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서울 화신백화점에서 40대 고암 이응노(1904∼1989)의 개인전이 열렸다. 전시를 본 앳된 이화여대 미대생 박인경(89)은 숨이 멎는 듯했다. 그림에 대한 감동은 반려자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22살 나이차를 뛰어넘는 사랑이었다. 이후 이응노가 ‘동백림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파리에서 눈을 감기까지 평생의 동지가 됐다.
지난 5일 대전 서구 둔산대로 이응노미술관에서 박 명예관장을 만났다. 미술관이 기획한 ‘에꼴 드 이응노-파리동양미술학교’전 개관에 즈음에 파리에서 열흘 일정으로 방한했다. 살구색 실크 스카프가 어울리는, 곱게 늙은 얼굴에서 고암이 반했을 한창 때 미모를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49년의 개인전이 사람에게 빠져들 정도였냐고 물었다.
“동양화가로서는 획기적인 전시회였어요. 그때 평들이 ‘저게 어떻게 그림이냐, 만화지’ 그랬을 정도였거든.”
고향 충남 홍성에서 19세에 상경한 고암은 해강 김규진 문하에서 그림을 배웠다. 대나무를 잘 그렸던 김규진은 영친왕의 서예 스승으로 당대 스타 화가였다. 고암 역시 대나무 그림으로 조선미전에서 입선도 했다. 그는 1935년 일본으로 건너가 가와바타 미술학교에서 동양화를, 혼고연구소에서 서양화를 섭렵했다. 해방 이후 그림 세계는 달라졌다. 서구 미술을 우리 전통에 접목시키기 위한 새로운 화풍의 실험에 나섰다. 그 결과가 49년의 개인전이다. 동양화로 그린 반추상의 인물·풍경화는 당시로서는 파격이고 이단이었을 것이다.
부부가 화가들의 로망이던 파리 유학을 간 건 58년이다. 고암의 나이 54세였다. 실은 파리가 아니라 독일로 먼저 갔다. 애초 2년 전 국제평론가협회 프랑스 지부장이 파리로 초청장을 보내왔으나 정부의 까다로운 출국 조건 때문에 무산됐다. 독일 정부 초청으로 독일에서 순회 전시를 한 뒤 60년 파리에 정착할 수 있었다. 파리 첫 개인전은 62년 열렸다. 박 명예관장은 “그 바람에 이응노는 미술사에서 50년대의 앵포르멜 작가군에 들지 못하고, 한 발 늦은 60년대 작가군으로 분류된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응노미술관의 이번 기획전은 파리 정착 초기인 64년 세르누쉬 파리시립동양미술관 제안으로 설립된 파리동양미술학교 50주년을 맞아 기획됐다. 먹을 직접 갈아 묵향을 맡고, 붓으로 한일(一)자를 긋고 난초를 치던, 파리지앵들은 고암이 수업시간에 쓰던 ‘천천히’ ‘차츰차츰’이라는 한국말을 알아들었다고 했다.
80년대 초반 루브르박물관 앞에는 동양화 재료 필방이 있었다. “간판으로 ‘필(筆)’자가 걸렸는데 그게 딱 보니 우리 문하생 글씨더라고요. 우리는 글씨는 단박에 표가 났지요. 조각적인 맛이 있었어요.”
화가의 행위를 강조하는 추상화 형식인 앵포르멜이 인기를 끌면서 동양 서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파리동양미술학교는 인기를 끌었다. 아르퉁, 술라주 등 인기 화가들을 비롯해 학자, 외교관, 문학가 등이 거쳐 갔다. 동양 문화의 정수를 배울 수 있다며 그들은 반색했지만 정작 현지 한국인들은 낡은 것이라고 외면했다고 한다. 간첩 사건에 연루돼 가까이 하기 꺼린 측면도 강했다.
“고암은 그래도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울화가 나기도 하겠지만 그림에 몰두하다보니 그런 건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거지요.”
고암의 교육 활동은 한국에 있을 때부터 이뤄졌다. 해방 이후 서울 남산 근처에 ‘고암화숙’을 차렸고 새로운 민족미술을 모색하기 위해 다른 화가들과 ‘단구미술원’을 창설했다.
“일제 총독부는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서예와 사군자를 없앴습니다. 동양 화가 중에서는 (일본처럼)채색을 써야하는데 먹으로만 그리는 동양화가 그림이냐고 하는 이도 있었지요. 그럴 때 고암은 동양화가 이렇게 사라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고암화숙, 단구미술원을 만든 게지요.”
박 관장은 동양화의 여백처럼 고암이 떠나고 나니 그 뜻이 더 새롭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고암 사후 1992년 박 관장은 파리 근교 뷔쉬르센의 자택 안에 한옥 한 채를 지었다. 시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자 도청까지 찾아가 설득해서 허가를 얻어냈다. 충남의 헐려진 양반가 기와집 두 채에서 나온 서까래 등을 옮겨왔다. 신영훈 대목장이 직접 지은 이 집은 유럽 유일의 전통한옥이다. 건축가들이 견학 와 눈이 휘둥그레진다는 이 한옥의 단아한 자태를 두고 파리시 문화재관리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조국이 없는 화가가 어디 있겠습니까. 필연적으로 있어야하는 건물이이지요.”
박 명예관장은 이응노미술관도 안착이 됐으니 이제는 여유를 갖고 그림에 몰두하겠다고 했다. 내년 7월 이 미술관에서 그의 개인전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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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노 화백 유럽에서 동양정신, 한국 전통미술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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