 취득 기준은 뇌전증이 결격 사유로 돼 있는데, 미국의 경우 (주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무증상 기간의 규정 없이 의사 소견서에 따르거나 3, 6개월 또는 1년의 최소 무증상 기간 후에는 운전을 허락하고 있다. 중간에 발작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운전면허를 일시 정지시키고 발작이 수개월 이상 잘 조절될 때는 다시 운전을 할 수 있게 하고 있다.
홍 회장은 “아울러 현재 약물 난치성 중증 뇌전증 환자들은 낮은 소득과 높은 진료 비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산정특례 등 국가 지원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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