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천재 시인 이상 자화상에 숨겨진 미학적 암호

Է:2012-12-13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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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천재 시인 이상 자화상에 숨겨진 미학적 암호

이상 평전/김민수/그린비

천재 시인 이상(본명 김해경·1910∼1937)은 시인이기 전에 화가였다. 그가 첫 자화상을 그린 것은 경성고등공업학교 3학년 때인 1928년. 이 자화상은 1956년 평론가 임종국(1929∼1989)의 ‘이상 평전’ 2권에 흑백 도판으로 처음 소개됐으나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김민수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는 이 자화상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을 시도한다. 원래 유화로 그려졌지만 현재 흑백 도판만 남아 있기에 원본 크기, 색채, 붓질 등의 구체적인 정보는 알 수가 없음에도 그는 이미지가 인간 의식 발전에 있어서 ‘사상’에 선행한다는 점에 착안한다.

“주목할 것은 비정형으로 해체된 머리, 눈, 코, 입, 귀 등의 요소들이 어떤 섬뜩한 이미지를 자아내지만 다른 한편으로 서로 유기적으로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미숙하게 처리된 것이 아니라 ‘의도적 표현’인 것이다.”(37쪽)

이상의 첫 자화상은 얼굴에 대립구조를 이루는 밝은 부분(왼쪽)과 어두운 부분(오른쪽)이 각기 삶과 죽음을 의미하듯 양분된 대칭형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코를 기준으로 중심선을 긋고 이미지를 절반씩 나누어 볼 때, 얼굴은 전형적인 대칭형이 아니라 ‘비대칭 구조’라는 것이다. 더구나 이상은 이마에서 정수리 부분이 깨져 함몰한 것처럼 그렸다. 왼쪽 눈의 눈동자는 지나치게 밝은 반면 오른쪽 눈엔 안구가 없다. 마치 손상된 시체를 방불케 한다. 한데 안구가 없는 눈에 눈물 자국이 선명하다. 이러한 극한 정서는 목 부분에서 절정을 이룬다. 목은 잘려져 있다. 잘려진 목은 더 이상 산 자가 아니다.

김 교수는 “이처럼 ‘1928년 자화상’은 극도의 내면 심리를 빛으로 감광시킨 한 점의 포토그램을 방불케 한다”고 지적했다. 왜 이상은 그런 섬뜩한 이미지의 자화상을 그렸을까. 첫째는 폐결핵으로 인한 각혈이다. 둘째는 독특한 내면의 세계관을 거울 이미지로 투영했을 가능성이다. 중요한 것은 이 자화상이 김해경의 가명 ‘이상’보다 앞서 출현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상의 자화상은 당대 세계적인 예술사조와 어떻게 맥이 닿아 있을까. 김 교수는 아오키 시게루, 무카이 준키치, 에비하라 기노스케, 시미즈 다카시 등 당대 일본인 화가들의 자화상을 일일이 확인한 결과, “이들의 그림도 이상의 자화상에 필적할 만한 강렬한 표현주의는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상은 1931년에도 자화상을 그렸고 이를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해 입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1928년 자화상’에 비해 긴장감이 덜 하다. 두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1931년에 이상은 이미 표현주의를 넘어 또 다른 예술세계에 감응해 있었기 때문이며, 조선총독부가 주관하는 전람회의 제도적 취향에 의도적으로 맞췄기 때문일 것이라는 추정이 그것이다.

김 교수는 “이상이 살았던 일제강점기는 자신의 글과 말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비밀’이 필요했던 시대”라며 “이상 역시 그가 품었던 반역의 사유를 그의 시 속에 암호처럼 숨겨놓아야만 했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물이 ‘이상한 가역반응’이나 ‘또팔씨의 출발’ 같은 시라는 것이다. 이상이 당대에 사용한 일본어는 뱀을 잡기 위해 뱀의 말을 사용한 ‘땅꾼의 언어’인 동시에 이는 그야말로 뱀이 되어버린 이광수나 모윤숙의 일본어와는 근본적으로 맥락이 다르다는 것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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