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의 영화이야기] (60) 엔니오 모리코네와 007

Է:2016-03-07 10:05
ϱ
ũ
[김상온의 영화이야기] (60) 엔니오 모리코네와 007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에게 아카데미 음악상을 안겨준 '헤이트풀 8'(The Hateful Eight)의 한국판 포스터.
88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특징이라면 단연 메인 MC를 비롯해 식장을 장악한 ‘흑인 파워’였지만 내 눈길을 사로잡은 건 오리지널 음악상과 주제가상 부문이었다. 정치적 함의가 짙은 인종문제는 일단 차치하고 영화음악과 주제가 얘기를 해보자.

엔니오 모리코네와 007. 반세기 이상 세계 영화음악을 주름잡아온 노작곡가와 역시 반세기 이상 전세계 영화 팬을 흥분시키면서 이어져온 역사상 최고의 시리즈 영화다. 물론 007의 경우 2013년에 ‘스카이폴'의 주제가가 이미 주제가상을 받았기 때문에 이번이 두 번째이긴 하다.

그러나 두 번 다 2010년대에 만들어진 ‘최신작’들의 주제가였다. ‘스카이폴’은 노래를 부른 아델과 폴 엡워스가 작곡했고, 이번에 상을 받은 ‘스펙터’의 ‘Writing's on the Wall'도 노래를 부른 샘 스미스와 지미 네이프스가 작곡했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가장 잘 기억하는 대부분의 007 영화 주제가들은 영국의 거장 영화음악가 존 배리가 만든 ‘옛날’ 것들이다. 우선 가장 유명한 007 음악인, 권총의 총구 속에서 제임스 본드가 총을 쏘는 오프닝 시퀀스에 깔리는 시그니처 뮤직.

서프 록 스타일에 전기기타의 리프, 그리고 브래스가 믹스된 이 유명한 음악은 공식적으로는 몬티 노먼이 작곡자로 돼있지만 이를 편곡해 현재 우리 귀에 익숙한 것으로 만든 이는 어디까지나 존 배리다.

이어 매트 몬로가 부른 감미로운 멜로디의 ‘From Russia with Love'(007 위기일발)부터 영화음악은 물론 팝음악의 고전으로 자리잡은, 셜리 배시의 터질 듯한 가창력이 일품인 ‘Goldfinger’와 고전 재즈의 거장 루이 암스트롱이 부른 가장 ‘슬픈’ 007 음악 ‘We Have All the Time in the World'(여왕폐하의 007) 등.

배리는 이외에도 ‘선더볼(1965)’ ‘007 두 번 산다(You Only Live Twice, 196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Diamonds Are Forever, 1971)’,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The Man with the Golden Gun,1974)’, ‘문레이커(1979)’ ‘옥토푸시(1983)’ ‘어 뷰 투 어 킬(1985)’, 그리고 ‘리빙 데이라이트(1987)’까지 모두 11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주제가와 오리지널 음악을 담당했다.

배리 이후 비틀스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 ‘로키’로 유명한 빌 콘티, ‘제5의 비틀스’로 불렸던 저명한 음반제작자 겸 작곡가 조지 마틴, 영화 ‘스팅’의 주제음악으로 명성을 떨친 마빈 햄리쉬 등이 단발성으로 007 주제가를 맡았고, 배리가 후계자로 직접 제작자들에게 추천한 데이빗 아놀드가 ‘Tomorrow Never Dies(1997)’부터 ‘Quantum of Solace(2008)’까지 5편의 007 오리지널 음악을 담당했으나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007 하면 음악은 존 배리라고 해야 마땅하다.

심지어 아델에게 오스카상을 안겨준 ‘스카이폴’조차 21세기에 작곡된 음악이지만 단연 존 배리의 영향력 아래 있다. 고전적이고 구시대적인 과거의 007음악(존 배리에 의한)을 흉내 낸 게 그대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배리는 다른 영화음악으로 오스카상을 수상했다. 그것도 무려 4회나. ‘야생의 엘자(Born Free, 1966)’ ‘겨울사자(Lion in Winter, 1968)’ ‘아웃 오브 아프리카(1985)’ ‘늑대와 춤을(Dances with Wolves, 1990)’.

