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항 논설위원 ‘그 숲길 다시 가보니’] 안산 자락길은 북한산과 이어질까-연산(連山) 이어걷기의 첫걸음

Է:2015-01-12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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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항 논설위원 ‘그 숲길 다시 가보니’] 안산 자락길은 북한산과 이어질까-연산(連山) 이어걷기의 첫걸음
날씨가 좋은 날 북한산국립공원 비봉능선에서 남쪽을 보면 4대문 밖 북쪽 대부분이 과거에는 산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동쪽부터 서쪽으로 북악산, 인왕산, 안산(무악산), 백련산으로 이어지는 산들과 삼각산(북한산의 옛 이름) 및 도봉산은 원래 하나의 생태계였다. 주택가와 포장도로가 야금야금 침범해 들어와 팔과 다리가 모두 잘린 모양새가 됐지만, 이 산들은 100년 전만 하더라도 호랑이와 멧돼지의 영역이었다.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에 자주 나오는 “인왕산 호랑이가 목멱산(남산) 삽살개 어르듯 하다”는 표현은 한양의 북쪽 산세가 호랑이를 품에 안을 만큼 넓고 험했다는 방증이다.
북한산 서남쪽 끝자락의 은평구 녹번동 통일로 산골고개에 생태연결로 공사가 마무리단계다. 육교 형태의 생태통로는 북한산 도시자연공원과 백련산 근린공원을 연결해 사람은 물론 야생동물도 지나다닐 수 있도록 설계됐다. 야생동물이 과연 통과할지는 좀 의심스럽지만, 우선 사람이 차도를 건너지 않고도 북한산의 연산(連山)들을 걸어서 갈 수 있게 된다는 게 반갑다. 게다가 서대문구는 안산, 인왕산, 북한산 둘레길과 백련산을 환상(環狀)으로 잇는 16㎞의 ‘안산 중심의 둘레길’을 2017년까지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안산과 인왕산을 연결하는 생태연결로도 올해 착공해 2017년 완공할 계획이다.

◇ 도심 속에서 자연을 만나는 장애 없는 숲길
머지않아 북한산의 연산들을 두 발로만 이어 걸을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을 안고 지난 6일 안산(鞍山)자락길과 백련산(白蓮山) 숲길을 걸었다. 2013년 11월 개통한 안산 자락길은 장애인, 노인, 유아, 임산부가 모두 다닐 수 있는 무장애 숲길을 표방하고 있다. 무장애 숲길로는 전국에서 가장 긴 7㎞의 순환형 산책로다. 전 구간의 경사도가 9% 미만으로 설계돼 있어서 휠체어를 밀면서 무리 없이 완주할 수 있다. 서대문구청, 한성과학고, 독립공원, 봉원사, 연세대 등 어디에서 출발해도 2시간 반 만에 출발점으로 돌아오고, 어디에서나 오르고 내려올 수 있다. 서대문구청 뒤 연희숲속쉼터에서 폭 2m의 나무데크를 따라 동쪽으로 돌기 시작했다. 이곳 데크 주변에는 화살나무, 산철쭉, 회양목, 홍매화를 심어놓았다. 아까시나무가 가장 많지만, 산벚나무, 갈참나무, 가죽나무 군락도 눈에 띄었다.
길에서 만난 직장인 조용만(49·상암동)씨는 “지난 한 해 주말마다 자락길을 산책했는데 4월에는 벚꽃, 5월엔 아까시꽃 향기, 6월에는 밤꽃이 좋고, 한 여름엔 메타세콰이어 녹음이 시원하다”고 말했다. 그는 “인공림과 자연림이 어우러져 다양함을 느낄 수 있고 남녀노소 가릴 것 없는 탐방객들을 보며 삶의 활력을 되찾기 때문에 약간 멀어도 이곳을 찾는다”고 덧붙였다. 서대문구청의 석우균 홍보팀장은 “전체 구민의 13.7%에 이르는 65세 이상 노인들의 녹지보행권을 증진시킨다는 취지에서 자락길이 조성됐다”면서 “지난해의 경우 하루 평균 3000명의 탐방객 가운데 노인이 약 70%에 이른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에 사로잡힌 어린이들을 자연과 친하게 하고 체력을 키우는 데도 자락길은 좋은 모델이다.

