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혜훈 (3) 주일성수에도 개교 이래 첫 서울대 합격 영예

어릴 때는 성경에 나와 있는 명령들만 잘 지키면 이 땅에서 약속된 모든 축복을 받는 것으로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고지식할 정도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다. 주일날 돈을 쓰면 안 된다고 해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하는 교회까지 걸어 다닌 것도 그래서다. 대예배, 학생예배, 저녁예배까지 한여름 무더위에 교회까지 서너 번 왔다 갔다 한 적도 많았다.

철없던 시절이었으니 기도하는 내용도 ‘좋은 대학 가게 해주세요’ 수준이었다. 어머니를 따라 매주 금요일 철야기도에 가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게 해 주세요”하고 기도했다. 그 때는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마산에도 뒤늦게 추첨제가 도입됐다. 추첨결과 나는 명문여고가 아닌, 제발 이 학교만은 가지 않았으면 했던 학교에 배정됐다. 4년제 대학에 진학한 선배들도 많지 않은, 대학 진학과는 거리가 먼 학교였다. 우리 가족은 실망을 금치 못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서 열심히 기도했는데 왜 들어주지 않으셨을까 원망스런 마음이 생겨났다.

어머니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그 언약의 말씀을 주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주실 줄을 믿어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라고 매일 내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서울 같은 대도시의 학생들은 실력 있는 선생님들께 배우고 족집게 과외까지 받고 있었다. 지방 소도시의 이름 없는 학교에 다니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해보였다. 학교 선생님들도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자포자기하는 마음이 자라났다.

어느 날 철야기도 시간에 목사님이 오병이어 기적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린아이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를 드렸을 때 역사하신 이는 예수님이셨다. 내가 할 일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역사하실지, 하지 않으실지는 예수님 몫이지 내 몫이 아니다. 나는 내 몫만 다하자.”

학교차원의 지원은 부족했지만 동급생들은 대학에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많은 학생들이 주일에도 학교에 나와 자율학습을 했다. 내게도 주일날 학교에 나와서 공부하라는 압박이 점점 심해졌지만 나는 안식일을 지켰다. 하루종일 성가대와 학생회, 대예배, 각종 헌신예배의 반주를 하느라 주일에는 평일보다 훨씬 더 힘들었지만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러던 중 도저히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이혜훈 학생, 교무실로 와서 전화를 받기 바랍니다”라는 교내 방송을 듣고 가보니 기도 응답이 왔다며 기뻐하는 어머니의 전화였다. 방금 전두환 대통령의 명령으로 과외를 전면 금지하고 본고사도 폐지한다는 발표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당시는 예비고사와 본고사로 대학입시가 이원화돼 있었다. 예비고사는 지금의 수능처럼 전국 모든 입시생이 공통의 문제지로 보는 것이었다. 본고사는 각 대학이 자체적으로 출제했는데 무척 어려워서 수학 본고사는 0점도 많았다.

나는 수학에 선천적으로 소질이 없었다. 게다가 전문선생님의 지도도 제대로 못 받고 자습이 많았던 상황에서 본고사를 통과해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나라에서 본고사를 없애고 서울 학생들에게 유리한 과외를 아예 금지하는, 상상도 못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결국 나는 주위의 부정적인 예상을 뒤집고 모교 개교 이래 최초로 서울대에 입학한 학생이 됐다.

정리=송세영 기자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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