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용의자 X’ 감수한 김 형사] 현직 형사 촉으로 영화의 ‘리얼’을 살리다
살인사건을 둘러싼 천재 수학자(석고)와 동물적 감각의 형사 민범(조진웅)의 치밀한 두뇌 싸움을 그린 영화 ‘용의자 X’가 최근 개봉 열흘 만에 100만 관객을 넘어서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수학자 석고와 대립하는 주요 인물이 물리학자였던 원작과는 달리 형사 민범이 그 역할을 해내는 이번 영화에서는, 시나리오 속 사건들을 철저한 고증으로 다듬어낼 ‘형사의 시각’이 필요했다. 서울 도봉경찰서 강력1팀 김준형(32) 형사가 영화의 감수자로 투입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형사님이라면 어떻게 천재 수학자가 만든 알리바이를 풀어 가시겠어요?”
‘용의자 X’의 시나리오를 쓴 이정희 작가가 김준형 형사에게 한 말이다. 김 형사는 영화의 원작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 ‘용의자 X의 헌신’을 읽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김 형사가 시나리오를 받아들고 난 뒤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한 시간여. 이론적으로 완벽한 알리바이로 버티는 용의자와 그 알리바이를 무너뜨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형사의 이야기가 김 형사의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잘 짜여진 시나리오를 읽는 재미에 푹 빠졌지만, 허구적 장치가 가진 현실적 한계를 찾아내는 걸 잊지 않았다.
◇“실제 형사는 통화기록 하나만으로도 용의자의 알리바이를 깬다”=영화 속 형사 민범은 동물적인 육감을 가지고 미궁에 빠진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특정, 집요하게 추적해나가는 인물. 그런 면에서 형사 민범과 김 형사는 많이 닮았다.
“극 중 형사 민범이 쓰는 수사기법을 경찰용어로 ‘감(별)수사’라고 해요. 다만 여기서의 ‘감’은 단순히 육감이나 심증을 의미하는 ‘感(느낄 감)’이 아닌, 용의자 주변의 인간관계나 범행지 등을 바탕으로 수사의 방향을 모색하는 ‘鑑(살필 감)’을 의미하죠. 영화 속에서도 결국 천재 수학자 석고가 간과했던 민범의 감이 수사방향을 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형사들이 용의자의 알리바이를 깰 때 사용하는 도구는 바로 ‘시간’(time)과 ‘장소’(place). 때문에 범행 장소 주변의 CCTV와 용의자의 휴대전화 통화기록을 바탕으로 추적한 기지국 위치, 그리고 최근 들어 급격하게 수사에 많이 사용되고 있는 차량 블랙박스 등은 용의자의 시간과 장소를 동시에 증명해내는 중요한 지표로 사용된다는 것이 김 형사의 설명이다.
“형사 민범이 용의자가 제시한 알리바이에 집착하기보다 통화기록만 분석했더라면 조금 더 빨리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으리라 봐요. 용의자와 수학자 석고가 사건 후 매일 같은 시간 주고받던 통화 기록이 결정적인 단서인데 영화는 애써 외면하더군요. 물론 작가에게 조언을 했었어요. 그런데 제가 말한 대로 시나리오를 고치면 사건이 너무 쉽게 풀려버려 영화가 바로 끝나버리는 상황이 되더라고요(웃음).”
민범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통화기록 분석을 하지 않는다. 그 덕분에 관객들은 영화 후반까지 팽팽한 긴장함을 유지하며 용의자에 대한 궁금증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식으로 수사했다가는 무능한 형사가 되고 만다.
◇“영화의 리얼리티를 살려라”=영화 속 형사 민범은 영화 중반쯤 용의자 화선에게 ‘거짓말 탐지기’라는 비장의 카드를 쓰지만, 거짓말탐지기까지 유유히 통과한 화선은 점점 용의선상에서 멀어져가며 사건은 미궁에 빠져간다. 어쩌면 용의자를 진범으로 밝혀낼 수도 있었던 중요한 도구가 오히려 사건의 발목을 잡은 셈. 김 형사는 실제로 영화를 본 지인들이 가장 많이 물어보는 내용이 바로 ‘어떻게 화선이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통과할 수 있었느냐’였다고 한다.
“영화를 보면 민범이 거짓말탐지기 검사 중 검사실로 뛰어 들어오는 장면이 있어요. 민범의 애타는 마음이야 공감이 되는 부분이지만 현실이라면 전 아마 꾹 참았겠죠. 영화에서 나오듯 거짓말탐지기 검사는 정해진 검사관이 있어 질문조항 하나하나까지도 엄격하게 관리될 뿐더러, 만일 형사가 개입할 경우 그 증거는 법정에서 판사에 의해 배제될 가능성이 큽니다.”
보통 영화 속에서 거짓말탐지기는 용의자를 확신하거나 반대로 그 결과를 뒤집는 중요한 단서로 등장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현실에서는 효과적인 범인 압박용 수단이나 법정에서의 간접증거로만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김 형사의 설명이다. 김 형사는 “최근 수사에 사용되는 거짓말탐지기의 정확도는 98% 정도에 이르지만, 2% 안팎의 오류 가능성 때문에 증거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 속 수사기법 외에도 김 형사는 영화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일선 현장에서 형사들이 실제 사용하는 수사 용어들을 쓰도록 했다. 일선 형사들은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한다’고 하지 않는다. 대신 ‘거짓말탐지기에 태운다’는 표현을 쓴다. 영화 대사는 김 형사의 조언대로 고쳐졌다. ‘반장님’이란 호칭 대신 ‘형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강력반 내 분위기도 자연스럽게 반영됐다.
◇“잠복근무 때는 금연을”=고된 업무 강도 때문에 최근 젊은 경찰들이 수사부서인 형사직을 기피하는 현상과는 달리, 김 형사는 지난해 강력팀에 자원했을 정도로 형사가 ‘천직’이라고 믿는 ‘뼛속까지 형사’다. 9개월 된 아들을 둔 결혼 2년차인 김 형사도 사건이 시작되면 영화 속 형사들처럼 기약 없는 잠복근무를 많이 한다. 그래서 영화 속 잠복근무 장면이 현실과 다르다는 걸 너무 잘 안다.
“용의자들은 자신들이 추적당하는 것을 의식하기 때문에 그 촉이 보통이 아닙니다. 그래서 영화 속 민범과 동료 형사처럼 차량에 시동을 걸거나 담배를 피우면서 잠복한다는 건 현실에서 상상도 할 수 없죠. 실제로 잠복할 때 차량 앞좌석을 비워두고 뒷좌석에 앉아 용의자를 기다리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주위 동료와 선·후배들로부터 ‘집요하게 파고들어 한 번 물면 안 놓는다’는 평을 듣는 김 형사의 목표는 파트너이자 선배인 문준식 경위 같은 ‘베테랑 형사’가 되는 것. “형사로 시작했던 사람들은 거의 경찰 생활을 형사로 마무리합니다. 그만 두면 ‘좀이 쑤셔서’ 견디질 못하기 때문이지요.” 김 형사는 “체력이 허락되는 한 미제사건을 찾아 종결짓는 능력 있는 형사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전했다.
김수현 기자 siemp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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