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오전 8시 인천광역시 남구청 운동장. 두툼한 외투에 방한모자를 쓴 어르신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몸은 늙었지만 마음은 손흥민이라니까!”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공을 차는 어르신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았습니다. 두 팀으로 나뉜 어르신들은 영하 10도에 육박하는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라운드를 누볐습니다. 이들을 두고 감히 노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그라운드에 노인들은 없었습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청년들뿐이었습니다.
#“축구를 하면 나이를 잊어 버려”
이재만씨는 65세, 서기남씨는 68세, 이명구씨는 78세라고 했습니다. 모두들 건강해 보였습니다. 이들은 인천광역시 남구생활체육회 축구연합회 실버축구단(인천 남구 실버팀) 회원들입니다. 이 축구단엔 30여 명의 선수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날 주안5동 실버축구단과 친선경기를 벌였습니다.
단장을 맡고 있는 이재만씨는 중요무형문화재 제 109호로서 조선시대 화각 공예의 마지막 재현자인 음일천 선생에게 사사 받은 유일한 제자입니다. 이 단장은 “얼마 전에 애들하고 한 게임 했는데, 역시 밀리더라”고 했습니다. 애들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50대 조기축구 회원들이지. 50대는 애들이고, 우린 청년이야. 허허허.”
두 팀으로 나뉜 선수들은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된 경기에서 맘껏 실력을 뽐냈습니다. 인조잔디구장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을 헤아려 보니 모두 30명이었습니다. 선수들이 너무 많은 게 아니냐고 했더니 이 단장이 겸연쩍게 웃었습니다. “원래 11명씩 경기를 하는데, 오늘 너무 추워 너나나나 다들 뛰려고 하다 보니 선수들이 많아졌네. 상관없어. 어차피 이기려고 하는 경기가 아니니까.”
서기남씨는 축구를 하면서 건강과 활기찬 삶을 되찾았습니다. 그는 3년 전 위암으로 위 절제 수술을 받았습니다. “위를 다 잘라냈지만 건강하게 잘 살고 있어. 이게 다 꾸준히 축구를 해 온 덕분이지. 의사도 축구를 계속 하라고 하더구만.”
인천 남구 실버팀 선수들은 대부분 젊었을 때부터 조기축구회에서 활동해 온 베테랑들입니다. 이 단장은 축구를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축구를 하면 나이를 잊어 버려. 100세 시대에 경로당에서 빈둥거리며 남은 세월을 보낼 순 없잖아. 축구를 하며 승부욕을 느끼면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 좋아. 요즘 예순 다섯은 과거의 예순 다섯 살이 아냐.”
이 팀은 해외 원정경기도 떠납니다. 자매결연을 맺은 해외 실버팀과 친선경기를 치르는 겁니다. 2012년 중국에서 6박7일 동안 머물며 매일 친선전을 치렀습니다. “중국 실버팀과 경기를 하다 보니 중국 선수들이 형제처럼 느껴졌어. 축구란 게 원래 국경을 초월하는 거잖아.” 이 단장의 말입니다.
이영일 남구 생활체육회 사무국장은 “우리 실버축구단의 어르신들에게 축구는 삶의 즐거움이자 건강의 비결”이라며 “축구를 하는 어르신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장수시대 ‘체육형 어르신’이 늘고 있다
박근혜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어르신들을 위한 축구 활동에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매년 다양한 실버축구대회도 열죠. 서울시의 경우를 살펴볼까요. 2010년 5월 ‘서울시 고령사회 마스터플랜’의 하나로 실버축구단이 창단됐습니다. 현재 서울시연합회 대표팀과 자치구별 1개 팀씩 모두 26개 팀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운영은 대한노인회 서울시연합회에서 맡고 있어요.
전 국가대표들이 뛰고 있는 서울시 연합회 대표팀은 단순히 공만 차는 동호회가 아닙니다. 많은 봉사활동을 하고 있죠. 강만종(78) 서울시 연합회 대표팀 감독 등은 ‘실버축구 전도사’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팀을 만들려는 곳이 있으면 전국 어디든 달려가서 선수 선발 노하우와 훈련 스케줄 등을 알려 줍니다. 또 지자체를 정기적으로 순회하며 기술 지도도 합니다. 시니어전문자원봉사단에 소속된 서울시 팀은 유소년 팀들을 찾아 재능 기부도 하고 있습니다. 가정의 달인 5월엔 여성팀, 노숙인팀, 장애인팀 등과의 친선경기를 하며 사회통합에도 기여하고 있죠.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최근 45년 새 20년이나 늘었습니다. 지난 3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3년 생명표’에 따르면 지난해에 태어난 출생아의 기대수명이 남자 78.5년, 여자가 85.1년으로 조사됐습니다. 남녀 평균은 81.9년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기대수명이 늘어나지 “가족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내 한 몸 잘 챙기자”는 ‘체육형 어르신’이 부쩍 늘고 있는 겁니다.
국민생활체육회 종목육성부의 차하영 과장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체감 연령을 조사해 보면 60~70대의 경우 자신의 실제 나이보다 10세 정도 젊게 생각해요. 운동에 대한 열의가 젊은이들 못지않죠” 차 과장은 노후에 스포츠를 더 잘 즐길 수 있는 비결도 알려 줬습니다. “무슨 운동이든 제대로 하려면 10년 전부터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분들과 실력 차이가 나 함께 운동하기가 어려워요.”
국내의 노인 기준은 ‘65세 이상’입니다. 그 기준은 1889년 독일에서 나왔습니다. ‘철의 재상’ 비스마르크는 사상 최초로 사회보험제도를 도입하면서 노령연금을 받는 나이를 65세로 정했습니다. 65세면 연금을 받으며 살아도 된다고 판단한 거죠. 당시 독일의 평균수명은 49세였습니다. 사회복지제도가 일본을 거쳐 한국에 들어오면서 노인 기준은 65세 이상이 됐습니다. 2011년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의 84%가 “70세 이상이 노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운동을 하면 얼마나 노화 현상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30대에 건강나이와 출생나이의 차이는 ±10 정도라고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출생나이와 건강나이의 차는 더욱 커져 50대에는 ±20이나 됩니다. 출생나이가 55세인 중년이 운동으로 몸 관리를 잘하면 35세의 젊은이로 살아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어르신들은 축구 외에도 다른 종목을 즐길 수 있습니다. 국민생활체육회의 자료에 의하면 2009년 4개 종목에 그쳤던 어르신 생활체육 종목은 올해 15개로 늘었습니다. 어르신들은 전국 700여 곳에서 다양한 스포츠를 즐길 수 있습니다.
아일랜드 출신의 소설가이자 극작가로 1925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버나드 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놀지 않는 것이 아니다. 놀지 않기 때문에 나이가 드는 것이다.”
인천=글·사진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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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뉴스] 운동장에만 서면 나이를 잊는 실버축구단… ‘체육형 어른신’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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