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성의 가스펠 로드] (5) 멕시코 빈민촌 어느 가난한 날의 일기
멕시코 남부 도시 오아하까 외곽 빈민촌. 허름한 집들이 더덕더덕 붙어 있는 작은 마을에서 예배가 열린단다. 씀벅거리며 여기저기 고개를 돌려도 교회는 보이지 않는다. 들쭉날쭉한 돌담을 돌고 돌아 어느 작은 집 대문에 이르렀다. 그제야 비로소 작은 예배당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정에서 조촐하게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미자립 교회였다.
아이들은 낯선 이에게 호기심을 보였다. 멀리서 수줍게 웃어 보이다 도망가기를 수차례.
“예배 전에 과자 먹으러 가지 않을래?”
이 한마디에 개구쟁이 녀석들이 일제히 몰려나왔다. 손을 내밀었다. 덥석 잡는다, 꽉. 폴짝폴짝, 가게까지 가는 아이들의 걸음에 생기가 돈다. 그런데 막상 슈퍼에 들어가서는 머뭇거린다.
“괜찮아. 아무거나 골라.”
철없는 막둥이 녀석이 잽싸게 과자 하나를 집어들더니 하나 더 집어도 되느냐는 얼굴로 나를 본다. 바닐라 맛과 초콜릿 맛 어느 것 하나 놓치기 싫은 폼이다. 누나가 얼른 어깨를 잡고 말리는 시늉을 한다. 그러자 아이는 애써 어깨를 털며 내게서 나오는, 보다 정확하고 현명한 답을 기다린다.
“괜찮다니깐. 하나 더 골라도 돼. 먹고 싶은 거 있음 다 골라.”
신난 아이는 세상을 다 얻은 표정이다. 들어가지도 않는 주머니에 과자들을 낑낑대며 억지로 쑤셔넣는다. 귀여운 녀석 같으니.
예배가 시작될 즈음, 자리를 채운 사람은 고작 열명 남짓. 아이들까지 합한 수다. 하지만 여느 예배 못지않게 하나님에 대한 절절한 믿음을 고백한다. 기타 한 대로 예배가 진행된다. 하지만 같이 기도하고, 같이 찬양 드리는 이 은혜를 감사한다.
예배 후 다른 가정집을 방문했다. 사고로 다리를 다쳐 위로가 필요한 곳이었다. 판자촌에 위치한 집의 구조는 처참했다. 지붕이 없었다. 비라도 오는 날엔 어떻게 하는 건지 생각만으로도 우울했다. 좁은 방 하나에 모든 세간이 다 놓여 있었다.
오랫동안 씻지 않은 아이들. 집에 손님이 방문했다고 좋아라 한다. 아이 엄마는 누워 있는 남편을 뒤로하고 손님에게 뭐라도 대접하려고 한다. 교회에서 지원을 해 주기는 하지만 교회 사정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그저 서로가 위로한다. 험한 삶을 버텨 나간다. 이들은 동이 트면 길가로 나가 재활용품 수거 등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간다. 전기, 수도 시설도 없어 생활하는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래도 예배가 있고, 심방이 있다. 오늘은 손님 덕에 우유를 마시는 날. 아이들 표정이 행복하기만 하다.
지붕 없는 판잣집에서 살아간다. 이들의 가난은 누구의 책임일까. 가지지 못한 자들의 무능력을 탓해야 할까. 아니다. 교회가 가난한 이들에게 손 내밀지 않고, 가난한 이들 역시 교회 문을 감히 두드리지 못한다면 그건 나 같은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이다. 예수님처럼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늦은 밤, 벌레 우는 소리와 휘영청 밝은 달이 마치 내 어릴 적 시골 같다. 나는 마을을 빠져나오면서 이곳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해 본다.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일터로 내몰리는 아이들. 이 아이들이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꿈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모의 운명을 물려받아야 할 이 조그만 아이들을 구제할 ‘선한 지혜’는 없을까? 예수님의 진리를 배우면서도 내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는 삶이 부끄러워진다.
문종성 (작가·vision-mat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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