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국내 첫 여성은행장 권선주 기업은행장 “여성 후배들에게 꿈·희망 보여준 것 같아요”

Է:2014-01-29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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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人터뷰] 국내 첫 여성은행장 권선주 기업은행장 “여성 후배들에게 꿈·희망 보여준 것 같아요”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말 기업은행장 후보 두 명을 청와대에 올렸다. 권선주(58) 당시 기업은행 부행장과 기획재정부 차관을 지낸 허경욱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 박근혜 대통령은 권 행장을 낙점했다.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권 행장은 기업은행 자회사 사장 후보에도 올랐었는데 대통령이 다른 사람을 임명했다”며 “나중에 보니 기업은행장감으로 미리 찍어두고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정작 권 행장은 박 대통령의 ‘수첩’에 적힐 만큼 대통령과의 인연이나 일면식이 없다.

상업은행 전신인 대한천일은행이 1899년 설립된 뒤 114년 만의 첫 여성 은행장이다. 여성 첫 검사장 탄생 등 곳곳에서 유리천장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미국 칼럼니스트 헤나 로진의 표현처럼 ‘남자의 종말’ 전주곡인지 모른다. 세상이 바뀌고 있는 것은 편견과 차별을 견디며 수십년간 억척스럽게 일터를 지켜온 그녀들 덕분이다. 35년간 기업은행에서 일하다 최고 수장으로 승진한 권 행장을 지난 14일 서울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에서 만났다.

-은행장이 된 뒤 어떤 것들이 달라졌나.

“더 바빠졌다. 책임감도 커졌고, 준거점이 달라졌다. 물컵을 볼 때 위를 보면 ‘물이 반이나 남았다’고 하지만 아래를 보면 ‘반밖에 안 남았다’고 하는데 어디를 보느냐의 차이다. 행장이란 직책과 부행장이란 직책은 봐야 하는 시야가 많이 다르다. 종전에는 내 분야만 보면서 뭐가 최선일까 생각했는데 이제는 은행 전체를 봐야 하고, 국가경제와 사회적 현상과도 연결될 수 있으니 폭넓게 보고 생각해야 한다. 의사결정을 내릴 때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114년 만의 첫 여성 은행장이라는데 각오가 남다를 것 같다.

“새로운 시대정신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고, 패러다임이 많이 바뀌어 이게 하나의 물꼬가 될 거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잘해야 한다는 것과 아주 특이한 업적보다 기존에 하던 일 중에서 최선의 것을 찾고, 새로운 것을 더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여성 대통령 덕을 본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런 말씀들 많이 하신다. 우리나라 여성 대학진학률이 남성보다 높지만 경제활동 참가율은 53%로 OECD 국가 평균에 비해 상당히 낮다. 어떤 국가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특히 우리나라처럼 저출산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을 때는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여야 국가경쟁력도 올라간다. 그런 시대정신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새로운 여성 CEO가 나와서 여성 후배들에게 꿈과 희망을 갖고 계속 노력하라는 간단하고 명료한 메시지를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능력만 놓고 본다면 저보다 우수한 분들이 훨씬 많을 수 있지만 능력뿐만 아니라 국가가 인구의 50%인 여성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비전이 맞물려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은행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지.

“은행에서 35년을 근무했기 때문에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있었다. 하지만 은행장이 될 거라는 생각은 못 했었다. 기회가 주어졌으니까 당연히 잘 수행해 나가야 하고, 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은행들도 여성 임원들을 배출하는 등 ‘권선주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하는데.

“권선주 효과라고 말하는 분도 있고 시류인사라고 하는 분도 있고 두 가지 시각이 있다. 그러나 그분들이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고 본부장에서 전무로 올라간다든지 한 단계씩 올라간 거다. 충분히 경험과 능력을 쌓은 분들이라서 시류인사라고 하기보다 많은 여성 잠재력이 폭발하는 계기가 된 거로 표현하고 싶다.”

-74학번인데 동기들 중 아직도 직장생활하는 친구들이 있는지.

“제 나이 또래 고교 동창들은 다들 일을 하고 있다. 교수나 의사들은 아직 일을 하고 있고, 일반 회사는 거의 은퇴한 상황이다.”

-결혼하면 퇴사하던 게 관행이던 시절이었을 텐데 어떻게 버텼는지.

