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이육사문학관

유학자의 도시로 알려진 경북 안동에는 다른 지역에 비해 유달리 종택이나 서원이 많다. 안동에서도 봉화군에 인접한 북쪽 지역에는 서원과 고택이 밀집돼 있다. 퇴계 선생이 후학을 가르쳤다는 도산서원을 비롯해 농암종택, 명문가인 광산 김씨의 유산이 오롯이 보존된 군자리 한옥 마을 등이 안동에서 봉화를 향해 달리는 35번 국도 좌우에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육사문학관은 이런 고풍스런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준공된 지 10년 남짓 된 깔끔한 현대식 3층 건물로 퇴계종택과 퇴계생가 부근에 있다. 수차례 안동을 오갔으나 국도에서 꼬불꼬불한 편도 1차선 또는 2차선 도로를 따라 한참 달려야 했기에 쉽사리 맘을 먹지 못했다. 이번 답사 직후에는 진작 찾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무엇보다 다른 문학관과 달리 얼마간의 입장료를 받았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문학관은 무료다. 유명 시인이나 소설가의 고향 지자체가 관리하기 때문에 돈을 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겠지만 이곳은 사단법인인 기념사업회가 운영한다. 그러나 입장료가 결코 비싸게 느껴지지 않았다. 17번이나 옥살이를 하면서도 지조있는 시를 남긴 육사의 행적을 마음껏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작품과 함께 길지 않았던 그의 생애를 재구성한 1층보다 다른 시인들의 육필 원고와 편지 등이 전시된 2층이 단연 볼거리였다. 절친이었던 시인 신석초의 고향 집에 보낸 편지와 소월 김정식의 육필 원고를 비롯해 천상병 시인과 동리 선생의 육필 원고 등 거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문학관을 짓는다고 하니 여러 곳에서 기증을 해 온 것이라고 했다.

수인번호를 필명으로 쓸 정도로 강인한 민족정신을 가진 사람의 시는 정치성이 강해 문학적으로 완성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 평론가들의 진단도 있다. 또 육사가 활동했던 시기는 우리 문단이 모더니즘에 심취했던 시기다. 정지용 등이 활약했던 1930년대는 말 그대로 순수서정시의 황금기였다. 그렇지만 육사의 시는 서정성에 있어서도 이들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학관 바로 앞에는 마침 청포도 넝쿨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청포도가 당시 안동에 있었느냐 아니면 대구에 있었느냐는 등의 논란을 잠재우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오랜만에 ‘청포도’를 속으로 되뇌었다. “내 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언제 불러도 가슴 뭉클하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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