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엄마·아빠, 이 편지가 닿을 때쯤이면…” 3년전 日 쓰나미에 실종된 딸의 편지 뭉클

[친절한 쿡기자] 국내에도 유명한 일본 영화 ‘러브레터’엔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주인공 와타나베 히로코(나카야마 미호 분)가 죽은 약혼자의 사라진 옛 주소를 우연히 발견하고 그리운 마음에 편지를 써봤는데 며칠 후 답장이 날아온 겁니다. 나중에 이유가 밝혀지지만 그 순간만큼은 죽은 사람으로부터 편지가 오는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 거죠.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대지진 3주기를 앞두고 이 영화 같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지난 1월 12일 이와테현에 사는 한 50대 부부에게 편지 한 통이 배달됐다고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3일 보도했습니다. 이와테현은 당시 미야기현 등과 함께 쓰나미의 직격탄을 맞은 곳입니다.

부부는 흰 봉투를 보고 눈을 의심했습니다. 발신인으로 3년 전 쓰나미에 휩쓸려간 딸(당시 26세)의 이름이 적혀 있었던 겁니다. 수개월 간 쓰레기더미까지 뒤지며 미친 듯 헤맸고, 시신도 못 찾은 채 무너져 내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사망신고를 했던 딸입니다.

잠시 ‘어딘가에 살아 있었나’하고 희망을 품었던 부부는 2장으로 된 편지를 읽고 다시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편지는 2004년에 보낸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된 사연일까요.

2003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딸은 2004년 1월 10일 아이치현에 있는 ‘메이지무라’라는 박물관을 가게 됐습니다. 그곳에는 편지를 맡겨 놓으면 10년간 보관했다가 원하는 곳으로 보내주는 서비스가 있었습니다. 7년 후의 비극을 상상도 못한 딸이 엄마, 아빠에게 쓴 미래 편지가 2014년 1월 12일에 도착한 겁니다.

“이 편지가 닿을 때쯤이면 엄마, 아빠에겐 손자, 손녀가 있겠지?”

딸은 10년 후쯤이면 좋은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2010년에 8년간 교제한 중학교 동창과 약혼을 했다고 합니다. 대지진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이 예상은 현실이 됐겠죠. “만일 그때까지 혼자면 어쩌지?”라는 애교 섞인 걱정도 했습니다.

“그동안 은혜를 많이 입었으니 이제 내가 엄마, 아빠를 보살필게.” 당시는 딸이 교토의 한 버스회사에 취직해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입니다. 엄마, 아빠에게 의젓함을 보여주고 싶었나 봅니다.

아버지(59)는 “(딸이 사라진 후) 언제든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며 “이젠 하늘나라에 있는 딸이 웃을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야겠다”라고 말했답니다.

이 소식이 인터넷을 타고 일본은 물론 국내에 전해지면서 네티즌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다시는 이런 재해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무 안타깝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등의 댓글이 연이어 달리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의 잇단 망언을 떠올리면 일본은 우리에게 달갑지 않은 나라입니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애끓는 사연에 그런 것은 개입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다시 한 번 대지진으로 사라져 간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유가족들에게도 위로를 전합니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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