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원색의 물감을 화면에 잔뜩 칠하는 사석원(55) 작가가 고궁의 달밤 풍경에 푹 빠졌다. 서울 토박이인 그는 어린 시절, 궁궐이 자신의 일상생활 속에 있었다고 한다. 초등학생 때 본 창경원은 흰색 한복의 바다와 같았고, 고등학생 때에는 경복궁 향원정 앞에서 스케치를 하기도 했다. 수십 년 동안 가보고 마음속에 품은 고궁의 서정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단지 풍경만을 담지 않고 역사도 함께 기록했다. ‘1776년 3월 창덕궁 후원’이라는 작품에는 부엉이 두 마리가 있다. 1776년 3월은 정조가 25세의 나이로 조선 제22대 왕에 즉위한 해이다. 봄과 겨울이 공존하는 풍경에 자리 잡은 부엉이는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길상’을 의미한다. 작가 특유의 울긋불긋한 색채로 화면을 가득 채운 것은 여전하다. 동물들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서울 종로구 평창길 가나아트센터에서 7월 12일까지 선보이는 ‘고궁보월’(古宮步月·옛 궁에서 달의 그림자를 밟다)에 신작 40여점을 내놓았다. 2012년 폭포를 소재로 한 ‘산중미인’(山中美人) 이후 3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이다. 창경궁, 경복궁, 덕수궁 등 고궁을 배경으로 꽃을 머리에 얹은 소가 앞을 응시하고 호랑이가 거닐며 토끼가 꽃배를 타고 있는 그림들이다.
진달래와 개나리를 떠올리는 봄날 풍경이 있고 눈 오는 날 모습도 보인다. 하나의 그림에 두 개의 계절을 담기도 했다. 눈 내린 경복궁에선 흰 사슴이 뛰어다니고 덕수궁에선 사자 가족과 부엉이가 같은 캔버스에 앉아있다. 작가는 “이전에는 익살스럽고 해학적인 동물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좀 더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고궁의 비장함을 나타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오랜 역사를 지닌 고궁을 거닐며 조선왕조의 역사를 떠올렸고, 조선시대 문예 부흥기를 이끌어낸 정조와 대한제국을 통해 근대화를 꿈꾼 고종에 주목하며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경복궁 향원정’이라는 그림에는 1873년 22세의 고종이 한 살 연상인 명성황후를 위해 경복궁의 별궁인 건청궁에 연못을 파고 정자를 만들었다는 설명을 붙였다.
부엉이, 사슴, 토끼, 호랑이, 사자 등의 동물은 왕실 인물을 상징하는 캐릭터다. 순한 동물도 있고 귀여운 것도 있고 사뭇 진지한 동물도 있다. 역사는 대부분 낮에 이루어지는데 왜 달밤 풍경인가. 작가는 “밤은 어둡고 수동적인 시간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생동하는 시간”이라며 “고궁 곳곳을 비추며 내려다보는 달은 시공을 초월한 이 세상 최고의 슈퍼울트라 CCTV”라고 했다.
고궁 야경을 한 폭의 수묵처럼 그려낸 작품은 그가 동국대 출신의 동양화가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전시 도록에 서문을 쓴 손철주 미술평론가는 “드물고 신기한 소재와 짝을 이룬 출품작들을 한 마디로 뭉뚱그리는 키워드는 ‘색(色)다른 기색(氣色)’이라고 할 수 있다”고 평했다.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열정과 저력이 오랫동안 블루칩 인기작가의 명성을 이어가는 비결이 아닐까(02-720-1020).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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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동물과 달밤을 거닐며 역사를 생각하다 인기작가 사석원 '고궁보월' 가나아트 7월1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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