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영화에 나오는 우주는 ‘캡틴 블러드’ 같은 1930~40년대 해양활극영화의 대양이고, 행성들은 섬, 우주선은 범선으로 대체해도 하등 문제가 없다. 등장인물들은 또 어떤가. 좋은 편과 나쁜 편으로 단순하게 이분화 시킨 데다 왕가(王家)가 나오는가 하면 여주인공은 화장실 청소 일을 하는 지구의 가난한 소녀에서 느닷없이 지구의 소유권을 가진 ‘폐하(your majesty)'로 신분이 격상되는 등 왕조시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물 활극(swashbuckler)을 연상시키기에 딱 알맞다. 그래서 주인공 케인역에 채닝 테이텀, 악역 발렘 아브라삭스 역에 에디 레드메인, 그리고 여주인공 주피터 존스역에 밀라 쿠니스 등 젊은 배우들을 대거 출연시켰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그들의 모습 위로 각각 에롤 플린, 베이질 래드본, 그리고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같은, 30·40년대를 주름잡은 해양 활극의 단골배우들 얼굴이 겹쳐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SF영화를 아이들용 오락물로 치부한다. 그러나 좋은 SF영화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통찰력을 준다. 뿐이랴. 더 나아가 인간의 정체성이라든지 자유의지, 선과 악, 삶과 죽음 등 갖가지 철학적 주제들을 생각하게 하고 다소 과장하면 인간의 인식수준을 한 단계 고양하기까지 한다.

고전에 속하는 것으로 일찍이 1927년에 만들어진 프리츠 랭의 걸작 ‘메트로폴리스’부터 시작해 로버트 와이즈의 ‘지구가 멈춘 날(The Day the Earth Stood Still 1951)’, 돈 시겔의 ‘신체강탈자의 침입(The Invasion of Body Snatchers 1956)', 울프 릴라의 ‘저주받은 마을(Village of the Damned 1960)', 프랑스와 트뤼포의 ‘화씨 451(1966)’, 프랭클린 J 샤프너의 ‘혹성탈출(Planet of the Apes 1968)',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1972)’ 스티븐 스필버그의 ‘제3종과의 조우(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 1977)’와 ‘쥬라기 공원(1993)’과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 리들리 스콧의 ‘에일리언(1979)’과 ‘블레이드 러너(1982)’, 제임스 카메론의 ‘터미네이터(1984)’와 ‘아바타(2009)’, 테리 길리엄의 ‘여인의 음모(누가 지었는지 참으로 한심한 국내 제목이다. 원제 Brazil 1985)’, 폴 버호벤의 ‘토탈 리콜(1990)’, 알렉스 프로야스의 ‘다크 시티(1998)’, 워쇼스키 형제(그때는 남매가 아니었다)의 ‘매트릭스(1999)’, 그리고 던컨 존스의 ‘더 문(2009)’과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2014)’까지.

그러나 최근의 SF영화는 거의 예외 없이 이른바 슈퍼히어로물이라는 딱지와 함께 철저히 눈요기만을 위한 애니메이션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럴 만도 한 게 원작들 자체가 모두 아동용 만화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치장하긴 했어도 오로지 치고받고 싸우는 것 외에는 아무 내용도, 의미도 없다. 예외가 있다면 고(故) 히스 레저가 악당 조커로 나온 ‘배트맨’ 시리즈의 하나(다크 나이트)를 들 수 있지만 그나마 그것도 ‘절대악의 형상화’라는 정도 이상의 것은 찾을 수 없다.

물론 좋은 SF영화는 대체로 좋은 원작에 빚지고 있다. 쥘 베른(해저 2만리), H G 웰즈(우주전쟁, 타임 머신), 조지 오웰(1984) 등 SF 소설의 여명기 대가들부터 존 캠벨(괴물), 아서 클라크(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레이 브래드버리(화씨 451), A E 밴 보그트(에일리언), 필립 K 딕(블레이드 러너, 토탈 리콜, 마이너리티 리포트), 존 윈덤(저주받은 마을) 같은 황금기 거장들을 거쳐 마이클 크라이턴(쥬라기 공원) 같은 ‘상대적 신예’의 작품들까지. 다만 때로는 훌륭한 SF 원작들도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졸작이 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예컨대 데이비드 브린의 걸작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 ‘포스트맨’을 배우 케빈 코스트너가 감독까지 겸해 97년에 만든 같은 이름의 형편없는 졸작이나 할란 엘리슨의 멋진 중편 ‘소년과 개’를 역시 원래 배우인 L Q 존스가 같은 제목으로 1974년에 만든 바보 같은 영화, 또는 프랭크 허버트의 대작 ‘듄(Dune)'시리즈를 데이비드 린치가 역시 같은 제목으로 달랑 한편짜리로 만든 1984년 작품 등이 그 예다.

반면 오리지널 각본에 의한 SF 영화도 훌륭한 것들이 적지 않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들어가 있는 영화들이다. 거기에 빛나는 통찰력과 생각할 거리까지 준다면 금상첨화이겠지만 그것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해도 종래 찾아볼 수 없었거나 이제까지와는 다른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없다면 아무리 돈을 많이 들여 화려하고 장대한 장면으로 화면을 구성한다 해도 좋은 SF영화가 될 수 없다. ‘무슨 무슨 맨’으로 끝나는 슈퍼히어로물이나 ‘트랜스포머’ 같은 단세포적 변신로봇물, 또는 옛날의 서부영화나 시대극에 외피(外皮)만 SF를 입힌 스페이스 오페라 같은 저급한 SF영화 말고 새롭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번득이는 진정한 SF영화를 보고 싶다.
김상온(프리랜서·영화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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