그에 더해 그는 ‘미드나이트 카우보이(1969)’ ‘몬테 월쉬(1970)’ ‘사망유희(The Game of Death, 1972), ‘코튼클럽(1984)’ 등의 영화에서 주옥같은 음악들을 남겼다. 그럼에도 그의 최고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007 음악들로 오스카상을 받지 못한 건 매우 아쉽다. 007 영화가 두 번째로 주제가상을 받는 것을 보면서 떠오른 상념이다.

그런 배리에 비해 ‘영화음악의 마에스트로’ 엔니오 모리코네가 이제야 오스카상을 받은 건 만시지탄이다. 60년 동안 500편의 오리지널 영화음악을 작곡한 이 작곡가는 올해 87세로 오스카상 경쟁부문 최고령 수상자다. 여기서 왜 ‘경쟁부문’이란 말이 붙었느냐 하면 그는 오스카상 후보로 5회나 오른 뒤 2007년에 오스카 공로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경쟁부문’의 경우 고령 수상자로는 찰리 채플린이 1952년 영화 ‘라임라이트’를 만든 지 20여년만인 1973년에 미국에서 상영하고 나서 오스카 주제가상을 받았을 때 83세였고, 조지 버나드 쇼가 자신의 작품 ‘피그말리온’을 각색해서 1938년 오스카 각색상을 받았을 때 82세, 그리고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2012년 ‘Beginners'로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받았을 때 역시 82세였다. 모두 모리코네보다 ‘어리다’.

엔니오 모리코네 하면 뭐니 뭐니 해도 스파게티 웨스턴이 떠오른다. 세르지오 레오네와 콤비로 만들었던 달러 3부작과 ‘Once Upon a Time in the West’, ‘석양의 갱들’ 등, 또 ‘나바호 조’ ‘표범 황혼에 떠나가다’ 같은 세르지오 코르부치표 스파게티 웨스턴과 기타 수도 헤아리기 힘든 여러 스파게티 웨스턴들이 그의 손을 거친 음악으로 도배됐다.

스파게티 웨스턴뿐 만이 아니다. 코미디, 호러, 정치, 범죄, 역사, 드라마 등 온갖 장르의 영화 음악이 그의 손에서 탄생됐다. 그러다보니 그는 1968년의 경우 한 해 동안 무려 20편의 오리지널 영화음악을 만들었다. 엄청난 재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개중에는 전문가들에 의해서도 호평을 받는, 거의 클래식음악 수준에 올라선 작품도 적지 않다. 롤랜드 조페 감독의 영화 ‘미션(1986)’이 그렇다. 영화음악 사상 10위 안에 늘 포함되는 이 음악들은 누구나 예상했듯 모리코네에게 아카데미상을 안겨줄 뻔 했으나 정작 상은 ‘라운드 미드나이트’의 허비 행콕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이 수상은 많은 논란을 낳았다. 행콕이 멋진 재즈 편곡 솜씨를 보인 것은 인정되나 많은 곡들이 오리지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모리코네도 납득할 수 없었던지 나중에 언론 인터뷰에서 그 점을 들어 “상을 도둑맞았다”고 울분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니 이제 그가 ‘미션’보다 수준이 한참 떨어지는 ‘헤이트풀 8’의 음악으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건 어쩌면 음악 자체보다도 30년 전의 잘못된 결정에 대한 보상인지도 모른다. 사실 ‘헤이트풀 8’은 영화 자체로도 음악적으로도 그다지 잘 된 작품은 아니다.

고령에도 아직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90인조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다음 달부터 모스크바와 헬싱키를 필두로 세계 순회공연에 나설 계획이라고 한다-모리코네는 유럽과 미국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작업했다. 즉 그는 2003년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를 그린 일본의 TV 대하드라마 ‘무사시’의 음악을 맡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 위대한 음악가에게 우리 영화나 TV 음악을 의뢰해볼 수는 없을까. 더 늦기 전에.

김상온(프리랜서 영화라이터)



GoodNews paper Ϻ(www.kmib.co.kr), , , AIн ̿
Ŭ! ̳?
Ϻ IJ о
õ
Ϻ 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