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작가 이병주(1921∼1992)가 되살아나고 있다.
1970∼80년대를 풍미했던 이병주의 작품 세계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활기를 띠는 가운데 절판됐던 그의 역사소설이 잇따라 재출간되고 있다. 나남출판사는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이병주의 역사소설 ‘천명: 영웅 홍계남을 위하여’(1·2권)을 2일 출간했다. 2014년 낸 ‘정몽주’ ‘정도전’ ‘허균’에 이어 4번째다.
천명은 홍길동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홍계남(1564∼1597) 장군의 일대기를 그린 역사물이다. 홍계남은 우찬성 홍자수와 사화(士禍)의 소용돌이 속에서 양갓집 규수에서 노비로 전락한 옥녀 사이에서 태어났다. 서얼에 대한 차별이 극심했던 조선 사회. 적자보다 총명하고 강건한 기상을 지녔던 그였지만 신분제도는 넘기 힘든 벽이었다. 문과에는 응시조차 할 수 없어 무과로 등용된 홍계남은 임진왜란에 의병장으로 참전해 무공을 세우고 서출로는 파격적으로 영천군수에 오른다. 그러나 자신과 같은 서자 출신들을 보살피다 양반을 누르고 천생들을 도왔다는 ‘억반부천(抑班扶賤)’의 죄와 역모죄를 뒤집어쓰는데….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홍계남을 작가 이병주는 시대를 해부하는 촘촘한 서사로 살려낸다.
우리는 임진왜란과 이순신은 알지만 홍계남은 잘 모른다. 홍계남은 왜군들이 이름만 듣고도 벌벌 떨 정도로 혁혁한 무공을 세웠음에도 공적에 비해 이름이 덜 알려졌다. 주로 게릴라 전술로 왜군들을 격파했기에 정사(正史)에 전공이 두드러지게 기록되지 않은 탓이다.
“역사는 산맥을 기록하고 나의 문학은 골짜기를 묘사한다”는 작가관을 가진 이병주는 숨은 보석 같은 홍계남의 존재를 진흙 속에서 건져냈다. 조선시대 역사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그 시절 특유의 지적 문체와 버무려져 있어 장년 독자층의 향수를 자극할 듯 하다.
천명은 ‘유성(流星)의 부(賦)’라는 제목으로 1981년 2월부터 1년 6개월간 한국일보에 연재됐다.
나남 출판사 고승철 주필은 “이병주 선생은 1970,80년대 최고의 작가로 인기를 누렸음에도 1992년 세상을 떠나면서 갑자기 잊혀졌다”면서 “작품을 문예지가 아닌 신문과 시사잡지에 주로 연재했고, 본격 문학이 아닌 대중작가로 분류된 데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출판사 측은 절판 소설의 잇단 재출간이 30∼40대 청장년층위주의 문학 시장이 60대 은퇴세대로까지 독자층의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했다.
와세다 대학 불문과를 중퇴한 이병주는 진주농과대학교수 등을 지냈고, 국제신보 주필로 활동하기도 했다. 44세 때인 1965년 ‘소설 알렉산드리아’로 등단해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역사소설로 수년 만에 작가로 안착했다. 40대 중반 등단해 작고하기까지 문단 활동 27년 동안 60권이 넘는 장편과 작품집을 남긴 다산(多産)의 작가였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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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세대를 위하여..돌아온 '지리산'의 작가 이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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