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의 영화이야기] 41. 배우의 목소리

Է:2015-10-19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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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온의 영화이야기] 41. 배우의 목소리
[김상온의 영화이야기] 41. 배우의 목소리
[김상온의 영화이야기] 41. 배우의 목소리
사람의 인상은 절반 이상 목소리에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배우도 다르지 않다. 아니 배우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다. 때에 따라서는 목소리가 배우를 대변한다. 그런 만큼 좋은 목소리, 특색 있는 목소리는 배우의 큰 자산이 된다.

우리 배우 중 목소리 좋기로는 한석규와 김윤석을 들 수 있다. 울림이 좋은, 부드럽고 달콤한 목소리의 한석규와 악역이 잘 어울릴 것 같은 외모와는 딴판으로 ‘정의의 주인공’으로 손색없는 굵직한 미성(美聲)의 주인공 김윤석의 인기 중 상당 부분은 목소리 덕분임이 분명할 터.

그런가 하면 좋은 목소리는 아니지만 독특하고 개성 있는 목소리와 말투로 인해 잘 기억되는 배우들도 있다. 김승호와 허장강, 그리고 존 웨인의 경우다.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국민 아버지’였던 김승호는 쉰 듯한 목소리에 마치 기침하듯 ‘토해내는’ 식의 텁텁한 말투로 현진건의 소설 ‘운수좋은 날’에 나오는 인력거꾼 김첨지를 연상시키는 서민적인 인물상을 창조해냈다. 그리고 허장강은 기름진 목소리에 혀끝에 착착 감기는 듯한 어조로 언변 좋은 사기꾼에 그 이상 가는 배우가 없을 만큼 대단한 ‘국민 악당’으로 군림했다. 두 사람은 그런 특유의 목소리와 말투를 스스로도 특기로 여겼음인지 동시녹음이 불가능했던, 그래서 거의 예외 없이 성우들이 더빙으로 후시녹음을 하는 바람에 배우들의 진짜 목소리가 어떤지 전혀 알 수 없던 50~70년대에 굳이 자신의 목소리를 여러 영화에 ‘입혔다’. 그러다보니 특히 “김 마담, 우리 심심한데 뽀뽀 한번 할까” 같은, 허장강의 느물느물한 전매특허 대사는 나중에 흉내내기 코미디언들의 단골 소재가 되기도 했다. 특이하기로는 존 웨인도 마찬가지. 그는 비음이 약간 섞인, 자갈 굴러가는 듯한 목소리에 느릿느릿 빼는 말투로 특유의 이미지를 창출해냈다. 역시 독특하다는 평을 듣는 그의 걸음걸이나 연기 스타일은 모방할 수 있어도 목소리는 아무도 흉내내지 못한다.



반면 목소리가 별로인 배우들도 물론 있다. 목소리야 타고나는 것인 만큼 배우의 잘못은 아니라 해도 아쉽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한 예가 ‘국민 배우’ 안성기다. 그의 목소리는 못 들어줄 정도는 아니지만 훌륭한 것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의 외모와 연기력에 비춰 목소리가 좀 더 좋았더라면 금상첨화이지 않았을까.

사실 목소리가 외모를 받쳐주지 못하는, 혹은 외모를 따라가지 못하는 배우들이 적지 않다. 알랭 들롱과 클린트 이스트우드. 들롱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아무리 잘 봐주려 해도 ‘숨 막히는 외모(할리우드 비평가들의 평)’와 어울리지 않는다. 또 이스트우드도 잘생긴 얼굴에 큰 키 등 건장한 체격에는 과히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성량의 쉰 목소리다. 하긴 그래서 대사가 그리 많지 않은 냉혹하고 과묵한 살인자 등 악당역을 많이 한 들롱과 선인도 악인도 아닌 스파게티 웨스턴의 주인공으로 스타덤에 오른 이스트우드의 영화 속 역할에 더 잘 맞았는지는 몰라도.

그런가 하면 말이 어눌해 배우 같지 않은 배우도 더러 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데뷔 초기의 아놀드 슈워체네거가 그랬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이 배우는 미국에서 대학을 다녔지만 ‘촌스럽게도’ 독일식 발음이 많이 섞여 나왔다. 미국 관객들의 놀림감이자 그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된 말 ‘아일 비 박’이 대표적이다. “곧 돌아온다”는 뜻의 “아일 비 백(I'll be back)”을 그는 독일식으로 “아일 비 박”이라고 발음한 것. 그래서 그의 출세작 ‘코난(Conan the Barbarian, 1981)’이나 ‘터미네이터(1984)’는 대사가 거의 없거나 있더라도 최소한의 분량에 감정의 기복이 없는 야만인이나 로봇의 언어로 한정됐는지도 모른다.



반면 목소리가 멋진 배우들도 부지기수다. 그중에서도 최고는 단연 리처드 버튼과 피터 오툴이었다. 둘 다 영국 태생에 셰익스피어 연극배우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타고 난 멋진 목소리에 더해 정통 셰익스피어 연극무대에서 훈련을 쌓은 덕분에 발성도 훌륭해 목소리와 대사 구사력에 관한 한 가히 최고봉이었다. 외모나 연기력 등에 있어서는 그들을 능가하는 배우가 한둘이 아니겠으나 버튼의 울리는 듯한 쨍쨍한 목소리와 부드러우면서도 명료한 오툴의 목소리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특히 버튼의 목소리는 ‘진정한 배우의 목소리’란 이런 것이로구나 하는 느낌이 절로 들게 했다.

요즘 외모 하나만 내세워 스타덤에 오른 후 마치 국어책 읽듯 대사를 처리하는 일부 우리 젊은 배우들은 버튼과 오툴 두 사람의 영화를 보고 또 보면서 배우의 발성이란, 대사 구사력이란 무릇 저래야 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배워야 할 것이다.

김상온(프리랜서·영화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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