“제가 은행에 들어왔을 때는 여자가 처음 대졸 공채로 입사해 그런 게 없어졌을 때다. 결혼했으니 사표 쓰라는 그런 압력은 없었는데 큰아이를 낳고 나서 한 달 만에 복직했고, 둘째아이는 토요일까지 근무하고 일요일에 병원에 가서 아이를 낳고 한 달 만에 출근했다. 제도적으로 3개월 정도 육아휴직이 있었지만 일손이 부족해 충분히 육아휴직을 할 수 없었다.”

-같이 입사했던 동기들 중 아직 남아있는 사람이 있는지.

“저와 같이 입사한 55명 중 4명이 여자였는데 여자들은 결혼하면서 모두 퇴사했다. 남자들도 지금은 다 은퇴했고 나만 남았다.”

-35년간 일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인가.

“일 자체가 좋았다. 35년이란 세월이 얼마나 빨리 갔는지 모르겠다. 지루했다거나 빨리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매일매일 새로운 기분으로 출근하고, 내가 모르는 것을 배울 수 있고, 고객을 만나서 좋은 얘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남들이 들으면 거짓말 같고 이해할 수 없다고 하겠지만 어떤 면을 보느냐의 차이인 것 같다. 어차피 은퇴하면 쉬게 되고 그 뒤에 좋은 시간이 많이 남아있는데, 일할 수 있을 때 충분히 즐긴다는 생각을 갖고 일해 왔다.”

-그래도 고객을 대하면서 힘들 때나 승진에서 남녀 차별을 느꼈을 때 사표 쓰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지.

“군대를 안 간 데다 학교도 일찍 들어갔기 때문에 저보다 남자들이 나이가 많았고, 승진이 남자들에 비해 계속 늦은 편이었다. 그때마다 ‘남자들은 가장이고, 일찍 승진하는 게 가정에선 좋을 수도 있다. 나는 나이가 어리니까 기회가 더 많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자기합리화라고 할 수도 있는데 한번도 실력이 없어서 뒤졌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저분들이 먼저 가는 게 순리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내 차례는 다음에 올 것이라고 합리화하면서, 그 대신 기회가 왔을 때 잘할 수 있도록 계속 실력을 키워놔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고비를 넘겼던 것 같다.”

일을 하는 여성들에게 가장 큰 부담은 육아와 자녀 교육이다. 권 행장에게도 힘든 시기가 있었다. 1991년 대기업에 다니던 남편이 5년 해외 근무를 나가게 됐는데 한편으론 남편 따라 나가서 대학원 공부도 하고, 아이들에게 제2외국어 공부도 시키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권 행장은 일을 계속하는 길을 택했다. 직장 다니면서 혼자 초등학생 아이 둘을 키우는 게 쉽지는 않았다. 그녀는 큰아이에게 “이제부턴 네가 이 집의 가장이다. 동생을 잘 돌봐야 한다”며 미션을 줬다. 다른 학부모들과 학교 선생님께도 자신의 사정을 얘기하고 도움을 청했다. 퇴근해서 집안일을 끝낸 뒤 밤 10시쯤에는 아이들을 각자 방에서 나오게 했다. 1시간 정도 아이들은 책을 보게 하고, 자신도 공부를 했다. 이렇게 한 것이 아이들이 빗나가지 않고 바르게 자라도록 해준 것 같다고 한다.

사실 그녀 얘기를 듣다보니 ‘슈퍼우먼’이 따로 없다. 밖에서 일하면서도 살림살이는 전업주부 뺨칠 정도로 잘한다. 미장원에 퍼머 하러 갈 때는 1주일치 밥에 넣을 밤을 들고 가서 기다리는 시간 동안 밤을 까곤 했단다. 아이들 건강을 위해 밤을 넣은 잡곡밥을 짓는 일과 탄산음료 대신 보리차를 끓여 먹이는 일 두 가지는 꼭 했다. 이불빨래를 욕조에 넣어 직접 빨면서 운동이 된다고 하고, 청소하면서 스트레칭이 된다고 할 정도니 게으른 남편들은 좋아하겠지만 워킹맘들 입에서 “우리한테 어디까지 하란 말이냐”고 볼멘소리가 나올 만도 하다. 게다가 그녀의 취미는 요리. 요리해 놓고 음식이 완성되길 기다리면서 보고서와 책을 읽었다.

