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뷔작 ‘은교’(2012)가 나온 게 불과 4년 전이다. 배우 김고은(25)은 부지런히 달려왔다. 동네 미친 언니(‘몬스터’)부터 생존본능 강한 고아(‘차이나타운’), 상처 많은 검객(‘협녀, 칼의 기억’)에 이르기까지…. 그의 도전은 늘 쉽지 않았고, 가끔은 깨지기도 했으며, 그럼에도 또 다시 앞으로 향했다.
다섯 편의 영화와 한 편의 드라마를 찍었다. 풋풋했던 신인 티를 벗고 이제 제법 여배우 분위기를 풍긴다. 작품 선택에도 여유로움이 엿보인다. 그의 출연작 중 가장 따뜻한 영화 ‘계춘할망’ 개봉을 19일 앞두고 있다.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반갑고 기분 좋았어요.”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김고은은 해사한 미소로 얘기했다. 이전과 다른 톤의 연기를 선보인 데 대한 만족감이었다.
계춘할망은 어릴 적 잃어버렸던 손녀 혜지(김고은)를 12년 만에 찾은 해녀 계춘(윤여정)의 이야기다. 실제로 할머니와 단둘이 서울에서 지내는 김고은은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마음이 동했다. 혜지의 감정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물론 전작들과는 다른 고민과 어려움이 있었다. 그는 “누구나 공감할만한 감정들이기 때문에 과잉이 되지 않도록, 혹은 연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신중하게 접근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김고은은 유독 선배 복이 많은 편이다. 김혜수 전도연 등 대한민국 대표 여배우들과 호흡을 맞췄다. 이번 작품 상대역은 무려 윤여정이었다.
“윤여정 선생님과 연기를 주고받는 순간이 제겐 너무 컸어요. 좋은 감정을 주시니까 저도 자연스럽게 감정이 우러나오더라고요. 희열 같은 걸 느꼈어요.”
다만 대선배를 격의 없이 대하기란 쉽지 않았다. 김고은은 “조심스럽고 쑥스러워서 촬영 초반에는 살갑게 다가가지 못했다”며 “그래도 현장에서 제 시선은 계속 선생님에게 가있었다”고 고백했다. 윤여정이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촬영할 때 스태프들에게 우산이나 파라솔을 펴달라고 부탁하는 등 티 안 나게 챙겼다는 게 그의 말이다.

윤여정이 어떤 조언을 해준 게 있느냐고 물으니 “보통 선배들은 연기 조언을 하지 않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후배 연기자에 대한 존중과 배려라고. 본인도 먼 훗날 그런 선배가 되고 싶다고 김고은은 말했다.
“후배에게는 선배의 한마디가 굉장히 크잖아요. 그래서 신중하신 것 같아요. 어떤 분은 ‘연기하는 배우가 제일 잘 아는데 남의 배역에 대해 얘기하는 게 얼마나 조심스럽겠냐’고 하셨던 적이 있어요. 같이 하다보면 답답하실 수도 있는데, 감사하죠. 그런 게 배려구나 싶어요.”
김고은에게는 확고한 목표의식이 있다. 성장과 발전. 작품을 선택하는 1순위 기준이기도 하다. 그가 매번 새로운 역할에 도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첫 작품 때는 정말 말도 안 되는 배려를 받으면서 촬영을 했어요. 근데 그 다음부터는 프로여야 하는 상황이 된 거죠. 독립영화나 단편영화를 많이 경험하고 싶었지만 이미 그 과정은 없어진 셈이었으니까요. 신인이라는 타이틀이 있을 때까지는 이거 저거 다 부딪혀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스스로 한계를 두지 말자.’ 안 해봤던 것에 대한 두려움은 있지만, 계속해서 절 내던져본 것 같아요.”

연기 외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배우의 삶은 고단하다. 이런 저런 소문이 늘 따라붙는다. 말 못할 속상한 일도 많았다. 예전에는 견디기 힘들었지만, 이제 조금씩 무던해지는 중이다.
“배우로서의 태도나 자세는 제가 굉장히 중요시하는 가치예요. 근데 그것과 반대되는 이야기들이 진짜처럼 나오니까…. 어떤 스태프 한 분이 그러셨어요. ‘적어도 너랑 한 작품이라도 같이 한 사람은 네가 그런 아이가 아니라고 말해줄 거다.’ 그 얘기를 들으니 ‘그럼 됐다’ 싶더라고요. 내려놓은 것 같아요.”
차기작 결정은 아직이다. 연달아 작품을 이어온 김고은에게 데뷔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잠시 쉼표, 허나 그 기간이 그리 길어지진 않을 듯하다.
김고은은 “연기는 알면 알수록 너무 어렵다. 새 역할을 받을 때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런데 하다보면 또 답이 보인다고. “매 작품 목숨을 걸고 연기한다”는 그의 눈빛이 빛났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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