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식 경희대 교수 긴급 진단! 공공미술관의 위기, 그 대안은 없는가? ④

Է:2015-08-0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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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식 경희대 교수 긴급 진단! 공공미술관의 위기, 그 대안은 없는가? ④
이종무 아틀리에. 충남 아산 당림미술관에 있으며, 작가 생전의 작업실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는 유일한 곳이다. 진정한 예술혼을 느낄 수 있는 현장, 자료 보존이 아쉽다.
최병식 경희대 교수 긴급 진단! 공공미술관의 위기, 그 대안은 없는가? ④
박현기전 전시장.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2015년 1-5월에 개최되었으며, 아카이브 전시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었다.
최병식 경희대 교수 긴급 진단! 공공미술관의 위기, 그 대안은 없는가? ④
수원아이파크미술관 명칭에 항의하는 미술인들. ‘1600개의 판다+’라는 프로젝트가 준공기념으로 열렸는데 판다 오브제들 앞에서 ‘공공미술관 기업에 판다’라는 문구로 퍼포먼스를 하였다.
최병식 경희대 교수 긴급 진단! 공공미술관의 위기, 그 대안은 없는가? ④
최병식 경희대 교수
국립현대미술관은 정형민 전 관장이 지난해 10월 직원 부당 채용 혐의로 직위 해제된 뒤 10개월째 관장 공석 상태다. 연초부터 진행한 새 관장 선임 절차가 지난 6월 ‘적격자 없음’으로 무산되면서 최종 후보와 인사권자인 문화체육관광부 사이에 원색적인 비난전이 벌어지는 등 논란이 일었다. 무엇이 문제이고 해결방안은 없는가. 최병식 경희대 교수가 ‘공공미술관의 위기, 그 대안은 없는가?’라는 타이틀로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공공미술관의 개선안을 긴급 진단하는 글을 5차례에 걸쳐 싣는다.



<글 싣는 순서>

①국립현대미술관, 제2의 도약이 필요하다

②기업보다 치열한 미술관 마케팅

③미술관의 역사는 기부와 함께 시작되었다

④흔들리는 공공미술관

⑤미래의 미술관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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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흔들리는 공공미술관



*작가미술관 파행 건립 심각

작가 개인의 이름을 붙인 공공미술관들이 여기저기서 논란이 되고 있다.

대구에서 몇 년간 논란 끝에 결국 무산된 ‘이우환과 그 친구들 미술관’도 그렇지만, 며칠 전 안동시립 하종현미술관은 지역작가들 뿐 아니라 미술계에도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경주시의 박대성미술관은 강력한 반대로 결국 솔거미술관이라는 대안이 제시된 상태이고, 남원에는 김병종생명미술관이 진행 중이다.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거나 거론, 추진 중인 곳은 경주, 대구, 대전, 인천, 예산, 안동, 제주, 고양, 울진, 태백 등이다. 이외에도 10여 곳에서 거론 중이고, 앞으로 그 수는 점점 더 많아질 듯하다.

물론 작고작가 중 미술사적으로 충분히 검증이 된 작가들은 오히려 박수를 칠 일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생존 작가는 어느 정도 수준급 작가이지만 미술관을 짓는 일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적어도 미술관은 미술사의 엄정한 평가를 전제로 하며, 작고 후에도 상당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 가치와 세계관이 조명된다. 세상은 좀 달라져서 다소간의 변화는 있다고 하지만 그 원칙은 변동이 없다.

미술관은 한 나라, 지역의 역사에 남은 작품들을 소장, 전시, 교육하는 곳이며, 나아가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한 이슈를 생산하고, 제시하는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곳이다.

지자체의 문화 향유와 활성화를 위해서 그러한 작가미술관을 설립하는 것이라면 더욱 큰 모순이다. 국민의 혈세로 이루어지는 문화향유는 공공적이어야 한다. 대다수 시·군립미술관 한 곳 없는 곳에 특정작가의 예술세계만으로 전시, 교육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생존 작가 미술관은 국민의 혈세로 한 개인의 기념관을 지어주는 일과 같다. 여기에 미술관의 성격은 항구적이고 공공적, 비영리적이라는 원칙이 있듯이 건립 후에도 언제까지나 적지 않은 운영비를 지자체에서 떠안게 되며, 모두가 지역민들의 피와 땀의 희생을 전제한다.