기업은행은 홍보대사 송해가 광고하는 것처럼 중소기업만 거래하는 은행이 아니다. 중소기업 전담은행으로서 경쟁력도 유지해야 하고, 내실 있는 은행이 되기 위해 개인 고객도 계속 확보해 나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앞으로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둘 계획인지.

“중소기업 창조금융의 성공 모델을 많이 만들고 싶다. 기존 고객을 잘 모시고, 다양한 투융자 복합 신상품을 개발해 은행권에 확산시키려 한다. 직원들에게 ‘내실 있게 성장하는 강한 은행’이라고 표현했지만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수익과 건전성, 성장, 사회적 책임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은행이 좋은 은행이라 생각한다. 여기에 직원들이 늘 출근하고 싶은 은행, 이 다섯 가지를 다 한다는 게 쉽지 않겠지만 최대한 균형점을 찾아가고 싶다.”

-우리나라는 세계경제포럼이 평가한 성평등지수가 세계 136개국 중 111위로 최하위권이다. 어떻게 달라져야 한다고 보는지.

“한국 여성들이 남편의 지갑을 다 갖고 경제권을 쥐고 있으니까 가정 안에서 여성의 지위는 높다고 생각하는데 사회적으론 중하위권이다. 동등하게 실력에 따라 바뀌어가는 지금의 추세는 바람직하다. 아직은 여성 인재풀이 적지만 앞으로는 여성이라는 게 뉴스가 안 될 것 같다. 정부도 육아정책 등에 신경 쓰고 있지만 인프라나 제도 변화도 중요하고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아이들이 갑자기 아플 때도 있다. 늦을 수도 있고, 너그럽게 봐주는 문화가 있어야 한다. 근무시간에 집중해서 일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기업은행은 평일 오후 7시면 PC를 끄고, 수요일은 오후 6시30분에 끈다. 대신 분기에 며칠씩 집중해서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그렇게 하니 생산성도 좋다. 불필요한 회식이나 긴 회의, 상사 때문에 눈치 보고 늦게 가는 문화는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힘들어도 견뎌내야 한다. 필요할 때는 주변의 도움을 받으라고 권하고 싶다. 가족과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만 가정과 일의 균형 있는 양립을 지켜나갈 수 있다. 또 부서 이기주의에 빠지지 말라는 얘기도 많이 한다. 부분적으로는 최적화된 것으로 보이지만 전체를 합치면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여성들이 자기가 맡은 일은 충실히 잘한다. 하지만 부서 이기주의에만 빠지지 말고 항상 시야를 폭넓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협업도 하게 되고 좋아지게 된다.”

권선주 행장은

‘여성 최초’ 수식어 달고 다녀… 포용력 갖춘 조용한 카리스마


권 행장은 대학 졸업 때 기자와 영어교사, 은행원의 세 가지 길을 놓고 고민했다. 결국 그녀는 중소기업은행을 택했다. 은행 업무가 적성에 맞았고, 은행원으로서 자부심도 크다. 멘토링하는 후배들에게도 은행 취업을 많이 권한다.

기업은행에서는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여성 최초 1급 승진’ ‘첫 여성 지역본부장’ ‘첫 여성 부행장’ 등.

권 행장은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게 아니다. PB(프라이빗뱅킹) 등 전통적으로 여성이 강점을 보이는 업무에 안주하지 않고 영업 현장을 25년 누볐고, 금융소비자 보호 업무, 외환 업무, 리스크 관리 업무 등 새로운 업무에 항상 도전하며 남성들과 당당히 경쟁해 얻어냈다. 주방 싱크대에서도 보고서와 책을 끼고 있을 정도로 항상 공부하고 미래를 위해 준비해온 결과이기도 하다.

권 행장은 여장부 스타일보다는 ‘조용한 카리스마’ 수식어가 붙곤 한다.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따뜻한 포용력과 추진력에 후배들이 많이 따른다. 자영업을 하는 남편과의 사이에 1남1녀를 뒀다.

△1956년 전주 출생 △1974년 경기여고 졸업 △1978년 연세대 영문학과 졸업 △1978년 2월 기업은행 입사 △1998년 서울 방이역지점장 △2008년 여신·외환지원센터장 △2010년 중부지역본부장 △2012년 리스크관리본부장 △2013년 12월∼현재 기업은행장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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