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서 끄집어낸 생명력… 나희덕 일곱 번째 시집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Է:2014-01-24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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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서 끄집어낸 생명력… 나희덕 일곱 번째 시집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우리는 삶에서 시작하기 위해 지상에 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죽음에서 시작하기 위해 지상에 온 것이다. 나희덕(48·사진)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문학과지성사)은 이런 이미지가 중첩되어 있다.

“제 마른 가지 끝은/ 가늘어질 대로 가늘어졌습니다./ 더는 쪼개질 수 없도록.// 제게 입김을 불어넣지 마십시오./ 당신 옷깃만 스쳐도/ 저는 피어날까 두렵습니다./ 곧 무거워질 잎사귀일랑 주지 마십시오.// 나부끼는 황홀 대신/ 스스로의 관(棺)이 되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부디 저를 다시 꽃피우지는 마십시오.”(‘어떤 나무의 말’ 전문)

나희덕은 자신을 나무에 빗대, 잎 틔우고 꽃 피우던 에로스의 시절은 절대 오지 말게 하고 오히려 서 있는 자세 그대로 관이 되게 해달라고 간구하고 있다. 1989년 등단해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생명이 깃든 삶의 표정을 포착해온 그가 죽음의 자세에 대해 이토록 집착하는 역발상의 출처를 우린 금방 알아차릴 수는 없다. 다만 시집 2부에 실린 상당수의 시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하직한 ‘너’라는 존재에 대한 애도로 가득 차 있다는 데 주목하면 그 이유를 대강 어림할 수 있다. “너는 잔에 남은 붉은 포도주를/ 도로에 다 쏟아버렸다// 몇 방울의 피가 가로수에 섞이고/ 유리조각들이 아침 햇살에 다시 부서졌다// (중략)// 마른 풀 위로 난 바퀴 자국,/ 황급히 생을 이탈한 곡선이 화인처럼 찍힌 아침”(‘그날 아침’ 부분)

‘너’의 교통사고 소식에 접한 뒤 유품을 인도받고 시체보관소를 찾아가고, 묘비명에 쓸 구절을 생각하던 일련의 과정들이 시인에 의해 복기되고 있다. 그 절박한 심정은 나희덕에게 한 편의 시를 지향하는 하나의 궁극이 된다. “가라, 가서 돌아오지 마라/ 이 비좁은 몸으로는/ 지금은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수만의 말들이 돌아와 한 마리 말이 되어 사라지는 시간/ 흰 물거품으로 허공에 흩어지는 시간”(‘말들이 돌아오는 순간’ 부분)

‘수만의 말’이 상징하듯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은 ‘너’ 혼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닥쳐온다. 다만 한동안 감정의 격랑을 치러낸 나희덕은 불모의 상황과 우울의 시간을 다시 회복의 시간으로 반전시킨다. 그는 누군가를 묻은 관(棺)에서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희덕에 따르면 “삶이란 떼어낸 만큼 온전해지는, 덜어낸 만큼 무거워지는 이상한 저울”(자서)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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