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의 시편] 높이와 깊이
대학원 졸업 후 정훈장교로 입대했습니다. 소위를 건너 뛰어 중위로 임관을 하면서 ‘높이’에 대해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상대가 누구든 나보다 높으면 경례를 하고, 낮으면 고개를 뻣뻣하게 세우는 군문화가 어색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은 ‘높이’에 관심이 많습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의 키를 높이기 위해 애 쓰고, 다 커버린 키에 만족하지 못한 사람은 깔창으로라도 키를 높이려 합니다. 나라마다 높은 건물 경쟁을 합니다. 분수도 누가 높이 쏴 올리나 열을 냅니다. 2002년 월드컵 기념 한강 분수는 202m까지 쏘아 올려 세계 최고였던 미국 애리조나주 파운틴힐스에 설치된 170m짜리 분수를 눌렀습니다. 애써 올려도 다시 바닥으로 떨어질 것에 왜 힘을 들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높이 경쟁은 끝없어 보입니다. 대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고 싶었던, 창세기 죄인들의 열망이 이어진 모양입니다.
이런 높이 경쟁이 세상을 발전시킨 면도 있겠지만 그로인한 스트레스는 정신건강을 낮췄습니다. 건강한 삶은 ‘높이’가 아닌 ‘깊이’에 있는 법입니다. 얼마나 생각이 깊고, 이해심이 깊고 또 사랑이 깊은지에 대한 것들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인데….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높은 자리를 추구하시지 않았습니다. 최고의 자리를 버리고 낮은 곳에 위치하신 주님은 깊은 인격과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측량하기 어려운 그분의 깊이가 세상을 바꿨습니다.
우리는 높이 경쟁에 빠진 세상을 뒤로 한 채 좀 더 깊은 생각, 깊은 사랑 그리고 깊은 인격에 눈을 돌려야 합니다. 교회조차 높고 낮음에 매달립니다. 세속적 가치에 침몰한 교회의 이 천박한 경쟁은 낮은 곳을 지향하신 주님의 제자들에게도 있었습니다. 누가 ‘넘버 원’인가를 놓고 다투며 주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면 이렇게 높낮이를 따지는 교회에 적응하시기 힘드실 겁니다. 자리의 ‘높이’보다 영성의 ‘깊이’에 관심을 갖는 교회 안에 주님이 깊게 자리 잡지 않을까요?
건물은 높이는 것보다 깊이 파는데 더 많은 비용이 듭니다. 높이부터 올려놓고 뒤늦게 지하를 깊이 파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기초를 깊게 하면 뒤에 가서 얼마든지 높일 수 있습니다. 깊이 파는 것에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듭니다. 그러나 깊이 파야 높이 올릴 수 있지요. 깊은 영성을 유지하는 것은 그만큼 많은 땀을 필요로 하지만 그 가치는 매우 높은 법입니다.
다음 대통령에 관심이 많습니다. 우리 대통령이 높은 사람이 아닌 깊은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속이 깊고 생각이 깊은, 그 깊은 인격에서 높은 꿈과 열정이 솟구치는 그런 분이면 좋겠습니다. 희망사항으로 그치지 않도록 깊은 통찰력을 가져야 합니다.
<산정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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