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박병권] 정치공학 전성시대
“단일화 프레임 깨기 위해서는 기득권을 포기하는 자기희생적 노력이 필요하다”
첫 출발은 보기에 좋았다. 특별한 쟁점 없이 이어지던 지루한 대선전에 유력한 야권 후보 두 사람이 단일화 일정을 합의한 것은 그 자체로 국민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정권쟁취를 위한 야합이 아니라 가치를 공유한 연대라면 후보 단일화를 나무랄 수는 없다. 이미 야권은 후보 단일화로 한 번은 정권을 쟁취하고, 한 번은 정권을 승계하는 데 성공한 전력이 있다.
문제는 야권 단일 후보가 여권의 후보를 반드시 물리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는 사실이다. 단일화 과정 자체를 감동의 드라마로 엮어 사실상 차원 높은 선거운동으로 만들지 않으면 득이 아니라 실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야합이란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제부터 정밀하게 짜여진 정치공학의 힘을 빌려야 할 것이다.
정치를 공학적 입장에서 하나의 목표를 추구하는 메커니즘으로 받아들인 정치공학은 오래 전에 우리나라에 도입됐다. 여러 정치현상을 컴퓨터나 여론조사 등의 계량적·통계적 방법으로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해 각종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이다. 정밀한 여론조사를 통해 대선이나 총선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정치공학적 접근이라 할 수 있다.
정치공학과 함께 금융공학이 한때 유행하기도 했다. 금융 파생상품을 설계하고 가치를 평가하며, 금융기관의 위험을 관리하는 첨단 학문이다. 재무, 통계, 수학, 계량 경제 등 여러 학문 분야가 어우러져 다양한 금융 상품을 개발했다. 위험분산을 위해 쪼갠 불건전 자산을 모아 파생상품을 만들어 유통시키는 등 수법은 무궁무진하다.
정치와 금융에 공학이 접합함으로써 이 분야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각종 여론조사 기관이 우후죽순처럼 생긴 것은 물론 정치컨설팅 업체 및 수많은 정치 평론가가 등장해 무명 인사를 스타로 만들었다. 금융기관의 파생상품은 종류가 워낙 많아 전문가들조차 헷갈릴 정도였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오기 전까지 금융공학은 전성시대를 달렸다.
공학적 접근으로 한때 총선에서 보기 드물게 서울에서 여권이 야권을 이긴 적도 있었으며, 금융업체의 주가가 상한가를 치기도 했다. 그만큼 효용성이 검증됐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지만 공학적 접근법으로 현상을 파악하는 것은 심리적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 기계적으로만 보기 때문에 자칫 예상치 못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예상을 깨고 지난 총선에서 야권이 어이없이 패한 것이 단적인 예다. 집권세력의 수많은 에러에도 불구하고 참신한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지 못해 실패했다. 몇몇 후보가 과거에 시민을 자극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한 사실이 공개되고 특정세력이 공천을 쥐락펴락했다는 여론이 형성돼 고전한 것이다. 한마디로 유권자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결국 공학적 접근보다는 진정성이 담보돼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철새 정치인을 영입하거나 대단한 명분으로 포장해 지역간 계층간 통합을 한다는 이벤트를 열지만 감동이 없을 경우 지지는 따라오지 않는 법이다. 사람이나 조직은 원래 제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할 때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는 것이지 인위적으로 끌어 모은다고 통합이 되고 힘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단일화 작업에 맞서 여권도 지난 시절 여기에 당했던 인사를 내세워 공개되지 않았던 흑막을 폭로하는 등의 방법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단일화 과정의 음험함과 교활함이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무시전략을 구사할 수도 있다.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 자체가 단일화 프레임에 말려드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는 풀기가 쉽지 않은 고차원의 수수께끼와 같은 것이다. 단일화 프레임에 갇힌 여권이 어떤 방법으로 이 틀을 깨고 나올지가 관심이다. 온갖 정치공학적 접근법이 동원돼 비책이 마련될 것이다. 그렇지만 기득권을 모두 내려놓는 자기희생적 노력이 없다면 답을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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