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 없이 혼자 형사재판에 출석해 두려웠다. 북한처럼 법은 내 편이 아닐 거라 생각돼 솔직하게 얘기하기 어려웠다. (41세 여성 A씨. 남한 4년 거주)”
“형사재판 증인으로 출석했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심장이 두근거려 말문이 막혔다. 북한에서 공개재판 후 총살당하는 장면을 본 게 기억나 법정에 온 것만으로도 두려웠다. (49세 여성 B씨. 남한 10년 거주)”
대한민국의 법률용어 ‘횡령’은 북한에서 ‘탐오랑비’로, ‘임대차계약’은 ‘빌리기계약’으로 쓰인다. 남·북 사법절차는 분단 70년 세월을 반영하듯 용어부터 크게 다르다. 남한에서는 형편이 어려운 이들에게 국선변호인을 선임해주지만 탈북자들에게 이런 제도는 익숙지 않다. 탈북(脫北)해 남한에서 재판을 경험한 이들은 한국의 사법절차를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이학인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14일 사법정책연구원 주최로 열린 세미나에서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사법적 지원 방안’에 대해 발표했다. 이 연구위원은 앞서 남한에서 민·형사 소송 등을 경험한 탈북자 8명을 대상으로 지난 6~7월 사이 심층 면접을 실시했다.
이 위원에 따르면 탈북자들은 공통적으로 남한의 사법절차와 용어 등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A씨는 “형사재판을 혼자 받다보니 용어를 잘 몰라 재판장 질문에 ‘예’라고 했다가 다시 ‘아니오’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C씨(43·여·남한 11년 거주)는 “법정에 서면 머릿속이 하얘져 혼자서는 소송을 진행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남·북한 형사처벌 수위가 달라 탈북자들이 쉽게 범죄에 연루된다는 설명도 있었다. D씨(55·남한 21년 거주)에 따르면 북한에선 마약이 치료약으로 쓰이고 마약범죄로 처벌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 또 북한에선 먼저 때린 사람을 폭행하는 걸 당연하게 여겨 탈북자들이 남한에서 쌍방폭행에 연루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들은 특히 탈북자들이 남한 사법절차에 대해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입을 모았다. D씨는 “탈북자들은 북한처럼 경찰·검찰·법원을 모두 한통속으로 알고 있다”며 “법원과 검찰이 분리돼 있다는 점만 알아도 재판 받을 때 한결 마음이 편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사 과정에서 남한 사람과 차별을 느낀 이들도 있었다. C씨는 “이웃 주민으로부터 폭행을 당해 조사를 받았는데 경찰이 남한 주민 편에 서서 사건을 처리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사법절차에 익숙하지 않은 탈북자들을 위해 원스톱 통합지원센터 설치 등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법률상담과 실제 소송지원이 분리돼 있어 그 자체로 탈북자들에게 불편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또 법원 종합민원실에 탈북자를 위한 통합지원센터를 설치하거나, 어려운 법률용어 등을 북한 말로 설명하는 책자 제작도 제안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남한에 거주하는 탈북자 숫자는 지난 6월까지 2만8000여명에 달한다. 이 위원은 “탈북자들에 대한 사법 지원은 통일 이후 북한 주민들이 대한민국 재판절차를 이용할 때 겪을 수 있는 혼란을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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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에겐 멀기만 한 대한민국 '사법'…용어 몰라 허둥, 北 '공개재판' 기억에 말문 막히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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