더욱 답답한 것은 상당한 재력이 있는 작가들까지 자립도 10%도 안 되는 지역에 가서 어려운 예산신세를 지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다. 설사 지자체에서 먼저 러브콜을 하는 사례도 있더라도 결국은 작가의 동의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시군의 미술관예산은 일반적으로 국고 40%, 도비 30%, 시군비 30%로 건립된다. 즉 경상북도나 전라북도에 건립되는 미술관에도 전국의 미술인들이 내는 세금이 투입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논란이 될 작가미술관이 전국에 20여 곳으로 가정한다면 1년 유지비를 5억원 정도만 계산해도 100억원 운영비가 지출되고, 건립비를 1관 당 60억원을 기준해도 1200억원의 혈세가 투입되는 셈이다. 한국 미술계의 대표적인 지원기구인 아르코 시각예술분야 연간 지원사업에 투입되는 총예산이 40억 원임을 상기한다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 수 있다.

막상 건립되면 작품수량도 큰 문제이다. 작가미술관의 경우 1천점을 소장한 사례에서도 매년 개최되는 기획전 작품을 선별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임을 토로한다. 수 백점의 작품으로는 불과 3~4년도 못가서 한계가 드러나고 만다. 몇 년도 못갈 수준의 콘텐츠로는 시작하지 않는 것이 낫다.

대안은 지역의 시군립으로 미술관을 설립하면 된다. 현재도 국립현대미술관 외에 각 지역에 도립, 시립 등 40여개의 공공미술관이 설립되어 있고, 사립미술관도 100여개관이 넘는다. 선별된 작품들을 조건 없이 미술관에 기증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작가 사후에 전문가들의 자연스러운 평가에 의하여 필요하다면 극히 일부만 미술관을 건립하는 것이 순리이다.

작가들의 예술혼을 느낄 수 있는 작업실을 기념공간으로 꾸미는 방법 또한 큰 의미가 있다. 국내에 유일하게 작가의 작업실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사례는 아산 당림미술관에 있는 이종무 아틀리에이다. 불의의 사고로 서거한 이후 물감 팔레트까지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우리는 시멘트 건물에 기념관처럼 서있는 차가운 미술관보다는 바로 작가들의 손길과 생각, 실험, 인간미가 묻어있는 현장이 훨씬 더 가슴 뜨거운 체취를 느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차라리 블록버스터가 낫지 않을까?

단기간에 ‘미술의 대중화’를 리드한 공로로는 교과서 못지않게 ‘마르크 샤갈’ ‘반 고흐’ ‘피카소’가 역할을 하였다. 이번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렸던 ‘마크 로스코’나 2014년 ‘뭉크’전, 2013년 디자인미술관의 ‘스튜디오 지브리전’ 등은 질적인 수준도 담보하면서 인기를 끌었다.

특히 지브리전은 100일간 24만 5천명을 돌파하면서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고, 마크 로스코 역시 추상작가로서 대중성이 낮은 데도 불구하고 만 3개월 만에 14만명을 기록했다. 아홉 번이나 반복관람을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깊은 마음의 안식을 얻은 관람객이 많았다.

미술관 기획전이 한계에 머무르다 보니 그 정도면 블록버스터가 더 낫다는 의견이 있을 정도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은 많게는 1년에 7개월이나 이어졌던 블록버스터전시를 거부하였고 자체전시로 승부를 걸었다. 미술계의 신선한 결단으로 평가되었다. 하지만 관람객은 반으로 격감했다.

기획사들의 대관형식 블록버스터전시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면서 대중적 인기를 우선한다. 딜레마는 여기에 있다. 큐레이터의 역할은 미미하거나 삭제되고 미술관의 정체성을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중들의 이해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슈를 제기하고 미술사를 체계적으로 정립해가는 등 본질을 다루는 미술관 전시는 한 국가의 문화기반을 다져가는 기초학문과도 같다. 시대의 흐름과 위치, 사상, DNA, 사회적 현상들을 토해내고, 미래로 향하는 다양한 솔루션을 제시한다. 얼마 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박현기전에서 볼 수 있는 아카이브의 힘과 다면성은 전시유형의 새 장을 열어가는 출발점이었다. 지금 전시중인 ‘사물의 소리를 듣다’ ‘무제전’ 등도 의미있는 전시이다.

그냥 설치만 하는 전시, 관객과의 대화가 없고 무조건 감상만 해야 하는 전시, 마음을 열 수 있는 통로와 숲이 없는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의 폭발적인 욕구는 미망에 빠지게 된다.

