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진 국립발레단장 때문에 한국에도 친숙한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은 독일의 지역 발레단이다. 하지만 그 위상은 전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메이저 발레단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다.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은 1961년 예술감독이 된 안무가 존 크랑코가 73년 타계할 때까지 ‘로미오와 줄리엣’ ‘말괄량이 길들이기’ ‘오네긴’ 등 걸작을 남겼고 케네스 맥밀란과 이리 킬리안, 존 노이마이어 등 뛰어난 안무가를 배출했다.
크랑코는 생전에 무용수들이 안무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발레단을 운영했다. 당시 그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도운 것은 발레단 후원자들이 설립한 노베르 협회다. 노베르 협회는 지금도 발레단과 같이 안무가를 희망하는 무용수들이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신인 안무가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덕분에 크랑코 사후에도 윌리엄 포사이스와 우베 숄츠 등 거장들이 잇따라 배출됐으며 신인 안무가의 등용문으로 굳게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취임한 강수진 단장이 수석발레리나로 활약했던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을 벤치마킹해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바로 9월 4~5일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선보이는 ‘KNB Movement Series 1’이다. 연간 프로그램에 포함돼 있지 않다가 최근 국립발레단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한 이 공연에는 수석무용수 이영철을 포함해 국립발레단 무용수 12명이 안무가로 나서 작품을 발표한다. 발레계 관계자들의 평가를 받는 자리이긴 하지만 객석 일부(267석)를 일반 관객에게도 무료로 제공할 예정이다. 티켓은 당일 오후 6시부터 현장에서 선착순으로 배부한다.
‘빈 집’이란 작품을 내놓는 이영철은 “프로젝트는 지난해 강 단장님과 무용수들의 대화에서 논의되기 시작해 올봄 최종 결정됐다”며 “평소 안무에 관심이 커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무용수들이 12명이나 신청한데서 알 수 있듯 다들 안무에 대한 관심이 높다. 다만 아직 검증이 안 된 신인 안무가들인 만큼 너그럽게 봐 달라”고 했다.
이 프로젝트는 국립발레단이 한국 발레계의 취약점인 안무가 문제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최근 한국 무용수들이 해외 콩쿠르를 휩쓸고 메이저 발레단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안무가의 존재감은 미비하기 짝이 없다. 그 수도 얼마 안 되고 국제적 인지도를 갖춘 인물은 아예 찾을 수 없을 정도다.
그러다보니 한국의 대표 발레단인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의 레퍼토리는 해외 유명 안무가들의 명작들로 채워져 있다. ‘심청’ ‘호동’과 같은 창작발레도 세계 발레계의 주목을 받을 수준까지 도달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무용 평론가 장인주는 14일 “한국 발레는 그동안 무용수를 양성하는데 교육이 집중돼 왔지만 좋은 안무가 없이는 발전에 한계가 있다”면서 “발레 안무가는 장르의 특수성 때문에 학교가 아니라 프로 발레단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법이다. 국립발레단이 이제라도 안무가 육성에 나선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을 비롯해 해외 발레단은 무용수들이 안무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발레의 종가’ 파리오페라발레만 보더라도 매년 무용수들의 작품 발표회를 여러 차례 가진 뒤 여기서 뽑힌 4~5편을 묶어 2년마다 정규 공연에 포함시키고 있다.
파리오페라발레 출신인 김용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발레단의 신인 안무가 공연은 대중과 평단의 관심이 매우 높은 편”이라며 “파리오페라발레 수석무용수였던 호세 마르티네즈가 2008년 안무한 전막발레 ‘천국의 아이들’은 발레단의 레퍼토리가 됐는데, 그가 현역시절 신인 안무가 프로그램을 통해 안무 능력을 키워왔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경우 발레 안무가 육성을 위해 국고 지원으로 ‘발레 창작 산실’이나 ‘대한민국 발레 축제’ 등을 열고 있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두 프로그램을 통해 선보인 작품들의 완성도가 낮아 단발성 공연으로 끝나고 말았던 탓이다. 무용 평론가 장광열은 “지금과 같은 공모 시스템으로 발레 안무가를 육성하는 것은 예산 낭비”라며 “프로 발레단이 안무가를 육성할 수 있도록 내부 무용수는 물론 외부의 신인 안무가에게도 문호를 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GoodNews paper Ϻ(www.kmib.co.kr), , , AIн ̿
[단독] 국립발레단,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 시작한다
Ŭ! ̳?
Ϻ IJ о
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