◇ 숲길을 지나 이어지는 ‘호랑이가 다니던 길’
북카페 전망대에 이르니 북한산과 인왕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전망대에서 굽어보는 무악재를 사이에 두고 안산초등학교와 청구아파트 3차를 잇는 곳에 생태통로가 건설될 예정이다. 현저동에서 홍제동으로 넘어가는 무악재는 몇 차례 깎아내려 낮아졌지만, 옛날에는 고개가 높고 험준했다. 양 옆으로는 밤나무 숲이 무성해서 호랑이가 자주 출몰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조선시대에 이 고개를 넘으려면 여러 사람을 모아서 넘어갔기 때문에 ‘모아재’라고 부르던 것이 모악재, 무악재로 차례로 바뀌었다는 것. 조선 태조가 도읍터를 물색할 때 경기도 관찰사 하륜(河崙)이 무악(안산)을 우백호로 하는 남쪽(지금의 신촌, 연희동 일대)을 적극적으로 주장했으나 터가 좁다는 이유로 기각되고 결국 인왕산(우백호)과 북악산(주산)사이로 도읍이 결정됐다. 당시 현장을 답사한 무학대사가 지금의 무악재를 무학재라고 부른데서 지명이 유래됐다는 설도 있지만, 이 또한 신빙성이 낮다.
한성과학고와 독립공원을 내려다보며 구름다리 같은 나무데크 길을 걷다보니 다양한 모습으로 겨울을 나는 나무들이 대견하다. 산수유는 솜털로 쌓인 커다란 눈을 만들었다. 팥배나무는 가장 늦게까지 앙증맞은 빨간 열매를 달고 이맘때쯤 배고픈 새들을 유혹한다. 늦가을에 에너지를 모아 열매의 당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다른 나무와 경쟁하는 대신 지공을 펴는 것이다. 플라타너스도 방울같은 열매를 달고 있다. 찔레나무에도 빨간 열매가 몇 개씩 남아 있다. 다년생 초본 가운데 개망초와 애기똥풀이 겨울철에도 잎을 땅 위에 내놓고 있는 것도 신기하다. 식물학 교과서에 따르면 초본은 겨울철에 땅 위에서는 사라져야 하는데 말이다.
금화터널 위를 지나가는 길은 경사도가 급한 탓에 나무데크 길이 지그재그로 뻗어 있다. 딱총나무, 노박덩굴, 낭아초 등이 보인다. 안산은 산세가 말안장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발 높이는 296m로 남산(262m)보다 더 높다. 안산의 다른 이름인 무악(毋岳)은 어머니의 산이라는 뜻의 모악(母岳)에서 나온 것인데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북한산의 인수봉이 어린애를 업고 나가는 모양이므로 그것을 막기 위해 안산을 모악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안산의 정상인 봉수대로 향하는 길도 자락길 곳곳에서 연결돼 있다. 봉수대는 함경도와 평안도의 경보를 서울 남산에 알리는 마지막 봉화였다.
금화터널을 지나 반환점을 돌면 시원한 전망을 자랑하는 능안정이 나타난다. 자작나무와 박달나무 조림지가 이어지고, 팥배나무 군락과 만난다. 개옻나무가 작은 포도알 모양의 주황색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무악정까지 상수리나무, 산벚나무, 느릅나무 군락이 도열해 있다. 숲속무대로 가는 길에는 1980년대에 조성된 메타세콰이어 숲이 하늘을 찌를 듯 장쾌한 직선미를 선사한다. 목재로 조성된 넓은 숲속무대를 지나면 독일가문비나무, 리기다소나무, 잣나무 조림지가 이어진다. 곧 출발점인 서대문구청이다.

◇ 끊어진 서울의 산세(山勢)를 잇는 생명의 길
북한산도 그렇지만 백련산, 안산, 인왕산이 모두 확대되는 아파트 단지의 전선(前線)과 높이에 압도당하고 있다. 안산 자락길에서 보더라도 산자락 서너 군데에서 아파트 신축공사가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망가지는 것은 조망만이 아니다. 이들 산은 이리 저리 뻗은 샛길들로 인해 파편화되어 이제는 어지간히 작은 포유동물도 그 안에서 살아가기가 어려워졌다. 오는 3월 개통될 산골고개의 생태연결로는 비록 당장 야생동물이 통과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이지만,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갖게 만든다.
시인 김광규는 안산에서 모래내길(속칭 화장터길)로 갈라져 나간 부분을 일컫는 고은산 산책로에서 힌트를 얻어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청설모 두 마리/ 고은산에 살았다/ (…) 통통하게 살이 오른 한 놈은/ 이 나뭇가지에서 저 나뭇가지로 옮겨/ 뛰다가 떨어져/ 삵쾡이에게 잡아먹힌 듯/ (…)/ 의주로와 모래내길과 연희로 사이에/ 고층아파트로 둘러싸여/ 비좁은 삼각주처럼 남아있는 산/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는/ 도심의 작은 산에 갇혀서/ 청설모 한 마리/ 외롭게 산다” (‘청설모 한 마리’)북한산 멧돼지들이 생태연결로로 이어진 연산들을 오갈 수 있게 되면 민가로 덜 내려올 것 아닌가.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 사진=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

[사진설명](위에서부터 순서대로)
- 서울 서대문구 안산 자락길 나무데크 통행로 / 자락길 숲속무대 / 새 둥지 모양의 자락길 엽서함 / 팥배나무 열매 / 자락길 나무데크 바닥의 안내표시 / 무악재 비석 / 서울 안산과 인왕산을 연결하는 생태연결로 건설 예정지 / 자락길 쉼터 / 서울 안산에서 바라본 도심과 남산 전경 / 서울 안산에서 바라본 인왕산(오른편)과 북한산(왼편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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