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복원 10년, 시민은 웃지만 상인은 웁니다

Է:2015-09-29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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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복원 10년, 시민은 웃지만 상인은 웁니다
청계천 야경. 서울시 제공
청계천 복원 10년, 시민은 웃지만 상인은 웁니다
서울 도심을 가로지르는 청계천이 다음 달 1일로 복원 10주년을 맞는다. 개발시대에 도심의 하천은 덮거나 가리고 그 위로 고가도로를 놓는 버려진 공간이었다. 청계천 복원은 죽은 공간을 살려내고, 도시 지도를 바꾼 ‘파격적 실험’이었다. 청계천 이후 각 지방자치단체는 앞다퉈 ‘도심하천 복원’에 뛰어들었다.

2003년부터 2년3개월간 공사를 거쳐 다시 태어난 청계천은 1000만 서울시민의 ‘오아시스’로 자리매김했다. ‘맑은 시내(淸溪)’라는 이름값을 해내고 있다. 나들이객의 놀이터, 데이트 코스, 관광명소로 서울시민의 삶 속 깊숙이 흘러들고 있다.

그러나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10년의 세월은 몇 가지 ‘후유증’을 남겼다. 상권이 죽으면서 청계천 주변 상인의 생활은 나빠졌다. 송파구 문정동의 쇼핑단지 ‘가든 파이브’로 이주했던 일부 상인들은 처절한 실패를 맛봤다.

구간별로 ‘온도 차이’도 크다. 초입인 청계광장~수표교 구간엔 각종 프랜차이즈 카페와 음식점이 들어서면서 관광객의 발길을 끌고 있다. 노천 문화가 틀을 잡았다. 반면 관수교부터 이어지는 전자·전기 공구상가 구간에선 오가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상인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개발이냐, 재생이냐를 놓고 답보상태에 빠져 있다. 이 구간은 하천을 복원한 뒤 도로 폭이 좁아져 접근성이 크게 떨어졌다.

생태 측면에서도 아쉬움이 적잖다. 청계천은 정수 처리된 한강의 물과 지하수를 퍼 올려 상류에서 쏟아 붓는 구조다. 지속가능하지 않은데다 물을 끌어올리는데 필요한 전기료 등으로 연평균 약 75억원을 쓴다. 이 때문에 ‘돈 먹는 하마’라는 비난이 끊이질 않는다. 물고기가 폐사하는 등 인위적 복원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나 일부 생태학자들은 청계천을 ‘생태하천’이 아닌 ‘거대한 어항’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2002년 민선 3기 서울시장 선거 때 이명박 전 대통령은 청계천 복원을 선거공약 전면에 내세웠다. 이듬해부터 총공사비 3876억원을 투입해 복원 공사를 시작했지만 첫 걸음부터 삐걱거렸다. 임기 내 완공을 목표로 밀어붙이다 보니 충분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지 못해서였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해 인공하천으로 분류되는 청계천을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계획은 추가 예산투입을 놓고 찬반 논란에 휩싸여 있다.



또한 청계천 복원은 박 시장의 ‘서울역 7017’ 프로젝트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울역 7017’은 1970년 세워진 서울역 고가도로(남대문시장~만리동)를 17개의 보도로 탈바꿈시키는 것을 골자로 한다. 박 시장은 2017년 완공을 목표로 한다. 올해 하반기 철거를 적극 추진 중이다.

하지만 인근 상인과 시민 반발이 만만찮다. 서울역 옛 역사를 가려 경관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는 문화재청, 교통 혼잡을 우려하는 경찰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서울역 7017’이 ‘제2의 청계천’이라 불리는 이유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


-청계천 생활상 어떻게 바뀌었나… 상권과 교통의 변화-

추석 연휴 마지막날인 29일 서울 청계천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8시간 걸려 경남 남해에서 역귀성했다는 김윤관(60)씨는 손자와 함께 청계광장을 찾았다. 김씨는 “손자가 어려서 멀리가기 어려운데 도심 가운데에 시원한 분수와 하천이 있어서 보기 좋다. 앞으로 서울 오면 꼭 들를 것”이라고 했다.

여자친구와 함께 청계천에 발을 담근 미국인 마크(33)씨는 “빌딩 숲 사이에 펼쳐진 산책로가 신선하다”며 “한국인 친구가 청계천에 꼭 가보라고 해서 들렀는데 정말 좋다”고 했다.

청계천은 본래 마른내(乾川)였다. 모래바닥이 드러나 있고, 비가 오면 범람하기 일쑤였다. 1411년 조선 태종은 청계천 일대에 축대를 쌓고 바닥을 파 물길을 넓히면서 개천을 만들었다. 조선의 수도를 흐르던 청계천은 일제강점기 이후 급격한 도시화 흐름 속에서 생활 오·폐수가 흐르는 흉물로 전락했다. 1958년 정부는 복개 공사를 해 하천을 도로 아래로 묻어버렸다. 그 위에 5.4㎞의 청계고가가 세워졌고, 주변에 상가와 공장이 들어서면서 ‘근대화의 상징’으로 변신했다.

50년 가까이 맨얼굴을 감췄던 청계천은 2005년 물길이 흐르는 하천의 모습을 되찾았다. 올해로 복원 10년이 지난 청계천은 서울의 일상을 어떻게 바꿔놨을까.

◇엇갈리는 ‘성적표’=지난 21일 오전, 평일인데도 청계천 주변은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일본인 린코(21·여)씨는 “도심에 이렇게 긴 산책로가 있다는 게 신기하다. 근처 면세점·궁궐·광장으로 이어지는 이 코스가 일본인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꼭 봐야할 곳 중에 하나로 꼽힌다”고 전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청계천을 찾는 시민과 관광객은 하루 평균 5만4000명에 이른다.

