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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풍향계-황태순] 先검찰수사 後국정조사로 풀라

[시사풍향계-황태순] 先검찰수사 後국정조사로 풀라 기사의 사진

“국정원장의 거취 표명과 읍참마속 마다않는 대통령의 결연함이 있어야 한다”

기함졸도할 일이다. 최고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이 증거를 조작했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박 대통령은 “실체적 진실을 조속히 밝히고, 문제가 드러나면 반드시 바로잡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 같은 대통령의 강한 의지표명 직후 검찰은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입이 열 개라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들만으로도 이번 사건은 사법체계를 유린한 범죄이며, 국기를 문란케 한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검찰은 국정원이 증거를 조작했는지 아니면 사기를 당했는지 빠른 시간 내에 밝혀내야 한다. 증거를 조작했다면 어느 선까지 관여됐는지, 사기를 당했다면 은폐 시도는 있었는지도 명백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다. 국가의 공권력 행사가 정당성을 잃으면 국가 공동체는 존립할 수 없다. ‘열 사람의 범죄자를 놓칠지언정 한 사람의 억울한 범죄자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법언(法諺)은 법치주의의 근간이다. 법치주의가 흔들리면 민주주의는 무너지고 만다. 이번 사건을 접하는 국민들은 공권력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과 경외심마저 흔들리고 있음을 느낀다.

이번 사건이 대중에게 불거진 것은 지난 2월 14일이다. 중국 정부가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3개의 문건이 위조라고 통보하면서다. 국정원이 아무리 무모하다고 해도 재판부에 제출하는 외국 정부의 서류를 위조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때문에 아마도 적법한 절차를 통해 서류를 취득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겠는가라고 선의로 해석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3월 5일 그런 믿음마저 배신하는 일이 벌어졌다. 국정원이 자신들의 증인이라고 검찰에 출두시켰던 협력자 김모씨가 자살을 기도하면서다. 김씨는 ①자신이 문서를 위조했다, ②국정원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③유우성은 간첩이나 증거가 없으니 추방하라는 유서를 남겼다. 유우성의 간첩 여부를 가리는 재판이 국정원의 증거조작 수사로 180도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최근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에 대한 재심에서 23년 만에 무죄가 선고됐다. 국민들의 뇌리에는 과거 권위주의 통치 시절 ‘인혁당 사건’이니 ‘동백림 사건’이니 하는 사건 조작의 아픈 기억들이 스멀거린다. 그런데 또 증거조작이라니. 자칫 공안사건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번져나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자칫하면 국가안보의 마지막 보루까지 흔들거릴 판이다.

이번 사태를 해결해 나감에 있어서 시급한 것은 다름 아닌 남재준 국정원장의 진퇴다. 이번 사건은 지난해의 국정원 댓글 의혹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남 원장의 국정원에서 벌어진 일이다. 공명정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또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남 원장의 분명한 거취 표명과 대통령의 읍참마속의 결연함이 필요하다.

또한 어떤 경우든 이번 사태를 정치적·정략적 차원에서 이용하려 해서는 안 된다. 우선 여당은 국정원을 비호하려 해서는 안 된다. 섣부른 물타기를 시도하려 해서도 안 된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이번을 기화로 특검을 요구하면서 자연스럽게 국정원 댓글 의혹 특검과 연계하려는 시도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야당의 균형감과 절제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일단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 이번 사태에서 검찰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방선거를 80여일 앞두고 ‘정쟁의 장’으로 전락할 수 있는 특검은 무리다. 검찰 수사 결과를 보고 그 이후 국회의 국정조사로 검증하자. 그리고 검찰이 감내해야 할 책임은 검찰 내부의 특임검사로 하여금 조사케 하는 것이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데 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행운의 여신은 때로는 추악한 모습으로 으르렁거리며 다가온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늘 하던 말이다. 그렇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가정보원도 진정 국민을 위한 최고 정보기관으로 거듭 태어나야 할 것이다.

황태순(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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