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중앙박물관장, "신안보물선 발굴 40주년...동전 28톤까지 유물 통째 전시하겠다"

‘관운(官運) 좋은 남자’ 이영훈(60) 신임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신록이 눈부신 지난 4일 인터뷰했다. 그는 전임 김영나 관장이 전격 경질되며 지난 3월 수장 자리에 올랐다. 9년째 재직 중이던 경주박물관장을 끝으로 올해 정년퇴임을 앞둔 차였다. 부러움을 샀지만,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그가 적격이라는 덕담이 많았다.

소장 유물을 상설 전시하는 박물관의 동관(東館)에서 인터뷰 사진을 찍는데, 그가 말했다.

“신라 금관을 어두운 전시실에서 꺼내 햇빛이 환한 이곳 1층 복도에서 전시하면 어떨까요. 왕이 썼던 그대로 햇빛 아래서 전시하는 게지요. 세계 최초가 될 겁니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의 상설전시실 복도는 유리로 된 높은 천장을 이용한 자연채광이 자랑거리다. 그는 2010년 경주박물관장 시절 ‘금관을 (시신모형에 씌워서) 눕혀서 보여주는’ 황남대총 전시로 대박을 쳤던 전시의 귀재다. “박물관 전시는 소장품을 활용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 엉뚱한 상상을 하곤 한다”는 그에게 자연채광의 이점이 허투루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이날 “(1975년 신안 앞바다에서 인양·발굴한) 신안선에서 건진 유물을 전시장 안에 배 느낌을 살려 통째 보여주겠다”는 ‘통 큰 전시’ 구상도 국민일보에 처음 공개했다. 신라 금관의 햇빛 조명 전시도 문화재청과 협의할 사안이 아니어서 충분히 가능하다고 했다.

-10년 만의 내부 승진이다. 어떤 관장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내실을 기하는 실무형 관장이 되겠다. 작은 것부터 고쳐나가겠다. 우선 ‘지방박물관’이라는 용어 대신에 ‘소속박물관’으로 고쳐 부르도록 제안하고 있다. 그래야 내 식구 같은 유대감이 생긴다. 이른바 지방 박물관에서 오래 근무하다보니 서운함이 많았다. 국가를 대표하는 중앙박물관인데도 서울만 생각하는 서울박물관 구실을 하는 인상을 받았다. 앞으로 13개 ‘소속 박물관’과 함께 가는 모델을 추구하며, 서울 전시를 지역박물관과 연계하는 순회하는 프로그램을 활성화할 계획이다. 7월의 ‘아프가니스탄 황금 문화 전시’도 서울에 이어 경주에서도 진행할 것이다.”

-수장고를 열어젖힐 각오가 돼 있다고 언론에 밝혔는데.

“국립중앙박물관이 폐쇄적·배타적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이런 오해를 불식하려면 소장품에 대한 접근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곳 소장품은 박물관 연구직의 독점물이 아니다. 연구 뿐 아니라 전시에서도 외부 학자를 객원 큐레이터로 모시는 등 학계 의견을 수렴하겠다. 일반 관람객에게도 마찬가지다. 수장고 안에 ‘전시형 수장고’를 기획하고 있다. 관람객들이 직접 수장고 안으로 들어가서 직원들이 어떻게 보존처리하는지를 볼 수 있는 형태가 될 것이다.”

-올해가 신안 해저 유물 발굴 40주년이다.

“와서 보니 문화재청과 공동 기획하는 전시가 오는 7월 예정돼 있더라. 500여점을 보여준다는데, 이걸로는 규모가 작아 대대적으로 키우는 쪽으로 수정했다. 신안선 발굴은 우리나라 수중 고고학의 효시다. 신안 보물선에서 나온 도자기가 2만여점이 되고 동전만 28t이 나왔다. 농담으로 ‘이번에 그 동전 28t다 꺼내 보여줍시다’라고 말하고 있다. 파손된 배에 동전이 어느 정도 쌓였는지 그 부피를 관람객이 실감할 수 있어야 한다. 전시실 자체도 배 내부처럼 보이도록 꾸미고, 신안선에 적재됐던 유물 거의 대부분을 최초 공개하는 전시가 될 것이다.”

-황남대총 전시에 이어 또 하나의 토종 블록버스터 신화를 만들겠다는 건가.

“고고학에서는 맥락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관에서 출토됐으니 관을 만들고 시신 모형에 금관, 허리띠, 금동 신발까지 착용시켜 부장 상황을 재현했다. 반지 10개를 손가락마다 다 채웠다. 맥락이 없으면 금관 따로, 허리띠 따로, 반지 따로 식의 골동품 전시가 된다.”(당시 12만명이 관람했고 지역박물관인데도 이례적으로 줄을 서서 봐야 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그동안 오르세미술관전 등 민간에서 할 외국의 블록버스터 전시에 치중했다는 비판이 많았다.

“우리 소장품을 대여해주는 조건으로 열리는 전시라 문제점이 있다. 소장품이 왔다 갔다 하면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외국과 교류할 때는 가급적 서로 비교하거나 조응해서 볼 수 있는 방향으로 선정할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반가사유상을 공동 전시하는 게 예가 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연계해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전시도 구상 중이다.”

주말에는 뭘 하느냐고 물었다. 온화한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마누라 기다리지요.” 대전 문화재청의 김연수 국제협력과장이 아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난 커플로 결혼 뒤 김 과장이 이곳으로 옮겼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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