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감과 상실감, 그리고 한(恨)
강덕영 한국유나이티드 대표
세상을 살다 보면 “누가 과연 나의 진정한 친구이며, 누가 나를 해치는 사람인가”를 생각해 볼 때가 많다.
그간 살면서 여러 사람들을 많이 만나 보았다. 아주 점잖고 따뜻하게 말할지라도 실제로는 말로만 도와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이나 태도는 무뚝뚝하고 무정해 보이는데 속마음은 따뜻해 끝까지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 그에 대한 고마움은 가슴 속에 항상 남게 되고, 마음의 빚을 평생 갚으며 살게 된다.
성경도 이 문제를 깊이 말씀하신다. 가난한 이웃이 배가 고프다고 할 때 친절하게 밥을 먹으라고 가르쳐주고, 아픈 이웃이 있을 때엔 약을 먹으라고 조언해 주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실제로는 전혀 도움을 주지 않은 사람이다. 성경에는 “정작 그에게 먹을 밥과 입을 옷을 주지 않는데 그것이 무슨 사랑이냐”는 물음이 있다.
내가 평소에 많이 베풀었던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정작 내가 어려울 때 그에게 도움을 청하면, 그간 많은 도움을 받은 그가 반드시 나를 도와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긴다. 그러나 그가 냉정하게 거절한다면 상실감을 뛰어 넘어 한이 되어 가슴에 남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자식에게 큰 기대를 걸고 모든 재산을 넘겨주었는데 경제력이 없어진 부모를 모른 척하는 사람이 요즘 많다고 한다. 그래서 법정에는 재산을 반환해 달라는 소송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예수님이 매우 시장하시어 길에 있는 무화과나무에서 그 열매를 찾으셨으나 열매가 없자 그 나무를 저주하시니 뿌리째 말라 죽었다는 구절이 있다. 나는 이 구절을 대할 때마다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사용하시기 위해 나에게 재산과 지식과 건강을 주셨는데, 과연 나는 하나님의 기대만큼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겁이 날 때가 많다.
하나님의 기대는 100인데 나는 10도 못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보면서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느낄 때가 많다. 내가 기도하는 것은 형식적일 뿐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야 하는데 어려운 일에서는 다 빠지고 나에게 유익한 것, 나의 영광과 명예를 위해서만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리고는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 최선을 다해 순종하고 있다”고 스스로 변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요즘 동성애법(차별금지법) 문제로 미국이 완전히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괴이한 사회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예수님을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목회자가 설교하거나 학교에서 교육하면, 해당 목회자 혹은 교사가 법적 처벌을 받게 되는 경우도 있다. 동성애가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다고 설교하면 처벌을 받는 미국이 되었다. 이제는 길에서 전도를 해도 체포되는 미국이다. 참 이상한 법률이다.
이것이 이제 한국 국회에도 곧 제출된다고 한다. 그리고 정치가 중에서나 교회 목회자 중에서도 이 법률에 찬성하는 사람이 많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 땅에 전해지지 못할 때, 대한민국의 역사는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다.
이를 막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방송에서, 그리고 골방에서 기도하며 갖은 고난을 겪는 분들이 있다. 나는 그 분들을 볼 때마다 큰 빚을 진 자가 되는 기분이다. 그 분들을 볼 때마다 나 자신은 왜 이렇게 작아지는지 모르겠다. 하나님 앞에서 십자가를 지지 않겠다고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주님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분들 앞에 부끄러운 마음으로 존경을 보낸다. 하나님, 나에게도 그런 믿음과 지혜를 주시옵소서.
김무정 기자 k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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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덕영 칼럼]기대감과 상실감, 그리고 한(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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