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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코리아의 그늘] 첨단 IT 전사들이 스러져간다

[IT코리아의 그늘] 첨단 IT 전사들이 스러져간다 기사의 사진

프리랜서 SW개발자가 말하는 노동 실태

“처음에는 뭔가 근사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이 일을 시작했지만 그런 환상은 곧 깨졌습니다. 여기서 창조적인 일을 하려면 굶을 생각을 해야 합니다. 전혀 매력적인 직업이 아닙니다.”

6일 만난 자바 프로그램 개발자 홍기욱(가명·33)씨는 3년 전 프리랜서로 전향한 뒤 그나마 사정이 나아졌는데도 자신이 몸담고 있는 업종에 대한 환멸이 컸다. 대학에서 전산을 전공한 홍씨는 2004년 졸업 후 구로동·가산동 일대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 있는 중소 IT 업체에 취직했다. 4년 뒤 프로그래밍 언어를 델파이에서 자바로 바꾸면서 직장도 한 차례 옮겼다. 그가 정규직으로 일했던 두 회사 상호는 ‘○○○소프트’ ‘○○시스템즈’였지만, 실상은 시스템통합(SI) 사업프로젝트를 발주한 원청업체에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보내주고 중개수수료를 챙기는 ‘IT 보도방’이었다. IT 보도방은 개발자뿐 아니라 일반사무보조, 청소부 등 IT와 무관한 업종 알선까지 취급하기도 한다.

이런 업체에는 정년 보장이나 사원 복지혜택은 일절 없었고, 거의 전 직원이 파견 나가 있다보니 회사 문화나 직장 동료라는 개념도 전혀 없었다. 결국 홍씨는 업체 사장이 챙기는 중개료만큼을 더 벌 수 있는 프리랜서의 길을 택했다.

업체 소속이었을 때 월 200만원 안팎을 받다가 프리랜서로 나가면 적게는 50만원에서 많게는 200만원까지 더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프리랜서는 자기가 직접 일을 구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계약할 때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지난여름 서울의 한 증권사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홍씨는 직접 계약한 중간 업체 사장이 도망가는 바람에 월급을 떼였다가 나중에 어렵게 받아냈다. 하지만 함께 일하던 다른 프리랜서는 지금까지 600만원 정도를 못 받은 상태다. 홍씨는 이런 임금 체불이 “개발자들 사이에선 매우 흔한 일”이라고 했다.

프리랜서 초기에 휴일 없이 매일 아침부터 새벽까지 일에만 매달리는 생활을 7개월 동안 했던 홍씨는 그 이후로는 계약할 때 ‘야근은 어느 정도 이상 못 한다’는 단서 조항을 반드시 붙이고 있다. 또 ‘개발 후 6개월간 유지보수 의무’라는 식의 불합리한 조항도 철저히 따져서 뺀다. 프리랜서 IT 노동자는 계약 문제로 피해를 입어도 구제를 받기가 쉽지 않다. 실질적으로는 근로감독을 받는 근로자이지만 명목상으로는 사업자여서 고용노동부에서 민원을 안 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홍씨가 설명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 생태계를 간단히 정리하면 전문적인 IT 인력이 전문성과 창의성을 제대로 키워나가기가 불가능한 구조다. 창조경제의 첨병이어야 할 IT 전사들이 전근대적인 시스템 속에 갇혀 소모되고 있는 것이다.

‘갑’과 ‘을’의 위치에 있는 공공기관과 대기업, 그리고 대기업의 IT 자회사들(삼성SDS, LG CNS, SK C&C 등)은 ‘병정무기경신’으로 끝없이 내려가는 하도급 관행을 통제하려 들지 않는다. 홍씨는 “특히 가격경쟁력을 내세워 대규모 프로젝트를 몽땅 가져가는 대기업 IT 자회사들은 개발자를 ‘쉽게 구할 수 인력’으로 여기고 자신들은 개발자를 부릴 관리직원과 소수의 핵심 인력만 보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대기업이 수익성·효율성을 이유로 개발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고 외주를 주는 것에 치중하다보면 결과물이 부실해지는 부작용도 생긴다. 가장 낮은 단계의 하도급 건설사가 적은 돈을 받고 빠듯한 일정 속에 무리하게 공사를 함으로써 건물 자체가 부실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국기술교육대 김주일 교수는 “SI업계 대기업들은 이윤율이 낮아지는 문제에 봉착해 비용 효율화를 추구하게 됐고, 이 과정에서 하도급 업체와의 거래관계가 불거졌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현재의 하도급 구조에선 1억원짜리 프로젝트가 마지막 실행 단계에 와서 4000만원에 맞춰지는 현상이 빚어진다”며 “개발자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과 높은 노동 강도에 시달리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나 소프트웨어 제품 개발은 자연스럽게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이 올해 IT 노동자 102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주당 근로시간은 평균 57.3시간으로 9년 전인 2004년의 상태(57.8시간)에서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또 초과근로시간(야근·휴일근무 등)을 정확히 따져 수당을 지급받는 IT 노동자는 전체의 10.3%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발주사가 책정한 인건비가 여러 단계의 하도급을 거쳐 IT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수준(실지급액 비율)은 최초 인건비의 40∼60% 수준이 41.5%로 가장 많았다. 80% 이상을 받고 있다는 응답은 6%에 그쳤다.

2004년 조사에서 20대 이하 IT 노동자의 비율은 53.7%였으나 올해는 32.9%로 대폭 낮아졌다. 업종에 대한 매력이 사라져 신규 대졸 인력의 유입이 급감한 것으로 분석된다. 또 2004년 6.3%였던 프리랜서 비율은 올해 19.4%로 급증했다. 중소업체 소속 정규직원이 조금이라도 보수를 더 받기 위해 프리랜서로 가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지난 10월 정의당 박원석 의원이 공개한 ‘IT 노동자 근로실태조사 및 법·제도 개선방안’ 보고서에는 현직 노동자들의 절절한 목소리가 담겨 있다. 집단 인터뷰에 참여한 38세의 자바·오라클 프로그래머는 “계약 마지막 달 월급날 오후 1∼2시까지 돈이 안 들어오면 떨린다”며 “원치 않는 야근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은데 시간당 5000원이라도 보상이 있는 야근을 원한다”고 말했다.

경력 14년의 또 다른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피라미드 구조 속에서 개발자들은 지렁이 신세이며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엉뚱한 사람이 받는’ 현 상황이 IT 산업의 위기를 부른다”면서 “벌써 (IT 산업의) 허리와 발가락이 쪼그라들었고 가슴만 비대해져 있어 이 단계가 지나면 대한민국 IT의 끝이 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원석 의원은 “역대 정부는 IT를 핵심 산업으로 삼고 육성 정책을 펴왔지만 IT 노동자들의 근로환경은 오히려 악화됐다”며 “IT 인력의 양적 확대보다 노동환경과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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