청계천은 시민들의 사랑도 듬뿍 받고 있다. 점심시간엔 인근 직장인 산책로, 퇴근 후에는 데이트코스가 된다. 직장인 김모(29·여)씨는 “봄과 가을엔 줄지어 걸어야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청계천을 찾는다”며 “거대 도시의 중심에 이런 하천이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주변 상인들 표정은 어둡다. 청계천 복원사업 당시 6만여명이던 주변 상인 가운데 1000여명은 서울시의 이주계획에 따라 송파구 문정동 가든파이브 상가로 옮겨갔다. 그들은 불경기에다 높은 분양가, 치솟는 관리비 등을 따라가지 못해 울상이다.

남은 상인들도 타격을 받긴 마찬가지다. 프랜차이즈 카페와 유명 음식점이 터를 잡은 청계광장~수표교 구간과 달리 관수교 이후 구간엔 오가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2차선으로 좁아진 도로에 차들이 몰리면서 청계천로 인근에 있는 평화시장·광장시장·세운상가·방산시장 상인들은 “자동차를 갖고 시민들이 쇼핑하러 올 수 없는 환경”이라고 입을 모은다. 복원 전에는 5~6개 버스 노선이 지났지만 현재는 구역에 따라 1~2개 노선만 운영돼 접근성도 뚝 떨어졌다. 상인 허모(56·여)씨는 “청계천 복원으로 관광객이 많아지긴 했지만 요식업 외에는 영향을 준 것 같지 않다. 이전보다 발길이 확실히 줄었다”고 했다.

◇‘교통지옥’은 없지만 ‘혼잡’은 남았다=1969년 완공된 청계고가는 모두 10개의 교차로를 신호 없이 통과할 수 있었다. 2003년 철거 직전에 하루 16만대의 차량이 이 고가를 이용해 도심을 동서로 이동했다. 복원 이후 만들어진 왕복 4차로 청계천로는 이 교통수요를 모두 소화하기 벅찼다.

서울시 교통정보과의 ‘시내 정기 속도조사’ 보고서를 보면 고가가 철거된 첫 해인 2004년 청계천로의 연평균 운행속도는 시속 12.0㎞로 전년 대비 28.6% 줄었다. 우려가 현실이 되는 듯 했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시민들은 빠르게 적응했다. 운행속도는 2005년에 전년 대비 9.2%(시속 13.1㎞), 2006년에 8.4%(14.2㎞) 증가했다. 초기에 불편함을 느꼈던 시민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우회 도로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다만 서울시내 교통혼잡 지역명단에는 여전히 청계천로가 빠지지 않는다. 올해 초 내비게이션업체 현대엠엔소프트가 서울시내 일반도로 126곳, 도시고속도로 16곳을 분석한 결과 청계천로는 상·하행 모두 교통혼잡도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서울시의 ‘2014년 교통혼잡도’ 자료에도 청계천로는 평균 시속 15㎞대에 그쳤다.

여기에다 산책로는 물이 넘치는 날이 비일비재하다. 서울시설공단에 따르면 지난 8월 한 달간 폭우로 청계천 일부 구간이 한시 통제된 날 수가 열흘이나 된다.

김미나 박세환 심희정 기자 mina@kmib.co.kr


-청계천 상인들 지금은-

“청계천 상인은 두 번 죽었다.”

29일 만난 안규호(64) 전 청계천 상인대표는 ‘청계천 복원 이후’를 묻자 대뜸 이렇게 응수했다. 그는 1988년부터 서울 중구 황학동에서 비디오를 팔았다. 비디오 시장이 호황이던 시절, 개당 4000원씩 받고 팔아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나 청계천 주변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안씨의 삶은 180도 변했다. 서울시는 상가를 송파구 문정동 가든파이브로 옮기면 30% 정도 싼 가격으로 임대·분양을 해주겠다고 했다. 부푼 마음으로 2010년 가든파이브에 입주했다. 전용면적 7평에 한 달 임대료는 150만원이었다. 미숫가루 등 선식과 잡화를 팔았지만 임대료 내기도 버거웠다. 결국 쫓기듯 가든파이브를 나왔다. 권리금 1억5000만원은 돌려받지 못했다.

서울시는 2003년 청계천 상인 이주대책을 발표하면서 상인들에게 7평 정도의 상가를 7000만~8000만원에 분양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7692억원이던 공사비용이 예상과 달리 1조3393억원으로 늘면서 분양가는 배 이상 뛰었다. 이 때문에 입주를 포기하는 상인들이 속출했다. 2007년 서울시는 청계천 상인 6만여명 중 이주 의사가 있는 6097명에게 특별분양 자격을 줬지만 실제로 계약한 상인은 1028명에 불과했다. 상권은 쉽게 활성화되지 않았고 상가를 임대한 상인들은 임대료를 내지 못해 하나둘 쫓겨났다. 2015년 현재 직접 가든파이브에서 장사를 하는 청계천 상인은 100여명뿐이다.

지난 21일 찾은 가든파이브는 ‘두 개의 세상’을 보는 듯했다. 대형마트와 백화점이 들어선 곳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반면 청계천 상인들이 입주한 지하층은 텅 비어 있었다. 빈 채로 방치된 상가가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상인 A씨는 “서울시에게 사기를 당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아직까지 버티고 있는 상인들도 곧 쫓겨날 위기다. 특별임대 기간이 지난 1월로 끝나면서 돈을 더 주고 분양 또는 일반임대로 바꿔야하기 때문이다. 생계가 막막한 상인들은 특별임대 기간을 연장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상인 B씨는 “우리는 내쫓은 서울시가 책임지고 상권을 살려야 하는 것 아니냐”며 “이대로 있다가는 빚만 남기고 쫓겨날 판”이라고 했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 온라인 편집=김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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