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의구] 평양에 울린 애국가

스포츠 선수들에게는 세계의 내로라하는 선수들과 기량을 겨룬 뒤 시상대에 오른 때가 가장 감격적인 순간일 것이다. 모국의 깃발이 올라가고 국가가 장내에 울려 퍼지면 승리의 감격과 그간의 노고에 대한 회한이 교차해 눈물을 훔치게 된다.

올림픽 경기에서 우승자의 국가가 연주되고 메달 수상자들의 국기가 게양된 것은 제1회 근대 올림픽이 열린 1896년 아테네부터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근대 올림픽 최초의 우승자는 개막 직후 3단뛰기에 출전했던 하버드대학 출신 제임스 코널리였다. 당시 시상식은 매 경기 직후가 아니라 폐막식 때 한꺼번에 치러졌다. 게오르기오스 1세 그리스 국왕이 우승자에게 은메달과 올리브화환을, 준우승자에게는 동메달과 월계관을 상장과 함께 수여했다. 경기 순서에 따라 시상식이 있었다면 올림픽에 처음 울린 국가는 미국 국가였던 셈이 된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시상대에 오르는 선수들에게 정식 국가대표 유니폼이나 운동복을 갖춰 입도록 하고 있다. 시상대에서는 정치적인 발언이나 제스처가 금지된다. 인류 평화와 화합의 제전을 지향하는 올림픽 정신이 정치 싸움으로 훼손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지난 14일 평양 유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2013 아시안컵 및 아시아 클럽역도선수권대회에서 태극기가 게양되고 애국가가 처음으로 연주됐다. 남자 주니어 85㎏급에 출전한 김우식(19) 이영균(19) 선수가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해 태극기가 오르자 북한 관중들이 기립했다. 이틀 전 개막식에서도 한국 선수단은 태극기를 앞세우고 입장했다.

평양에 태극기가 휘날리고 애국가가 울리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남한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북한 인공기 게양을 승인했다. 그러나 북한은 2008년까지도 태극기와 애국가를 완강히 거부했다. 결국 그해 3월 평양에서 개최될 남북 축구대표팀의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전은 중국 상하이에서 치러졌다.

최근 북한의 유연한 태도는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핵실험으로 촉발된 국제 제재를 피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남북관계나 국제사회 움직임에 따라 언제든 태극기와 애국가가 다시 금지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차제에 북한이 정치와 스포츠를 분리하는 국제적 관례를 존중하고, 왜곡된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는 본궤도에 오르는 게 우리의 기대다. 작은 물결이 큰 파도를 일으켜가듯.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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