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칼럼] 그럴 수도 있지

Է:2015-08-12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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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기 한신교호 시무장로

[평신도칼럼] 그럴 수도 있지
‘남의 눈에 티 내 눈에 들보’ 이철환 동화 작가의 이야기입니다.

판다 한마리가 있습니다. 눈이 내리는 나무 위에서 열흘 동안 굶고 있지만…….

판다는 내려오지 않습니다.

지나가는 동물친구들은 이 모습이 너무 미련해보입니다. 파란나비가 토끼에게 물어봅니다.

“난 판다를 이해할 수 없어. 왜 며칠씩 굶고 나무위에 올라가있니?”

토끼는 나비에게 말합니다.

“너는 네가 이해하는 것만 이해할 수 있지. 판다의 상처도 모르면서 이해할 수 있다 없다 말하지 마.”

숲속 동굴에는 어미판다와 애기판다 두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미판다는 애기판다를 위해 먹이를 구하러 나가야하지만 나갈 수 없었습니다. 먹이를 구하러 나가는 순간 하얀 눈에 찍힌 자기발자국을 보고 사냥꾼이 동굴에 들어와 애기판다를 해칠거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눈이 계속 그치지 않으니 어미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굶고 있는 아기판다를 위해 음식을 구하러 나갔습니다. 내리는 눈이 자신의 발자국을 지워주길 바라면서요…….

어미판다가 재빨리 먹이를 구해 다시 동굴로 돌아왔지만, 예상했던 대로 자신의 발자국을 따라 2개의 사람발자국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애기판다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눈 위에 찍힌 자기 발자국 때문에 애기판다를 잃은 어미판다는 눈만 내리면 자기 발자국이 너무 큰 공포가 됩니다. 그래서 눈 이오면 일주일 열흘씩 나무위에 올라가 있습니다.

이제 판다가 왜 나무에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는지 이해가 되시나요?

“난 너를 이해할 수 없어” 우리는 이 말을 너무 쉽게 합니다. 겉으로만 보면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마음으로 상대방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마음으로 본다는 것은 첫째 나의 기준을 버리는 것이고, 둘째 상대방의 입장으로 바꿔보는 것이고, 셋째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해 보는 것이죠.

상대방이 틀린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소통의 첫걸음임을 알고, 이제 부터라도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생각 해 보면 세상은 참 좋아 질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 ‘남의 눈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에 있는 들보는 못 보느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비평하거나 비판하기 이전에 나에게 더한 허물은 없는지 생각해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 도안에서의 ‘나’의 본질은 나를 세우고 다른 사람을 나의 잣대로 보거나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온전히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한 거점일 뿐입니다.

세상엔 나 혼자 판단해서 될 게 너무 없는데도 불구하고,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면서, 자기 눈 속의 들보를 보지 못하는 우리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남을 심판하지 마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심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남을 심판하지 마라. 너희가 남을 심판하는 그 심판으로 하나님께서 너희를 심판하실 것이요”

“너희가 되질하여 주는 그 되로 너희에게 되어서 주실 것이다. 어찌하여 너희는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이 시대를 향해 주님이 주시는 말씀이라고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 대전시장로연합회 공동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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