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시대의 영성] “이제 ‘검색’ 대신 묵상으로 아침을 맞습니다”

김형수 행정목사의 ‘스마트폰 탈출기’

여느 때와 같은 퇴근길이었다. 교회에서 집까지는 차로 5분 거리로 곧 있으면 집에 도착할 터였다. 유턴 차로에서 신호대기 중 스마트폰을 꺼내들어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새로 뜬 뉴스를 확인했다. 한 손엔 스마트폰, 다른 한 손엔 핸들을 쥔 채 기사를 훑어보다 무의식적으로 핸들을 꺾었다. 순간적으로 신호가 바뀌었다고 착각한 것. ‘빵빵!’ 갑자기 반대편에서 달려오던 트럭이 날카로운 경적을 울렸다.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트럭의 경적으로 급히 상황을 판단해 차를 세웠지만 하마터면 큰 사고가 날 뻔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아, 이렇게 무심코 스마트폰 만지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서울 석관동 맑은샘광천교회 행정목사인 김형수(42·사진)씨의 일명 ‘피처폰 리턴즈’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는 넉 달 전 귀갓길에서 겪은 이 경험으로 신형 스마트폰을 피처폰으로 바꾸는 결단을 내렸다. 스마트폰이 제 아무리 ‘문명의 이기(利器)’라지만 스스로 절제할 수 없다면 아예 사용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에서였다.

SNS·모바일 메신저, 꼭 필요할까

마침 중학생 딸의 휴대전화가 김 목사의 눈에 띄었다. 그는 딸과 휴대전화를 바꿔 쓰기로 했다. 전화 통화와 문자메시지만 사용 가능한 분홍색 피처폰이었다. ‘스마트 기기 예찬론자’까진 아니지만 그간 김 목사는 스마트 기기에 관심이 많고 잘 활용하는 편이라고 자평해 왔다. 1년 전엔 스마트폰과 별개로 설교와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위해 태블릿PC를 구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돌아보니 이들 기기를 원래 목적과는 다르게 쓰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펜이 달려 여러모로 쓰임새가 많다는 스마트폰으론 SNS와 모바일 메신저, 인터넷 포털 앱을 주로 사용하고 있었다. 큰 맘 먹고 장만했던 태블릿PC는 어느새 자녀들의 장난감이 돼 있었다.

이전보다 꽤 불편한 점이 많아보였지만 그래도 김 목사는 피처폰 사용을 강행했다. 기존 휴대전화를 계속 쓰다간 자신도 모르게 스마트폰 중독이 되고, 또다시 위험한 상황까지 갈 것 같다는 위기감이 들어서였다.

의외로 김 목사는 피처폰을 사용한 넉 달간 그다지 불편을 겪지 않았다. 그동안 스마트폰으로 했던 검색이나 이메일 작성, SNS는 교회나 집의 데스크톱 컴퓨터, 태블릿PC로 해결했다. 자주 사용했던 모바일 메신저는 문자메시지로 대체했다. 주변 사람들 역시 그의 ‘2G폰 사용선언’을 불편해하지 않았다. 그에게 연락하는 데 전화 통화와 문자메시지만으로도 별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삶의 우선순위 회복에 가장 만족

오히려 김 목사는 스마트폰을 안 쓰면서 얻는 게 더 많다. 일단 경제적 부담이 줄었다. 이전엔 10만원 가까이 나오던 요금이 3만원 정도로 낮아졌다. 습관적으로 사용하던 SNS나 모바일 메신저 등을 사용하지 않아 시간도 절약할 수 있었다. 또 2개 정도의 SNS 계정을 사용하면서 종종 느꼈던 심리적 피로감도 사라졌다. 이들 계정에 실시간 접속이 불가능해지니 누가, 어떤 댓글을 달았는지 신경 쓸 필요가 더 이상 없어져서다.

피처폰으로 바꾼 뒤 무엇보다 김 목사가 가장 만족스러워하는 것은 ‘삶의 우선순위 회복’이다. 평소 그는 새벽기도회를 마친 뒤 오전 7시부터 2시간 정도를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검색하며 소일하곤 했다. 하지만 이젠 이 시간에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묵상시간을 가진다. 그는 개인 경건시간이 늘어 설교 준비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설교는 어떤 미사여구보다 신앙을 기반으로 한 설교자의 성령체험이 중요하다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김 목사는 주변 지인에게도 피처폰 사용을 권하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 중독 증세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적극 추천한다고 했다.

“스마트폰이 없어 남들로부터 소외될까 고민하지 말고 일단 한번 해 보세요. 그런 염려 때문에 삶을 뺏긴다면 그게 오히려 더 큰 손해 아닐까요?” 언젠가는 스마트폰으로 바꿀 수도 있겠지만 김 목사는 아직은 그럴 생각이 없다고 했다. 예배와 가족, 삶에 집중할 수 있는 현재가 더 좋으므로.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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