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오성삼 (11) 두살배기 아들 아침마다 헤어지지 않으려 울어

Է:2013-02-28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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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오성삼 (11) 두살배기 아들 아침마다 헤어지지 않으려 울어

미국 시카고 유학시절의 아픔이 하나 있다. 지금도 아내가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을 생각하면 가슴앓이를 하는 일이다.

세 살이 된 수정이는 탁아소 앞에 내리면 떨어지지 않으려고 내 옷을 꼭 잡았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그곳 생활에 빨리 적응해 갔다. 문제는 두 살 된 경인이였다. 아침에 아기 돌봐주는 집에 경인이를 맡길 때, 녀석은 돌아서는 나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한참동안 울었다. 학교 가서도 아이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우리는 경인이를 외갓집에 보내기로 했다. 당시 아내가 여행사에 다녔는데 한국을 방문하는 여행자에게 사례비 100달러를 주고 경인이를 김포공항까지 데려다달라고 부탁했다. 마음이 착잡했다. 말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를 낯선 사람과 12시간 이상 비행기에 태워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잠이 오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해가며 유학생활을 계속해야 하는지 회의가 들기도 했다.

다음날 경인이를 데리고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으로 갔다. 아무것도 모르고 웃는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나와 아내의 마음은 형용키 어려운 슬픔에 젖었다. 비행기 출발 시각이 가까워오자 경인이를 한국까지 데려다주기로 한 사람이 나타났다. 떨어지지 않으려는 경인이를 낯선 아저씨에게 넘겨주고 출국장으로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우리는 말없이 눈물만 닦아냈다.

집에 돌아오니 후회뿐이었다. 그날 우리 부부는 학교와 직장에 나갈 생각도 잊은 채 벽시계를 쳐다보며 지금쯤 비행기가 어디를 지나고 있을까 하며 깊은 한숨만 내쉬었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하루를 보냈는데 한국에서 전화가 왔다. 경인이가 김포공항에 도착해 외갓집에 잘 왔다는 연락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비행기에서 아이가 얼마나 울었는지 외할아버지와 함께 열흘이 넘도록 안과에 다녔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후회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아이를 한국에 보내고 2주가 지났을 무렵 아내가 다니던 여행사가 파산을 하는 바람에 아내가 일자리를 잃고 말았다. 괜스레 아이만 한국으로 보낸 꼴이 된 것이다.

아이가 보고 싶어 눈물로 지새던 아내가 한국에 있는 경인이를 데려와서 다른 집 아이와 함께 돌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그러면 가족이 헤어져 살지 않아도 되고, 어차피 경인이를 데리고 있을 바에야 다른 집 애를 함께 봐주면 돈도 벌 수 있어 여러모로 좋을 것 같았다. 이번에는 미국에서 한국으로 나갈 때처럼 한국에서 미국으로 들어와야 할 판이었다. 꼭 6개월만의 일이었다. 우리는 경인이가 한국에서 돌아오는 전날 밤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러나 이번엔 전과 달리 기다림의 밤이었기에 잠을 못 자도 행복했다. 경인이가 김포공항을 떠날 때 한국에서 전화가 왔다. 엄마 아빠를 만나는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다행히 경인이는 낯선 아주머니를 이모라고 부르며 배웅 나온 할머니에게 인사까지 하며 떠났다고 했다.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에 경인이를 태운 비행기가 도착했다. 입국 수속하는 많은 사람들 속에 점퍼를 입고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는 경인이의 모습이 유리창 너머로 보였다. 머리를 짧게 깍은 경인이를 확인하는 순간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지난 6개월 동안 저 어린아이를 먼 곳에 보내놓았던 부모의 죄책감의 눈물이고 그리움의 눈물이었다. 이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헤어지지 말고 살아야지,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가족이 함께 겪고 이겨내리라 다짐했다.

이제 두 아이 모두 성장해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경인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해 베트남에서 파견근무를 하고 있다. 수정이는 미국 보스턴대학 로스쿨, 조지타운대학 로스쿨을 졸업한 후 국내 굴지의 법률회사에서 공정거래 담당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아이들이 부모가 되면 당시 유학생 부모의 힘겨웠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정리=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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