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노석철] 닭 잡는 칼과 소 잡는 칼

Է:2012-10-03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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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노석철] 닭 잡는 칼과 소 잡는 칼

법조를 출입하는 기자들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 대한 막연한 믿음과 기대를 갖는다. 검찰 내 최고 특수수사통들이 있는 곳이고 그들이 과거 수많은 걸작을 만들어냈던 기억 때문이다.

대검 중수부를 ‘소 잡는 칼’이라고도 한다. 잔챙이에게 ‘닭 잡는 칼’처럼 휘두르면 헤비급 선수가 초등학생 엉덩이를 걷어찬다는 얘기를 듣기 십상이다. 중수부라면 대통령이나 주변 친·인척들의 권력형 비리, 복잡하게 얽힌 대형 경제사건, 정치인·관료들이 엮여 있는 로비 사건 정도는 다뤄야 격에 맞다. 체급에 안 맞는 일을 하면 다른 배경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는다.

잘못 짚은 공천헌금 수사

언론의 검찰 기사에도 공식 같은 게 있다. 같은 수사라도 일선 검찰청이 맡으면 신문 구석에 조그맣게 실리지만 중수부가 손대면 일단 대문짝만 하게 펼쳐놓고 가야 마음이 편하다. 뭔가 큰 게 걸려들었으니까 중수부가 나섰을 것이란 습관적 기대가 깔려 있다. 중수부 수사는 잠시 엇나가도 곧바로 비판하기가 꺼려진다. ‘부실수사’ ‘변죽만 울린다’고 비꼬았는데 며칠 안 돼 대어를 낚아버리면 참 난처해지기 때문이다. 성급하게 기사를 썼다간 ‘개념 없는 기자’란 소리를 듣게 된다.

중수부가 민주통합당 공천헌금 의혹 수사를 시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중수부가 나섰으니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이번에는 빠져나가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그런데 며칠 만에 라디오21 전 대표 양경숙씨가 박 원내대표 이름을 팔아 돈을 챙겼을 것이란 정황이 흘러나왔다. 그때도 검찰은 “수사가 아주 잘되고 있다”고 자신했다. 실명을 거론하진 않았지만 그 말이 “박 원내대표 등 정치인 수사가 잘되고 있다”는 의미란 건 서로 눈빛으로 안다.

수사가 물 건너갔다는 의심이 들었지만 대놓고 ‘중수부가 헛다리 짚었다’고 지적하기엔 꺼림칙했다. ‘그래도 중수부가 칼을 뺐는데 그렇게 서투르게 지레짐작으로 수사했겠나’라는 믿음 때문이다. 수사팀 면면을 봐도 헛스윙을 할 사람들이 아닌 듯했다.

그런데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달 28일 검찰은 박 원내대표를 슬그머니 기소했다. 저축은행 등에서 8000만원을 받은 혐의였다.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에게서 받았다는 돈은 5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오히려 줄었다. 수사가 늘어지면서 3000만원에 대한 공소시효가 지나버린 모양이다. 게다가 양씨에게서 공천헌금을 받았는지는 언급조차 없었다. 기자들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중수부가 닭 몇 마리 잡겠다고 이런 소란을 떨었느냐는 것이다.

박 원내대표는 ‘공천헌금’만 봐서는 큰 잘못이 없는 것 같은데 오지랖 넓은 여성에게 휘둘린 정치인이란 오명을 뒤집어썼다. 신문과 방송, 인터넷에는 박 원내대표와 공천헌금이란 단어가 한 달 넘게 오르내렸다. 정치인은 무한검증 대상이지만 검찰이 수사할 땐 철저한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중수부, 격에 맞는 처신 아쉬워

검찰은 수사 마무리도 떳떳하지 못했다. 공천헌금 수사에서 박 원내대표를 겨냥했으나 무위로 끝났다면 ‘처음부터 잘못 짚었다’는 식의 해명이 있어야 중수부다운 처신이다. 혹시 애초부터 양씨 사기극을 겨냥했다면 그 역시 중수부의 격에 맞지 않는 수사다.

언론의 관심이 가장 적은 추석 연휴 전날 오후에 박 원내대표를 기소한 것도 옹색해 보였다. 큰 잘못을 저지른 아이가 부모에게 혼날까봐 밤에 봇짐 싸서 가출하는 것 같은 느낌 때문이다. 최근 중수부가 자꾸 격에 안 맞는 일을 하는 건 정치권의 중수부 폐지론을 잠재워야 한다는 조바심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중수부는 가만히 있어도 그 이름만으로 범죄억제 효과가 있는 게 아닐까. 괜히 존재를 과시하려다 자꾸 역풍을 맞으면 수명만 단축될 수 있다.

노석철 사회부장 sch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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