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의 영화이야기] (54) 배우가 된 가수들

Է:2016-01-18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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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온의 영화이야기] (54) 배우가 된 가수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Merry Christmas, Mr. Lawrence)”의 포스터. 데이비드 보위의 역할이 두드러진 영화다.
정초부터 부음이 들려왔다. 국내에 자칭 ‘거성(巨星)’이라는 코미디언이 있지만 그건 그야말로 코미디인 반면 ‘팝음악계의 거성’이라는 수식을 누구라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영국 팝스타 데이비드 보위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69. 요즘 장수 추세에 비추면 너무 이른 죽음이어서 안타깝고 아쉽다. 그가 이 세상에 더 있었더라면 더 많이 활약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더 큰 기쁨과 즐거움을 주었을 텐데. RIP.

이는 특히 그가 단순한 가수가 아니라 배우까지 겸한 멀티미디어 아티스트였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와 관련해 어떤 평자는 보위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미술이건 음악이건 연극 영화건 비주류의 아이디어를 분석하고 선별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그리고 그렇게 선별한 아이디어를 주류로 이식해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했다”, “글램록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확고하게 만들고 팝음악의 캐릭터 플레이어(character player)로서 연극과 팝음악을 그토록 매끄럽게 접목시킨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워낙 팝음악계에 끼친 영향력과 공헌이 거대해서, 워낙 인기 있는 가수라는 광휘에 가려서 그다지 빛을 발하지는 못했지만 보위는 나름대로 괜찮은 배우였다.

보위는 가수로 성공하기 전 일찍부터 아방가르드 연극과 마임 수업을 받고 연극무대와 영화에 출연했다. 영화 데뷔는 20세 때인 1967년이었다. 그러나 주연급으로 첫 출연한 영화는 76년 니콜라스 로에그가 연출한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The Man Who Fell on Earth)’였다.

그는 이 영화에서 가뭄에 시달리는 고향 행성으로 물을 가져가는 임무를 띠고 지구에 파견된 외계인을 연기했다. 다소 외계인처럼 보이는 외모(특히 성 정체성이 모호한 듯한 외모)에 딱 어울리는 역할이었다.

이 영화로 호평을 받은 보위는 이어 83년 수정주의적 흡혈귀 영화인 토니 스콧 감독의 ‘헝거(Hunger)'에서 뱀파이어로 분해 카트리느 드뇌브, 수전 서랜든과 공연했고, 같은 해 내가 보기에 그의 출연작 중 가장 훌륭한 영화인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Merry Christmas, Mr. Lawrence)”에서 일본군 포로로 잡혀 수용소에 수감된 뉴질랜드군 장교 역할을 맡았다.

브로드웨이 연극 ‘엘리펀트 맨’에서 타이틀 롤을 맡은 보위(그는 80~81년에 157회 공연했다)를 보고 반해 자신의 영화에 발탁한 오시마 감독의 말. ”그에게서 결코 망가뜨릴 수 없는 내적 영혼을 봤다“.

보위는 또 85년 제작된 007 영화 ‘뷰 투 어 킬(A View To a Kill)'에서 악당 맥스 조린 역을 제의받았지만 거절했다(이 역은 스팅을 거쳐 결국 크리스토퍼 월큰에게 돌아갔다). 그는 나중에 제임스 본드역으로 물망에 오르기도 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어쨌거나 그는 이후 작은 마귀 고블린의 왕역을 맡은 ‘래비린스(Labirinth, 86)'를 거쳐 마틴 스코세이지의 문제작 니코스 카잔차키스 원작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Last Temptation of Christ, 1988)'에서 본디오 빌라도를 연기했다. 그런가하면 의문에 싸인 FBI 요원(데이비드 린치, 트윈 픽스 Twin Peaks : Fire Walk with Me, 1992)이나 이탈리아 서부극의 악당(죠반니 베로네시, 총잡이의 복수 Gunslinger's Revenge, 1998)'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주요 역할로 등장한 영화는 19세기 말을 배경으로 두 마술사의 갈등과 충돌을 그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2006년작 ‘프레스티지(The Prestige)'였다. 휴 잭맨, 크리스천 베일과 공연한 이 영화에서 그는 실존했던 천재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로 나왔다.

