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의 영화이야기] 31. 두 마리 토끼 잡기

Է:2015-08-03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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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온의 영화이야기] 31. 두 마리 토끼 잡기
[김상온의 영화이야기] 31. 두 마리 토끼 잡기
[김상온의 영화이야기] 31. 두 마리 토끼 잡기
배우가 연출한 영화 두 편이 개봉됐다. 헬렌 헌트와 윌리엄 H 메이시가 각각 감독으로 나선 ‘라이드:나에게로의 여행’과 ‘러덜리스’다. 배우로서는 충분히 인정받고 있는 이들이지만 감독으로서의 평가는 글쎄 어떨지.

영화는 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의 결정체다. 문학작품이나 음악, 미술작품이 특정 개인의 창작품인 것과는 달리 영화는 ‘집체(集體)적 창작물’이다. 그런데도 영화를 말할 때는 어느 감독의 작품이라고들 한다. 문학작품이나 미술품을 ‘셰익스피어의 작품’이니 고흐 또는 로댕의 작품이니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히치콕의 영화’니 ‘큐브릭의 작품’이니 하는 식의 이름이 붙는다. 다만 때로 감독 대신 영화에 출연한 스타 배우들의 이름을 붙여 영화를 거론하는 경우가 있다. 음악작품을 얘기할 때 작곡가가 아니라 연주자 이름을 붙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는 음악작품의 경우 간혹 원곡보다 곡 해석이 더 중요할 수 있고, 이때 연주자에 따라 작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는 연주자가 작곡가보다 대중에게 훨씬 친숙해서 더 많은 청중을 끌어들이기 위한 목적일 수 있다.

영화에서도 이유는 같다. 감독보다 배우의 이름을 앞세워 영화를 얘기하는 것은 대개 더 많은 관객을 유인하기 위한 상업적 이유에서일 뿐 영화는 어디까지나 ‘감독의 예술’이다. 사실 영화의 줄거리와 구성은 시나리오 작가가 만들고, 화면은 촬영기사가 전담한다. 또 영화의 흐름과 방향, 리듬은 편집자의 몫이고 영화를 만드는 비용은 제작자가 댄다. 그리고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관객에게 얼굴을 보이는 등장인물은 배우다. 도대체 감독은 무슨 일을 하기에, 또는 무엇이기에 영화라는 작품 전체를 대표하면서 명예를 독차지하는가.



비유하자면 감독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다. 오케스트라가 훌륭한 소리를 내려면 각 파트가 자신이 맡은 부분만 열심히 해서는 안 된다. 그것들을 조화시켜 통합된 소리를 내도록 해야 한다. 그 일을 하는 게 지휘자다. 영화감독은 영화를 만드는데 수많은 분야의 사람들이 제 몫을 해낼 수 있도록 할 뿐 아니라 그들 간의 조화와 통합을 이끌어낸다. 이때 감독은 배의 선장과 마찬가지다. 선장은 배와 항해에 관한 한 철의 독재자로서 절대군주이고 거의 신적인 존재다. 감독도 영화에 관한한 최고, 최후의 권력자다. 그만큼 그의 권위와 역할, 그리고 그로 인한 명예는 지대하다.

한편의 영화가 나오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관여하지만 ‘영화작가’라는 이름은 감독에게만 붙는다. 그러다보니 배우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영화 종사자들이 궁극적 목적지로 영화감독을 지향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물론 단순한 명예욕보다도 ‘내가 만들면 더 잘 만들 수 있다’는 나름대로의 자신감도 큰 동인(動因)일 수 있다.

실제로 훌륭한 감독들 가운데는 다른 분야 출신들이 많다. 우선 촬영기사의 경우 잭 카디프를 들 수 있다. D H 로렌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아들과 연인들(1960)’ 리처드 위드마크와 시드티 포이티어가 주연한 바이킹 해양활극 ‘롱쉽(1963)’, 알랭 들롱과 마리안 페이스풀이 공연한 ‘다시 한번 그대 품에(La Motocyclette 1968)' 등이 국내에도 알려진 그의 작품들이지만 그는 원래 테크니컬러 등 컬러영화 촬영에 일가견이 있는 유명한 촬영기사로서 존 휴스턴, 앨프리드 히치콕 등과 함께 많이 작업했다. 그런가 하면 영화야말로 ’편집의 마술‘이라는 말이 있듯 감독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편집자들도 감독으로 많이 진출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사운드 오브 뮤직‘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안드로메다 스트레인‘ ’상처뿐인 영광‘ ’포함 산 파블로‘ 등 뮤지컬과 SF, 스포츠, 모험서사 같이 장르를 불문하고 수많은 걸작을 남긴 로버트 와이즈다. 그는 고전 걸작 ’시민 케인‘의 편집을 담당한 명편집자 출신이었다.