배후에는 역시 자본이 있다. 기획사들은 상당한 기본 자금을 동원할 수 있어 외국의 명화를 섭외하고 기획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다. 이에 비하여 미술관은 예산이 너무나 열악하다. 전문성과 열정이 있어도 그림의 떡인 셈이다.

예술의 전당은 30%만 국가가 지원한다. 결국 70%의 자립도를 보여야만 생존하는 현실이다. 자체 기획전은 엄두를 못 내며 이미 대관전용 전시장처럼 변모했고, 아트페어까지 개최하고 있다. 수천억을 들여도 조성하기 어려운 최상의 장소, 공간 조건을 지니고 있으면서 전시예산을 지원하지 않는 것은 이해가 안가는 일이다.

최근에는 소마미술관이 밀레, 프리다 칼로 등을 개최하기 시작했고,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은 올해 리모델링을 하고 디에고 리베라 전시를 개최하면서 수익사업에 뛰어들었다. 대전시립, 전북도립, 제주도립 등 여러 공립들 역시 블록버스터를 유치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기업의 재단미술관까지 대중성이 짙은 감각적인 전시로 일관하면서 수 십 만명의 관람객을 유입하였다. 물론 일정부분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노력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지나치게 난해한 작품들은 전문가들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소한의 원칙과 균형은 중요하다.



*지역예술의 보루이다

공공미술관의 난제는 설립목적의 해석에도 숨어있다. 지역예술의 보루로서 고유 업무와 지역이 갖는 특수성이 충돌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여기에 외지인이 관장으로 재직하면서 임기 동안 소통부재, 성과위주의 사업으로 부딪치는 경우도 많다.

해답은 지역 그 자체에 있다. 지역미술계의 활성화와 지역문화의 향유권 신장에 그 본연의 임무가 있는 것이다. 세계를 향한 다양한 전략을 구축하고 교류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의 실정은 지역작가들의 기회를 창출하고 역사를 정립해가는 일이 한참 우선한다.

지역미술관 홈페이지 어디를 가도 그 지역의 미술사를 읽을 수 있는 아카이브는 없다. 부산시립미술관 정도가 부산지역의 근현대 작품을 상시 전시하는 정도이지만 도록과 연구논문을 발표하는 사례들은 희귀하다. 일정공간은 언제든지 지역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상설전을 확보해야 한다. 나아가 유명세는 크게 없지만 평생을 작업과 함께 살다간 작가들의 재조명, 소외되기 쉬운 지역작가들의 창작역량 강화 등은 지역의 공공미술관이 담당해야 할 최우선 의무이다.

국립미술관이란 중앙정부가, 공립미술관이란 지방정부에서 설립, 운영하는 체계이다. 법인화된 미술관이라 하더라도 그 주체가 정부라면 결국 공공미술관인 셈이다. 엄격히 말하면 재단미술관도 사회 환원이 이루어진 곳으로 공공미술관에 속한다. 열악한 한국미술의 현실에서 공공미술관이 지니는 의미는 지역작가들의 마음이 머무는 집이자 그릇과 같다. 그러나 최근의 모습들은 전문성이 결여되고, 공공성을 무시한 현상들이 여기저기서 돌출된다.

우려의 절정은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명칭이다. 이 희대의 명칭은 앞으로도 많은 연구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기부는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ICOM(국제박물관협의회) 헌장의 한 페이지만이라도 넘겨봤더라면 이번과 같은 오류는 없었을 것이다.



작가미술관의 건립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단 생존 작가들의 미술관은 법제화를 통해서라도 일정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제한을 서둘러야 한다. 역사에 획을 긋고 간 선배작가들의 사례는 너무나 많다. 그러나 미술관 건립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근대 6대가의 최고봉인 소정 변관식의 묘는 무연고자로 공지되어 이장될 뻔한 것을 미술인들에 의하여 겨우 면했고, 청전 이상범, 유영국, 남관, 권진규, 권영우 등등 작가는 얼마든지 있다. 진정한 고인들은 침묵만 있을 뿐이다.

공공미술관의 블록버스터 전시는 정도가 아니다. 다만 ‘착한 블록버스터’는 중소규모의 지역미술관에서 대중화를 위하여 최소 회수만을 개최하는 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그러나 기획사에만 의지하지 말고 자체 큐레이팅을 전제해야 한다. 지역에 따라 도심의 심장부에 있는 공공미술관들은 일정부분 정부의 지원이 시급하다. 최강의 위치에 있는 기존시설을 활성화하는 것은 굳이 수백억을 들여 신설하는 미술관보다 몇 배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최병식(경희대 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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