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배병우] 미얀마의 길, 이란의 길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에게 요즘은 오랜만에 찾아온 ‘휴지기(休止期)’일 것이다. 지난 5월 하순 이후 북한과 중국이 6자회담 재개를 포함한 ‘대화와 협상’ 공세를 펴고 있지만 미국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지난해 4월 이후 올 5월까지 1년간은 북한과 한·미 양국 간에 전례 없는 전쟁 위험이 고조된 시기였다.

북한의 대화 공세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단순히 6자회담 재개를 넘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북·미관계 정상화 등 ‘통 큰 해결’을 위해 비핵화까지도 협상 대상으로 내놓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꾼 것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백악관과 국무부의 동정을 들여다보면 미국 외교정책 우선순위에서 북한 문제는 한참 뒤로 밀려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 물론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전제조건’을 둘러싼 미·중·한국·북한 간 물밑 접촉은 진행되고 있다.

대신 미 외교라인과 한반도 전문가들의 눈이 쏠리는 곳은 이란이다. 하산 로하니 대통령 취임 이후 이란 핵 프로그램에 대한 전향적 태도 변화가 예상된다는 관측이 있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이란의 협상 의지가 단순한 제스처 이상이라는 게 확실해졌다.

이란 핵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15∼1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P5+1(유엔 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독일)과 이란 간 협상을 취재하고 돌아온 한 일본 특파원은 예상보다 훨씬 빠른 진전이 있을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무함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극심한 허리통증에 휠체어를 탄 상태로 협상에 참가했다고 한다. 이란의 협상 의지가 그만큼 강한 증거라는 것이다. 또한 미국 측에서 국무부 정무차관인 웬디 셔먼이 나온 협상 테이블에 외무장관이 참석한 것도 국가 자존심을 중시하는 이란의 전례에서 파격적이라고 한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수젠 멀로니 수석연구원은 미 외교협회(CFR) 인터뷰에서 “협상이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결과를 매우 낙관한다”고 말했다. 로하니 대통령이 협상을 타결하기 위한 책무와 권한을 위임받았고 의지가 강하며 준비돼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워싱턴에서 대표적인 이란통으로 꼽힌다.

결국 미국이 현 단계에서 북한과의 대화에 소극적인 데는 이란과 핵 협상을 타결한 뒤 이 결과를 북한과의 협상에 ‘표준’으로 삼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군사독재로 강력한 제재를 받았던 미얀마의 개혁·개방을 언급하며 북한에 ‘미얀마의 길’을 따르라고 한 바 있다. 이란과의 핵 협상을 마무리한 다음 북한에 ‘이란의 길’을 따르라고 압박할 것이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미국은 당분간 북한과 중국의 6자회담 재개 요구의 진정성을 시험하면서 이란 핵 협상 결과에 대한 관심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이란 핵 협상 타결은 미국의 대북 협상 입지를 한층 유리하게 하는 호재이기 때문이다.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6개월 내에 미·이란 간 핵 협상이 돌파구를 찾을 것이라는 예상이 워싱턴 일각에서 나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북한이 이란과 같은 길을 따를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생각보다 이른 시일에 휴지기가 끝나고 북한 문제를 둘러싼 큰 판이 열릴지도 모른다. 북한과 미국 간 직접 대화 등으로 상황이 급진전할 경우 한국이 발언권을 행사할 ‘지렛대’는 있는지,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일지 등에 대해 준비를 서두를 필요가 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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