이처럼 다양한 영화에 다양한 역할로 출연했지만 배우로서의 보위를 느끼고 싶은 분들은 적어도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 한 편은 꼭 보기 바란다. ‘콰이강의 다리’에서 비슷한 역할을 연기한 명우 알렉 기네스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오! 하는 감탄사를 터뜨리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할리우드에는 보위처럼 가수로 출발해 배우로 명성을 떨친 사람들이 적지 않다. ‘영화배우 보위’를 얘기한 김에 이들 얘기도 조금 해보자. 우선 그 효시격인 인물로 빙 크로스비(1903~1977)가 있다. 무엇보다 캐롤 ‘화이트 크리스마스’로 유명한 그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베이스-바리톤의 음색으로 낮게 읊조리는 듯한 노래 스타일인 크루닝(crooning)을 전문으로 하는 크루너(crooner)의 원조로서 페리 코모, 프랭크 시나트라, 딘 마틴 등이 그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크루너들이다.

크로스비는 일찍이 40년대부터 영화에도 얼굴을 비치기 시작해 큰 인기를 끌었다. 어느 정도냐면 그는 평생 10억800만명의 관객을 영화관으로 끌어당겼다. 이는 클라크 게이블(11억7000만명)과 존 웨인(11억1천400만명)에 이은 3위의 기록이다. 그는 특히 미국 최고의 코미디언 겸 배우 봅 호프와 콤비를 이뤄 뮤지컬 코미디 ‘~로 가는 길(Road to~)' 시리즈에 출연해 최고의 성가를 구가했다.

또 연기력도 뛰어나 44년 카톨릭 신부를 연기한 ’나의 길을 가련다(Going My Way)'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으며 54년에도 ‘갈채(The Country Girl)'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다만 그는 두 번째 상을 받지 못했으나 대신 공연한 그레이스 켈리가 여우주연상을 가져갔다.

크로스비 다음에는 프랭크 시나트라(1915~1998)가 있다. 크로스비가 가수와 배우를 겸한 최초의 멀티미디어 스타라면 시나트라는 최초의 ‘오빠부대(Bobbysoxers)'를 거느린 가수 중의 가수였다. 40년대부터 주로 뮤지컬영화에 노래 부르는 역할로 출연하던 그는 53년 프레드 진네만 감독의 ‘지상에서 영원으로(From Here to Eternity)'에 출연하면서 진정한 배우로 거듭 났다.

몽고메리 클리프트, 버트 랭카스터, 어네스트 보그나인과 공연한 이 영화에서 뛰어난 연기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은 그는 55년에도 오토 프레밍거의 ‘황금 팔을 가진 사나이(The Man with the Golden Arm)'에서 갱생한 마약중독자 역할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이후 그는 ‘아가씨와 건달들(Guys And Dolls, 1955), '상류사회(High Society, 1956)' '팰 조이(Pal Joey, 1957)'같은 뮤지컬 영화들에 출연하면서 동시에 ‘만추리언 캔디데이트(Manchurian Candidate, 1962)' ‘탈주특급(Von Ryan's Express, 1965)’ 등 스릴러물과 전쟁물에도 나왔고 이와 함께 딘 마틴,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피터 로포드를 비롯한 일단의 유명 연예인들이 모인 랫팩(Ratpack)의 ‘보스’로서 이들을 이끌고 ‘오션스 일레븐(Ocean's 11)’ 등 일련의 흥행영화를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만년에 토니 롬이라는 이름의 사립탐정역을 맡아 범죄영화에 관심을 쏟았는데 71년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더티 해리’역을 맡으려 했으나 손가락이 굽는 병이 도지는 바람에 역할을 놓치기도 했다.

시나트라 다음으로는 ‘당연히’ 엘비스 프레슬리(1935~1977)다. 전 세계적으로 6억2000만장의 앨범을 팔아치운 이 ‘록의 제왕’ 혹은 단순히 ‘킹’은 56년 ‘러브 미 텐더(Love Me Tender)'로 데뷔한 이래 모두 33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그는 제임스 딘과 말론 브랜도를 롤 모델로 진지한 배우가 되기를 열망했으나 안타깝게도 그 소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영화사는 가수로서 엘비스의 인기를 영화로까지 연장하기만 바랐을 뿐 그의 연기 따위는 관심도 없었다. 결국 그는 거의 모든 영화에서 노래 부르는 역할이나 연기해야 했다. 진지한 연기로 아카데미상까지 받은 크로스비나 시나트라와는 딴판이었다.

이밖에도 한두 편 반짝, 혹은 깜짝 출연이 아니라 정식 배우라는 말을 들어도 어색하지 않을 가수 출신들로는 딘 마틴과 바비 다린이 있고, 여성 가운데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셰어가 가장 유명하다. 이 두 사람은 모두 가수 출신이면서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김상온(프리랜서 영화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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