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를 기다리는 사진작가 강영길 "인간의 내면을 수성(水性)으로 담다" 예술의전당 개인전

사진작가 강영길의 작품에 대해 얘기하기 앞서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Samuel Barclay Beckett·1906~1989)가 1952년 발표한 2막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고도(Godot)’라는 실체가 없는 인물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내용의 부조리극이다. 현대 전위극의 고전으로 세계 각국에서 공연되었으며 l969년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해질 무렵, 한 시골길의 작은 나무 옆에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라는 두 사내가 고도라는 인물을 기다리며 의미 없는 대사와 동작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가 독재적인 뽀조가 등장하여 노예 럭키를 긴 밧줄에 매고 가차 없이 명령하며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 이들이 무대를 떠난 후, 심부름하는 양치기 소년이 와서 “고도는 내일 온다”고 알려 준다.

두 사람은 계속 기다린다. 다음날인 제2막에서도 모든 것이 전날과 같다. 이번에는 뽀조가 장님이 되어 있고 럭키는 벙어리가 되어 있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여전히 고도를 기다리고 막이 내린다. 도대체 고도는 언제나 올 것인가. 정말 오기는 오는 걸까. 기다리다 지쳐 쓰러지거나 자신의 존재 자체가 소멸되는 것은 아닐까.

강영길의 작업은 인간의 내면을 수성(水性)으로 만나는 일이다. 5월 2일부터 10일까지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위 아 고도(We Are GODOT)’라는 타이틀로 개인전을 연다. 작가의 대표작 ‘고도(Godot)’에서 물속 인간군상에 담아낸 현대인의 거대한 고독과 상실의 의미를 전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고도’처럼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고 실체가 없다.

수영장 물속에 누워있거나 떠있는 사람의 형체는 어떤 존재이든 삶의 한 순간으로 시나브로 사라져가는 것임을 얘기한다.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단 한 순간도 정지되어 있지 않은 인간의 상태와 그 존재의 내면”을 오묘하면서도 신비스런 컬러의 향연으로 드러낸다. 작품이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강력하면서도 의미심장하다.

전시 타이틀 ‘위 아 고도’가 말해주듯 한 번도 본 적 없는 춤을 추듯, 처음 듣는 음악을 연주하듯,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를 찾아내듯, 아무도 가본 적 없는 유토피아를 향해 부유하듯 환희와 처절함으로 함성을 지르고 있다. 그의 사진에는 형용할 수 없는 눈부심과 고독이 공존하며 이는 함축된 컬러로 대변하고 있다.

작가는 말한다. “인간의 삶은 영원하지 않는 감성과 이성의 교차점에서 정의할 수 없는 환희와 환멸로 동시에 존재하며 그것은 결국 찰나일 뿐이다.” 일상의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물속에서 숱한 표정과 움직임으로 순간순간을 표현하고 있다. 전작들과 다른 점은 저항이나 거부가 아닌 운명 내지 환경을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훨씬 강렬하고 화려해 보이지만 더욱 깊어진 시선과 철학을 느낄 수 있다. 작가가 10여 년 동안 꾸준히 몰두해온 물과 빛, 고요와 흔들림, 직선과 반사의 개념을 추상적인 이미지와 초현실적인 컬러로 제시하고 있다. 매 번 수 만 장의 셔터를 누르지만 단 한 장의 사진도 같은 것이 없을 만큼 찰나의 현상에 집중하고 있는 작업이다.

이번 작품은 제목조차 함부로 단정 지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오묘한 이미지와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것은 작가 자신 개인적인 삶의 변화와도 연결된다. 기다려도 고도는 오지 않지만 그렇다고 쉽게 포기할 수는 없다. 어제가 아련하고 오늘이 힘들더라도 내일이라는 희망이 있기에~. 그의 사진은 왠지 가슴 아리고 애잔하지만 꿈틀거리는 몸짓에서 고도를 기다리는 설렘과 희망을 본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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