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현의 사막의구도자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영웅’ 없는 사회

Է:2012-11-30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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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자유당 정권 말기 시골학교 5학년 아이들의 삶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한병태라는 아이가 서울에서 시골 학교로 전학 온다.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반장 엄석대의 절대 권력이었다. 5학년 남자아이들은 ‘우리들의 영웅’인 석대의 명령에 마치 부하인 양 복종했다. 당번을 짜서 물 컵을 갖다 바치거나 맛있는 도시락 반찬을 진상했으며 때로 좋은 물건까지 상납 아니면 탈취 당했다. 석대의 말에 거역하거나 반기를 들면 청소검사와 복장검사 등 공식적인 방법이나, 놀이에서의 왕따 같은 더욱 뼈아픈 비공식적 방법으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전학 온 병태는 처음에는 석대의 왕국에 저항하다가 왕따를 당하기도 했으나, 한 학기가 지나갈 무렵 석대의 권력체제 속으로 편입돼 갔다.

권력의 힘과 그 달콤함

석대가 무너진 것은 6학년이 돼 새로 부임한 담임선생님을 통해서였다. 선생님은 석대가 반에서 공부 깨나 하는 친구들에게 각 과목의 시험지에 자신의 이름을 쓰도록 한 부정행위를 적발했다. 석대의 폭력과 불법과 비리는 아이들의 입에서 쓰나미처럼 쏟아져 나와 그를 허물어뜨렸다. 결국 새로운 반장을 뽑는 시간 석대는 교실에서 나가 다시는 학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이들이 등하교 길에서 석대에게 얻어맞자 담임선생님은 오히려 당한 아이들에게 매를 들며 너댓 명이 석대 하나 못 당하냐고 윽박질렀다. 아이들은 다음번에 석대가 시비를 걸자 힘을 합쳐 그를 도랑에 고꾸라뜨렸다. 이렇게 ‘일그러진 영웅’으로 전락한 석대는 더이상 아이들 앞에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수십 년 후 우연히 동해안의 어느 피서지에서 경찰에 체포되는 석대의 모습이 목격된다.

이 책은 기억 속에 희미하게 묻혀있던 내 어린 시절의 흔적과 여기저기서 겹친다. 4학년 무렵 나는 반 아이들로부터 집단 따돌림을 당하곤 했다. 당시 반에서 나 홀로 교회에 다녔는데 아마도 그것이 이유였을 듯도 싶다. 왕따를 주도하는 아이들이 서너 명 있었는데 내가 그들에게 굽실거리지 않았던 것도 원인일 수 있다. 체격이 왜소한 건 물론 주먹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였던 나는 따돌림에 속절없이 당했다. 하지만 선생님과 부모님께 단 한마디도 누설하지 않고 혼자 눈물을 삭였다. 또래 집단의 놀이에 낄 수 없다는 건 그 나이에는 지나친 형벌이었다. 그걸 모면하기 위해 때로 따돌림의 촉매였던 몇몇 아이들의 비위를 맞추곤 했었다.

그러다가 5학년이 돼 대반전을 겪는다. 새로운 담임선생님은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반장을 제쳐두고 부반장인 내게 엄청난 권한을 주었다. 자습시간이 되면 선생님 없이 내 책임 하에 아이들이 소리 내어 책을 읽도록 했다. 한번은 아이들이 내 말을 듣지 않아 몇몇 이름을 선생님께 알렸다. 선생님은 그 아이들을 혼이 쏙 빠질 정도로 야단쳤고 매까지 들었다. 그런 종류의 분노는 내게 부여된 권력에 엄청난 힘을 실어주었다. 아이들의 책읽기를 감독하던 나는 졸거나 딴짓하는 아이를 골라내어 여지없이 손바닥을 때리기도 했다. 힘깨나 쓰던 아이들도 내 가냘픈 손에 실린 회초리 앞에 한번 저항하지 못하는 것이 신기했다. 나는 숙제를 내고 검사까지 했으며 청소점검도 하곤 했으니 내 말이 법이요 판결이 되는 것에 나 자신도 놀랐다. 따돌림이라는 까닭 모를 형벌로 고통의 눈물을 삼켰던 내가 권력의 자리에 올라 지배하니 그 달콤함이야 오죽했으랴. ‘우리들의 영웅’ 엄석대의 교활한 왕국에 비해 나의 왕국은 순진했지만, 그 권력이 선생님의 권위에 기생했다는 것은 동일하다.

6학년이 돼 새 담임선생님이 부임했다. 비록 광산촌이지만 전에는 거의 한 적이 없는 1등을 6학년 때에는 한 번도 내 준 적이 없다. 하지만 새로운 선생님의 존재와 함께 내 권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막의 수도자들 이야기에서도 따돌림이나 정신적 폭력 비슷한 이야기가 있는 것이 놀랍다. 어느 날 수도자들의 집단 주거지인 켈리아에서 열린 총회에서 에바그리오스가 말하기 시작했다. 그때 명망 있던 이집트 어떤 수도자가 그의 말을 제지했다. “압바 에바그리오스여, 우리는 그대가 그대의 나라에 있었더라면 틀림없이 교회의 감독이나 많은 자들의 머리가 되었을 것임을 알고 있소. 그러나 그대는 지금 여기에서 이방인 같은 자요.”

따돌림이 오히려 자극제

에바그리오스는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서 학식과 덕망이 높던 사제였다. 에바그리오스가 콘스탄티노플에 머물렀더라면 아마도 그는 유명한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문명을 버리고 이집트 사막에서 이방인으로 살고 있었다. 그러니 이방인으로서 아는 체 하지 말고 잠잠히 있으라는 것이 명망 높던 그 이집트 수도자의 말이었고 이집트 수도자들은 그의 말에 암묵적으로 공감했다. 이집트 수도자들조차 이방인 약자를 먹이로 삼았다니 인간은 결국 타인을 희생 제물로 삼아야만 직성이 풀리는가 보다. 은근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뿌리 깊었던 이집트 수도자들의 따돌림은 오히려 에바그리오스에게 더욱 자극제가 되어 그의 손끝에서 사막의 영성이 체계화됐다.

하지만 따돌림이나 지배가 때로 에바그리오스의 책처럼 진주를 만들어 내는 모래 알갱이 같은 것이라 해도 합리화될 수는 없는 것이다. 지배하는 영웅도 없고 침묵과 눈물을 강요당하는 약자도 없는 사회, 그런 사회를 꿈꾸어야 하리라.

<한영신학대 역사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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