하지만 배우 출신 감독은 더 많다. 무성영화 시절 찰리 채플린으로부터 시작된 이 전통은 면면히 이어져 남녀를 불문하고 이름 깨나 있다는 배우들치고 감독 메가폰을 잡아보지 않은 이가 오히려 드물 정도다. 오슨 웰스, 존 휴스턴, 로렌스 올리비에, 우디 앨런, 존 카사베테스, 리처드 어텐보로에서부터 케네스 브래너를 거쳐 앤소니 퍼킨스, 진 켈리, 데니스 호퍼, 워렌 비티, 로버트 레드포드, 케빈 코스트너, 멜 깁슨, 숀 펜, 조지 클루니, 마이클 키튼, 에드 해리스, 로버트 듀발, 케빈 스페이시, 토미 리 존스, 론 하워드, 실베스터 스탤론, 그리고 좀 더 젊은 축으로는 에단 호크, 조셉 고든 레빗, 벤 애플렉 등 거의 모든 스타를 망라한다. 오죽하면 존 웨인, 말론 브랜도 같이 배우로서 최고의 명성을 구가한 대배우도 카메라 뒤에서 메가폰을 잡았다. 이는 여배우들도 마찬가지여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다이앤 키튼, 조디 포스터와 앤젤리나 졸리, 드류 배리모어가 영화감독 소리를 듣더니 배우로서는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던 영화 명문 출신(프랜시스 코폴라의 딸) 소피아 코폴라까지 감독 대열에 합류했다.

그중에는 감독으로서 인정받은 사람들도 꽤 있다. 이를테면 로버트 레드포드와 워렌 비티, 케빈 코스트너, 멜 깁슨은 아카데미 감독상, 벤 애플렉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영화를 몇 편 정도 연출하는데 그쳤다. 적어도 배우 감독 겸업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줄기차게 영화연출 작업을 하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물론 진정한 의미의 배우겸 감독도 있다. 우디 앨런은 말할 것도 없고 존 휴스턴은 아예 배우라기보다는 감독 카테고리에 넣어야 마땅하다. 그리고 믈린트 이스트우드가 있다. 존 웨인에 이은 사상 두 번째 최고의 흥행 배우지만 두 차례나 아카데미 감독상과 작품상을 거머쥐었다. 그러다보니 그는 이제 단순한 배우 겸 영화감독이 아니라 ‘거장’으로 추앙받는다. 사실 그가 1960년대 무명배우에서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할리우드도 아닌 유럽에서 스파게티 웨스턴의 주인공으로 스타대열에 간신히 턱걸이 한 뒤 1971년에 ‘어둠속에 벨이 울릴 때(Play Misty for Me)'라는 스릴러 영화로 감독 데뷔했을 때만 해도 대충 앞날이 보이는 그렇고 그런 배우가 일찌감치 감독으로 살 길을 모색하나보다, 혹은 수많은 선배 배우들처럼 감독이라는 ’외도‘를 시도한 또 하나의 시답잖은 배우가 있구나 하는 정도의 느낌밖에는 주지 못했다. 비록 영화가 나름대로 괜찮은 평가를 받으면서 흥행에도 꽤 성공했지만 그때만 해도 아마 오늘날의 거장 이스트우드 감독을 예상한 사람은 전무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후의 이스트우드의 연출작들을 차례로 보면 ’장 맛은 묵을수록 좋다‘는 말이 그처럼 잘 들어맞는 경우도 드물 듯 하다. 또 ’이스트우드급‘은 안 될지 몰라도 이탈리아의 로베르토 베니니나 일본의 기타노 다케시 같은 배우 역시 충분히 한사람의 유능한 감독으로 인정받고 있다.

성공하기보다는 좌절하는 경우가 더 많은데도 대체 왜 배우들이 기를 쓰고 감독에 도전하는 걸까. 감독의 지시를 받아가며 연기를 하는 자신의 모습이 마치 허수아비 같이 느껴져 스스로 감독이 되고 싶을 지도 모르고 자신이 연출하면 웬만한 감독들보다 훨씬 더 잘 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져서일 수도 있다. 아니면 군인으로 쳤을 때 실제로 전투를 벌이는 주체이기는 하지만 지휘관의 명령대로만 움직이는 졸병이 되기보다는 명령을 내리는 지휘관이 되고 싶은, 그래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싶은 욕망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나도 성공하기 힘들거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그리고 실제로 둘 다 잡기도 하는 배우 겸 감독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시도한다는 자체만으로 그 용기가 부럽다.

김상온(프리랜서·영화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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