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지난해 7월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의 디자인을 확 바꿨습니다. 승객들이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디자인으로 말이죠. 바닥은 물론 의자에 벽까지 핫 핑크색으로 도배된 자리는 임산부들도 앉기 꺼려질 정도로 부담스럽습니다.
당사자가 부담스러울 만큼 눈에 띄는 디자인으로 바꾼 건 임산부 배려석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임신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초기 임신부들은 자리 양보를 요구하기 어렵죠. 그 대안으로 임신부 배지를 만들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서울시는 지하철에 노약자석과 별개로 차량 1대당 2자리씩 모두 7140개의 임신부 배려석을 마련했습니다. 임신부 배려 문화를 정착하겠다는 취지로 ‘핑크카펫’을 운영한 거죠. 안내 방송에는 “겉으로 표시가 나지 않는 초기 임산부를 배려하여 자리를 비워두시기 바랍니다”다는 멘트까지 나옵니다.
핑크카펫이 도입된 지 10개월. 임신부도 앉기 부담스런 배려석에 임신부가 아닌 사람들이 버젓이 앉아 있습니다. 이를 놓고 온라인에선 찬반 논쟁이 벌어졌죠.
특히 지난 1월 확대 운영한다는 소식과 함께 한 방송사에서 밀착 취재한 내용이 회자되면서 찬반여론은 더욱 거세게 일었죠. 방송에서 한 시민은 “동의를 받지 않고 임의대로 자리를 지정해서 한다는 것은 다른 이용권자의 이익을 침해할 여지가 있다”고 말해 논란이 커졌습니다.
임신부들은 핑크카펫 도입 이유가 양보와 배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인 만큼 배려석을 비워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장애인 주차장을 예로 들었죠. 장애인 주차장이 비어 있다고 그 자리에 일반인이 주차할 수 없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
반면 임신부가 있을 때 양보하면 되지 미리부터 비워둘 필요가 있냐는 반대론자들도 적지 않죠. 가장 편해서 인기가 많은 이른바 꿀자리를 이유 없이 비워놓을 필요가 있냐는 겁니다. 특히 남성들의 반발이 거셌는데요. 남자라는 이유로 평생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는 건 역차별이라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일부 남성들은 박카스 광고가 이상한 문화를 만들었다고 불평하기도 했습니다. 2006년 ‘젊음, 지킬 건 지킨다’는 주제로 제작된 광고엔 주인공이 노약자석을 보고 “우리 자리가 아니잖아”라는 말을 남긴 채 서서 가는 모습이 담겼는데요. 배려석이 우리 자리가 아니라는 걸 공감 할 수 없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이 밖에도 핑크카펫의 실효성과 부작용을 지적한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우선 임신부 배려석이 별도로 생기니 노약자석은 노인만의 자리가 돼 버렸다”
“임신부 뱃지를 달아도 양보하지 않는데 핑크카펫이 무슨 소용이겠냐”
“배려를 위해 비워놓는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와서 앉아 버린다”
“차라리 한 칸을 임신부 배려칸으로 만드는 게 더 효과적이겠다” 등의 의견이 이어졌습니다.
한 대학연구소는 이런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실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KWU 공공소통연구소가 주도하는 ‘LOUD 프로젝트’(광운대학교 이종혁 교수팀)는 지난 4월 11일 지하철 5호선 배려석에 “임산부 배려석입니다. 저를 안고 앉으세요”라는 안내문을 들은 테디베어 인형을 비치했는데요. 덕분에 임신부 배려석이 비어 있었고, 결국 임신부가 인형을 안고 마음 편히 배려석에 앉아 갈 수 있었습니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조사한 ‘임신부 배려 인식 실천 수준(2014년)’에 따르면 12주 이전 초기 임신부의 47%, 12주 이상 임신부 58.4%가 “배려를 받았다”고 답했습니다. 중요한 시기인 임신 초기에 배려를 더 못 받는다는 것을 반증하는 건데요. 임신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 생겨난 좌석인 만큼 자리를 비워두는 것 자체가 배려가 아닐까요. 금남의 좌석이라는 불평을 하기 전에 내 아내, 내 딸이라면 어땠을까를 먼저 생각해 보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맘(Mom)편 뉴스는 엄마의 Mom과 마음의 ‘맘’의 의미를 담은 연재 코너입니다. 맘들의 편에선 공감 뉴스를 표방합니다. 매주 월요일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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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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